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가족? 영적 가족!
by Harriet Connor2019-10-25

지난 주일, 축도가 끝난 뒤 목사님이 캐시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두 주 전 캐시의 할아버지는 교회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캐시는 그날 할아버지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할아버지가 잘 회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캐시는 할아버지를 매주 교회에 모시고 온다. 그녀는 걸을 때 할아버지의 팔을 부축하고, 앉고 일어나시는 것을 도우며, 예배 중 어떤 순서인지 할아버지에게 알려 드린다. 


캐시의 헌신은 우리 교회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이제 캐시의 할아버지와 교회에 다른 노령의 성도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캐시가 피아노를 치는 주일에는 다른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게 어떤 찬송을 부르는지 찾아 드린다. 어떤 노인이 일어나는 데 힘들어하신다면, 이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팔을 빌려드린다.


당신의 가족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를 우리의 ‘첫 번째 가족’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가족 안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을 새롭게 하셨다. 이제 어느 누구든 혈통이 아니라 예수 안의 믿음으로 그 가족에 들어갈 수 있다(요 1:12-13; 갈 3:6-9). 하나님의 가족은 아이를 낳음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통해 커지고 있다(마 28:19-20). 따라서 배우자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믿음의 가족 안에서 존중받는 자리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마 19:1-12; 고전 7:32-35).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과 영의 가족 사이 충성심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 대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확실히 말씀하셨다(눅 14:26). 만약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혼자라도 하나님의 가족 안에 남는 것이 육신의 가족을 찾기 위해 혹은 기쁘게 하기 위해 떠나는 것보다 낫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은 분명히 이 땅의 가족들을 귀하게 여겼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따라 사람들에게 결혼 생활에 충실하며(마 19:1-19), 부모님을 공경하라고(막 7:9-13) 가르치셨다. 사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갖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다(고전 7:8-9; 딤전 5:14). 그들은 여전히 남편과 아내이고, 부모와 자녀인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교회와 가족은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하였다.


가족: 본보기


육신의 가족 관계는 하나님의 가족 관계의 본보기가 된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라고 선언하셨을 때, 예수님은 잘 알려진 관계의 범주를 사용하셨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딤전 5:1-2)라고 권하였다. 우리는 그런 여러 가족 관계의 역동성을 이해해야만 누군가를 우리의 형제, 자매, 어머니 또는 아버지처럼 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성경 시대에 가족이란 개인적인 애정의 안식처 그 이상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생산적인 단위였다. 낸시 피어시(Nancy Pearcy)는 그녀의 책 ‘네 공동체를 사랑하라’(Love Thy Body)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산업 혁명 이전, 집이란 실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병자와 노인을 보살피며, 가업을 운영하고, 고객과 공동체에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잉여금을 만드는 장소였다. 집은 보다 더 넓은 사회와 접촉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집”(딤전 3:15)에 속하는 것은 단순히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예수님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는 가업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 학교


내가 어린이 사역을 위해 받은 제일 실용적인 훈련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아버지가 되는 것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데 좋은 훈련이 되고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 3:5).


집에서 매일 일어나는 상호 작용은 분명한 의사소통을 하고, 듣고 공감하며, 현실적인 기대치를 설정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실망스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을 도우며, 갈등을 해결하고, 사람들이 성숙해지도록 돕는 것과 같은 대인 관계 기술을 연습하도록 우리를 강요한다. 가정생활은 교회를 섬기기 위한 준비를 갖추도록 우리를 훈련시킨다.


가족: 돌봄의 네트워크


교회는 개인들을 모으는 것 외에도 가족들을 한데로 모은다. 그리고 평범한 상황에서 우리의 가족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보살핌을 제공하는 주된 원천이 될 것이다.


초대 교회는 과부들이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어느 과부에게 자녀들이나 손주들이 있다면, 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족을 돌봄으로써 그들의 종교를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4, 8).


교회의 성도로서 우리에게도 보살핌의 책임은 여전히 있다. 부모는 자녀들을 보살필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고, 자녀들은 그들의 나이든 부모와 조부모를 돌볼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그리고 교회들은 이 유대를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


가족: 사명의 기반


처음에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가정집에서 모였다. 가정들은 사명의 기반이었다. 가족 전체가 함께 복음을 듣고, 믿고, 그리고 전파했다(행 16:30-34; 롬 16:10-15).


집은 여전히 교회의 사명 중 많은 부분이 일어나는 곳이다. 집은 우리가 상대방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곳이다. 집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집은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신앙을 나누는 곳이다. 집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길을 배우는 곳이다.


기독교 가정들은 중심은 강하지만 가장자리는 유연해야한다. 가정 안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노인과 젊은 세대 사이의 강한 관계는 그 사랑의 공동체가 외부인을 포함할 만큼 확장되도록 돕는다.


신학자 앨러스터 로버츠 (Alastair Roberts)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에 있어 “가족”이라는 말은, 교회가 육신의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크게 의존한다. 교회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것은 보통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가정들이다. 그것은 교회가 대가족으로서 기능하도록 수용력을 준다.


우리의 교회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우상 숭배”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복음을 우선시하도록 부름으로써 더욱 강해질 것이다. 


교회: 새로운 가족?


대부분의 경우, 교회는 우리의 가족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복음이 우리 가족 관계의 방향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이 새로운 우선순위들은 교회를 강화할 것이다.


청소년 때에 나는 혼자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 가족이 집에 남아 있을 때 나는 스스로 교회에 갔다. 나는 그곳에서 나를 반겨 주고 하나님의 길을 보여 주는 사랑의 영적 가족을 만났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육신의 가족 안에서 자매였고, 딸이었으며, 또한 손녀였다.


나의 가족은 지금도 주일마다 내가 교회에 갈 때면 집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혼자 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로 나를 축복하셨다. 그리고 기도하기는, 하나님이 어느 날 나에게도, 영적 가족이든 육신의 가족이든, 나의 늙어 가는 팔을 부축해 교회로 갈 캐시 같은 손녀를 주시길 바란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Nuclear Family or Church Family? Yes

번역: 허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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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Harriet Connor

헤리엇 코너는 Sydney Missionary and Bible College에서 언어학과 신학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 'Big Picture Parents: Ancient Wisdom for Modern Lif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