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에 뿌리를 둔 기독교 신앙
by Adam Stewart Brown2020-01-28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매년 여름 보솔레일 섬(Beausoleil Island)에서 2주간 야영을 했다. 호수가 잔잔한 날 물이 맑은 곳으로 가면 4야드가 넘는 깊이의 호수 바닥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하얀 물보라가 칠 때면 텐트를 친 호숫가의 불 옆에 앉아 다음날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책이 보트이고 독서가 그 보트를 타고 항해하는 것이라면, 파울라 프레드릭슨(Paula Fredriksen)의 신간인 ‘기독교인이 유대인이었을 때: 첫 번째 세대’(When Christians Were Jews: The First Generation)를 읽는 것은 금광을 표시해놓은 지도를 손에 들고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항해하는 엄청난 모험이 될 것이다.


학문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그녀의 의견에 반대할 것은 많지 않다. 프레드릭슨의 책은 정교하게 기술되었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추구하는 목표에 있어서 명확하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난파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정통 교리가 주는 안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프레드릭슨의 기본 전제는 좋은 것이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유대인 운동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진실을 재발견하려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권위자가 아니다.


기독교 첫 세대의 재구성


보스톤 대학에서 종교학을 연구하는 프레드릭슨은 바울 서신서, 복음서 그리고 사도행전의 배경이 되는 당시 상황을 설득력 있게 재구성했다.


그녀의 논지는 원래 “예수 공동체”는 나사렛 예수가 군주가 되어 종말론적 다윗 왕국이 임하기를 기다리는,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는 유대인 종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왕국이 실현되지 않자 그 운동은 빠르게 적응했다. 네 단계의 확장이 이뤄졌는데 처음에는 유대인, 예루살렘 거주민, 예수 공동체였던 것이 오늘날 “기독교”로 알려진 이방인 중심의 글로벌한 예수 제도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프레드릭슨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대관식이 아닌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서기 30년경) 처음으로 종말이 좌절되었다. 종말에 대한 환상이 두 번째로 깨어진 것은 예수의 부활이 모든 사람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고 중단되었을 때였다(서기 30-32). 세 번째 타격은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성전을 더럽혔을 때, 그것이 다니엘서에 나오는 “가증한 것”이 분명함에도 다니엘이 예언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종말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였다(AD 39-40). 이방인을 통한 기독교의 시작으로 연결된 마지막 실망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지만, 영원한 왕국이 예루살렘에 도래하지 않았을 때였다(AD 70).


프레드릭슨은 깔끔하고 강력하며 잘 정리된 이론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여기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1. 그녀의 이론은 성경의 무오함을 무시한다


프레드릭슨에 따르면 베드로전후서와 야고보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가 쓴 게 아니다. 또 자기가 살아 있을 때 예수가 다시 올 거라는 바울의 기대는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복음서는 고작해야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에 쓰인, 왜 하나님의 왕국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수정한 기록에 불과하다. 가장 늦게 쓰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애초 진짜 예수가 주장한 종말론적 가르침을 깎아내리는 동시에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를 합법화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프레드릭슨은 성경을 진지하게는 받아들이지만 믿음으로 받지는 않는다. 전적으로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그녀의 회의적 시각은 우리가 왜 그녀의 결론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준다. 프레드릭슨은 말씀 앞에 복종하기보다는 행여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말씀의 배경이 된 세계를 재구성한다. 한 마디로 ‘오직 말씀으로’(sola scriptura)의 정신을 거부하고 있다.


2. 그녀의 이론은 말씀 속 예수를 역사 속 예수와 대치시킨다


프레드릭슨은 바울이나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사회학적 목적을 위해 예수가 하지도 않았던 말과 행동을 성경에 기록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성경의 어느 부분이 역사적이며, 어떤 부분이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순간, 우리가 딛고 있는 믿음의 땅은 빠르게 침식해버릴 것이다. 성경 속 예수가 다름 아닌 역사적인 예수라는 확신은 정통 신앙의 근간이다.


3. 그녀의 이론은 부활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예수의 부활을 언급할 때 프레드릭슨은 부활한 예수를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만들어낸 만남이라고 묘사한다. 그녀는 예수 운동을 태동시킨 부활의 객관적인 권위를 무시한다.


만약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진짜로 살아났다면, 곧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주장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이 몇 달에 걸친 집단 환상을 경험한 것에 불과하다면, 예수 운동은 단지 사회학적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은 프레드릭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4. 그녀의 이론은 예수의 생애 이후에도 다윗 왕가를 요구한다


프레드릭슨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 출생 이야기가 불일치한 것처럼 주장함으로 나사렛 예수의 족보 배경은 그의 죽음 이후에 다윗 혈통의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예수를 다윗 혈통으로 바꾼 것은 예수 공동체가 정복하는 왕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윗과 같은 군인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예수 자신의 역사적 모습과 사명에 모순된다.


강철 막대로 세상을 정복할 다윗 혈통의 왕을 기대했다는 그녀의 해석은 옳지만(시 2). 구약은 또한 고통받는 종의 오심을 기대했다(사 53). 프레드릭슨의 주장과는 달리 예수를 따랐던 공동체는 예수가 자신에 대해 가졌던 이해에 상충하지 않는 두 가지 형태의 기대를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막 14:60-62).


5. 그녀의 이론은 4세기, 이방인을 중심으로 한 예수의 신격화를 주장한다


양자됨(sonship)에 구약의 구절을 활용하고, 또 고대 로마 황제 숭배 관습에 호소함으로써 프레드릭슨은 예수의 신성한 아들 됨에 관한 바울 서신서의 모든 주장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신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다윗 왕가의 가계도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레드릭슨에 의하면 예수는 성경이 쓰이고 한참이 지난 4세기에 들어서야 이방인이 만든 교회에 의해서 “하나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4세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프레드릭슨은 바울이 예수를 완전한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주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바울 서신서 외에 다른 많은 신약 성경에서 드러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하고, 하나님과 동등한(co-eternal and co-divine) 예수의 모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비록 그녀가 왕의 혈통이라는 구약 속 양자됨의 측면을 올바르게 해석했지만, 시작부터 예수에게 온전한 신성을 부여하는 성경 본문 전체와 구약의 구절을 상호 연결해서 이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앞을 조심하라


유대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재발견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프레드릭슨의 연구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녀의 사회 역사적 재구성에 의해 믿음이 흔들리고, 성경의 불신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당신 지적 수준과 신앙의 확고함을 먼저 확인하라. 그리고 믿음이 충만한 멘토를 꼭 곁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게 될 폭풍우를 함께 지나야 한다.




* 아담 스튜어트 브라운(Adam Stewart Brown) 박사(PhD)는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Southshore Bible Church의 담임 목사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en Christians Were Jew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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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Adam Stewart Brown

아담 스트워트 브라운 박사(PhD)는 캐나다 온타리오 베리에 위치한 Southshore Bible Church의 선임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