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예배
by Albert Mohler2020-01-06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은 타락한 인간 본성에 통찰력을 던진다. “인간은 자유가 있는 한, 숭배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대심문관의 말이 믿을만한 신학 안내서로 부족할지라도, 이 부분에서는 그가 확실히 옳다. 인간 존재는 확실히 종교적이다-심지어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를 때에도-그리고 인간은 계속해서 숭배할 대상을 찾는다.


인간은 또한 죄인이다. 우리의 예배는 자주 개인 선호에 따른 우리 자신의 이교도 신앙에 기반을 둔다. 존 칼빈이 상세히 설명한 것처럼,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다. 항상 예배하고 숭배할 새로운 우상을 만든다. 임의대로 부패한 공장은 절대 참된 예배를 만들 수 없을 것이며 대신에 자신의 발명품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예배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 모이고, 살아있는 하나님을 방법적으로 발견한 사람들로 구성된 곳이 아니다. 교회는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되며, 예배의 자리로 부름받은 사람들로 이뤄진다. 예배는 피조물인 우리가 만들어진 목적이다. 그리고 오직 구원받은 자들만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예배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러턴은 자신의 동료 철학자에게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가’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예배시간에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학책과 교리에 대한 문서는 회중이 무엇을 믿는지 드러낼 테지만 예배는 ‘정말로 이를 믿는가’하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큰 곤경에 처해있다.


많은 복음주의자 사이에서 예배라고 부르는 것들의 혼란스러움을 보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예배라기보다 혼돈의 축제와 같은 예배를 하는 교회들이 있다. 수년 전, A.W 토저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교회가 예배를 ‘오락의 최대치, 진지한 가르침의 최소화’라는 생각을 한다. 심지어 예배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깨닫는 장소’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50여 년 전의 이런 말은 현재 행해지고 있는 예배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듯하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추적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모더니즘이 초현실주의를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배의 초점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수평화” 되어 인간에게로 이동되었다. 신학적 자유주의는 단순히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였고 근대성이 요구하는 신학적 타협을 이루었다. 예배는 경이롭고 위대한 하나님께 기쁨으로 순복하는 행위가 아닌 예배자가 판단하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바뀌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적 엘리트의 세계관과 문화의 가장 강력한 영향의 중심, 급진적 주관주의, 도덕적 상대주의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세계관의 표식인 절대 진리에 대한 적대감은 일부 교회의 예배에도 나타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말을 넘어선 이미지의 승리를 축하하지만, 기독교는 말씀 중심의 신앙이고 하나님의 언어적 계시와 성육신한 말씀인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건설되었다고 주장한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진리는 만들어지지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급진적인 실용주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배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설교하고, 듣고, 믿고, 고백하는 훈련이라기보다 의미를 “만드는” 행위로 볼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믿음을 경험적 차원의 필요성으로 이야기하지만, 경험은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말씀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예배에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임의대로 의미 있는 경험을 충족시키는 예배를 하거나,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예배 대신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예배를 찾고자 할 것이다.


올바른 예배에 대한 관심은 개혁주의의 중심이며 오늘날 가장 중요한 신학적 논의의 중심이다. 예배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배의 개념은 하나님을 바라고, 말씀을 이해하며,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나의 비참함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휴스 올리펀트 올드는 개혁주의자들의 예배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경외감, 존엄,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확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하고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는 길이다. 인간 중심의 쇼에서 참된 예배의 길로, 참된 예배자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선택과 대안은 없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Worship According to the Word

번역: 송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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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Albert Mohler

앨버트 몰러는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총장과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으며, 'The Briefing'과 'Thinking in Public'의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오늘 나에게 왜 사도신경인가?'를 포함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