영적으로 분열된 교회 치유하기
by David Gibson2020-01-23

죽어가는 교회는 화난 언어를 사용하고, 차별하고, 선한 일을 등한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 오는가? 둘로 분열된 마음에서 온다. 둘로 나누어진 자아, 영적으로 분열된 교회는 겉으로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내면의 이중성(double-ness)이 어떤 형태로 외면에서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우리는 듣는 것과 행하는 것에서 둘로 나뉠 수 있다.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둘을 서로 갈라놓는다. 교회에 있는 것도 좋아하고 설교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화요일 정도가 되면 하나님이 명령한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 그럴까?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 야고보서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유한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우리 중 일부는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주를 사랑하지만, 다른 일부는 부와 명성 그리고 특별한 지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있는 영광에서 둘로 갈라서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우리는 믿음과 선행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하나가 없이도 다른 하나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왜 그럴까?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10). 분열하는 그 선이 다름 아닌 우리의 입술까지 나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우리의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의 말은 형태와 내용에서 둘로 나누어져 있다.


세상이 교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야고보서에서 하나님이 하나 되라고 한 곳이 두 개로 나누어진 이중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서신서의 핵심은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방에 있는 부자 또는 가난한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있어서 진짜 문제는 돈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 2:4).


악한 생각과 이기적인 욕망이 진짜 문제이다. 바로 이 진짜 문제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가 교회 공동체에 해를 입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가 개인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눈을 감는다. 야고보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건조한 의학적 처방을 내리는 것, 그 이상을 보여준다. 야고보서는 이것을 간음이라고 부른다. 간음은 이중성의 궁극적인 형태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 왜곡되어 두 개로 변형된 것이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젊은 부부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이제 새로운 삶, 새로운 모험을 함께 시작했다. 새 아파트의 현관에서 벨이 울린다. 문을 열자 남편이 몇 년 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거기 서 있다. “안녕, 자기랑 같이 몇 년 살려고 왔어.” 아내가 놀라서 소리를 치기도 전에 젊은 남편은 옛날 애인을 끌어안고는 말한다. “정말로 재미있겠다. 우리 같이 진짜 멋진 가족을 만들어 보자고!”


신부가 왜 울고 있는가? 시기심 때문이다. 거룩한 시기심 때문이다. 사랑 때문이다. 진짜 사랑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5).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당신은 침대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이다. 당신은 세상과 결혼한 사람이다. 세상은 부자를 좋아한다. 세상은 싸우고 죽이고 더러운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할 때, 그 사실은 당신이 사랑에 이중적인 인간임을 보여준다.


당신이 진짜 믿는 것은 무엇인가?


야고보서가 폐부를 찌른다고 생각하게 한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툼, 절제되지 못한 혀, 우리 속의 분열, 그리고 이 서신서 속에 있는 또 다른 수많은 증상은 우리가 하나님 속이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주님, 저는 온전히 당신만을 따릅니다.” 말은 얼마든지 이렇게 한다. 그런데 행함을 보면, 우리가 하는 결정을 보면 나는 온전히 나 자신만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서는 가장 아픈 서신서이다. 내 친구 앤디가 말한 것처럼 야고보서는 의사와 같다. 그 의사는 우리의 말과 삶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자세히 조사하고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진짜로 믿는 게 뭔지를 드러낸다.


마치 발진과 기침 그리고 거친 숨소리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의사와 다르지 않다. “문제가 심각한데요.”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교회에서 몇 달만 같이 생활하게 해주세요. 그럼 내가 잘 관찰하고 살펴봐서 당신들이 진짜로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겠습니다.” 야고보서는 또 말한다. “당신이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볼게요. 교회 지체들과 가족,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하는지도 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당신이 진짜로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주겠습니다. 당신이 외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겠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알려주겠습니다.”


우리 속에서 그런 증세들이 발견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알려준다면 우리가 의지할 도움은 무엇이 있을까?


은혜, 하늘이 준 치료제


교회를 죽이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은 교회가 어떻게 진짜로 죽는지 알고 있는가? “원래 다 이런 거 아니야?” 이런 말을 할 때 교회는 죽는다.


가정에서 복음을 죽이고 싶다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또 부부 관계에서 복음을 죽이고 싶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이고, 목요일이잖아. 지칠 때도 됐지. 원래 다 이런 거 아니야?” 어리석고 칼과 같이 날카로운 혀를 가진 사람은 변해야 한다. 복음의 사람이라면 결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원래 다 이런 거 아니야?” 아니다. 이 모든 것의 요점은 경고이다. 야고보서는 지금 우리 속에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혀는 엄청난 손상을 입힌다. 선한 행함이 없다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두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부서진 믿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여기 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르는 바로 그 처방제를 써야 한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이런 질병에 대한 치료제는 회개이다. 정기적으로, 매일 그리고 마음을 쏟아서 회개해야 한다. 이 처방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목요일이잖아”라고 말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이건 죄야”라고 말해야 한다.


그게 바로 지금 야고보서가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야고보서는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흔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완곡하고 모호한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죄이다.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한 자보다 부자를 더 좋아하고, 듣기 좋은 식으로 말하고, 도울 마음이 전혀 없으면서도 태연하게 잘 지내냐며 상대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분열된 마음 치료하기


야고보서는 하나님과 함께 더 깊이 들어가라고 우리를 가르친다. 당신이 말하는 것, 타인과 관계 맺는 것, 그리고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도록 가르친다. 도대체 마음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죄와 은혜 그리고 용서에 대한 주제가 식탁이나 침대에서, 커피를 마실 때 오가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잘못 했거나, 당신이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있어서 제대로 된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야고보서이다. 이 서신서는 내게 도움이 되었고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눠진 마음을 치료하는 것은 복음이다. 은혜이다. 용서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게 언제인가? 당신의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소리높여 회개한 게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그게 바로 우리가 치료제를 섭취하는 방법이다.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 속의 단어를 가지고 지금 바로 회개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자비하시고 또 오래 참으신다.


불안한 연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생각해보라. 간음이 들통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거기에는 분노가 있고 배척과 갈라짐이 따른다. 환대와 따뜻함의 시간은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간음한 여인들아...하나님을 가까이하라”(약 4:4,8).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고 감사하다. 우리를 치유하신다. 지금 바로 상처 입은 자를 온전하게 회복하고 분열된 마음을 치유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죽어가는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ree Symptoms of a Dying Church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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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Gibson

데이비드 깁슨은 스코트랜드 에버딘에 위치한 Trinity Church의 목사이다. 대표 저서로 Reading the Decre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