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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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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on Bloom  /  작성일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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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aleb tapp on Unsplash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삼하 19:25). 지친 왕은 앞에 앉은 이, 힘들어하는 장애인을 바라보며 엄하게 물었다.

다윗은 지금 막 그의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겪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려다가 실패한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있었다(삼하 15-18). 쿠데타는 실패했고 반란군은 죽거나 흩어졌다.

다윗에게 충성을 지킨 많은 사람에게는 축하의 시간이었지만, 다윗에게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의 슬픔은 탕자 아들의 비극적인 종말을 보는 것보다 더 깊었다. 자신이 아들의 죽음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생의 복잡함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 앞에서 펼쳐졌던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그의 귀에 생생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삼하 2:9-12).

그는 참기 힘들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바로 그 이웃이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다윗은 이 말을 소리내서 계속 할 수 없었다. 백성의 사기를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삼하 19:5-7). 그러나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계속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이 비극은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그 아들로 인해 동요된 모든 사람 - 그중 일부는 지금 새로 만든 무덤에 누워 울부짖는 어머니와 아내를 보고 있다 - 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악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과 불가피하게 엮여 있다. 그랬기에 다윗은 압살롬의 군대가 한창 세를 얻어갈 때 그를 버렸을 뿐 아니라 그를 저주한 사람에게까지 자비로울 수 있었다. 다윗은 격렬하고도 복잡한 시대의 흐름 속에 빠졌을 뿐 아니라 그런 상황을 초래한 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의 책임이 있음도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상황의 복잡함은 이 위대하고 슬픈 왕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혼란스러운 일로 만들었다. 그는 지금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그에게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의 불충한 말은 단순히 두려움과 혼란스러운 전쟁의 소동 속에서 나온 바람과 같은 것에 불과한가? 다윗이 복귀했을 때 전과는 전혀 다른 찬양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단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연기일까?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시 116:11). 다윗은 그 “모든 사람” 속에 자신도 포함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므비보셋이 있다. 그의 배신은 특히 아팠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어린 시절에 장애인이 되었다(삼하 4:4). 다윗은 가장 친한 친구(삼상 20:42)에 대한 깊은 사랑과 언약을 지키기 위해 므비보셋을 찾았고, 그에게 할아버지 사울의 땅과 더불어 사울의 종 시바를 붙여주었다. 시바에게는 15명의 아들과 20명의 하인이 있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왕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명예로운 자리를 주었고, 그를 자신의 아들처럼 대했다(삼하 9:7-8,11).

그러나 반란군이 들어와서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쳤을 때 그와 함께 한 사람은 정작 므비보셋이 아니라 시바였다. 그리고 시바의 보고에 따르면, 므비보셋은 그의 왕좌를 향해 창을 겨눈 또 다른 위험한 “아들”처럼 보이기도 한다(삼하 16:3-4). 다윗은 그가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줌으로 시바의 충성을 보상했다.

모호함이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 승리한 다윗이 예루살렘에 다시 입성할 때 므비보셋이 그를 맞이하는 현장에 있다. 그는 초라하고 냄새가 날 정도로 비참한 상태다. 한 보좌관은 다윗에게 보고하기를 므비보셋은 다윗의 망명 내내 면도와 목욕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고 했다(삼하 19:24). 그리고 므비보셋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것은 시바의 보고 내용에 심각한 의구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상황이 모호해졌다.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지친 장애인이 대답했다.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삼하 19:26-28).

므비보셋의 진실함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건 바로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속였던 방법이기도 하다(수 9:3-6). 게다가 시바는 다윗이 가장 위급한 순간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의 곁을 지킴으로 충성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또 한편으로 다윗 자신도 후새에게 생명을 걸고 압살롬에게 충성하는 척 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가(삼하 15:32-37)? 시바가 다윗 곁에 있었던 건 충성이라기 보다는 오만함으로 가득한 왕자가 아닌 경험 많은 왕에게 베팅을 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아닐까? 여기서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걸까?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

그래서 다윗은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사울의 이전 재산을 므비보셋과 시바에게 반반으로 나눠주었다(삼하 19:29). 그들 중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적게 받은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더 많이 받는 셈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 두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게다가 상황의 시급함을 고려할 때 거짓말에 대한 조사가 우선순위가 될 수도 없었다. 그에게는 다시 하나로 모아야 할 왕국과 가족, 그리고 민심이 우선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적을 만들 시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그에게 충성을 나타냈으며, 다윗은 그들 각자로부터 가장 좋은 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진정한 정의 구현은 하나님께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때로는 다윗처럼 하는 게 복잡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일 때가 있다. 가족, 우정, 목회 및 직장 상황에서 복잡한 일이 발생했을 때, 증거가 충분하지 않거나 상황이 너무 모호하거나 또는 시간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정의가 이루어지기 힘들 때가 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결정은 관련된 당사자의 선의를 믿고 최대한 관대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리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다”(신 32:4). 그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공의를 실행하신다. 인간 또는 사탄이 의도한 악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을 통해 완벽한 공의로 바꿈으로 선을 가져다 주신다(창50:20; 롬 8:28). 그리고 우리의 불완전한 판단과 이 시대의 불의를 사용하여 그분의 선을 성취시킬 것이다.

비록 한정된 능력이지만 불완전한 판단을 최대한 활용하여 믿음을 바탕으로 선한 결정을 하도록 우리는 부름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한정된 능력”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비밀리에 악과 타협하는 것이 “정의를 행하는 것”(미 6:8)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 존 블룸(Jon Bloom)은 Desiring God의 공동 설립자이며, 이사장과 작가로 섬기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Not by Sight가 있다.


원제: Sometimes We Must Settle for Peace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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