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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와 장로의 직분을 가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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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erek Thomas  /  작성일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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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이 땅에서 예수님이 이루시려는 한 가지 계획이 있다.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셨다. 그러다가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이르렀을 때,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


예수님은 과연 어떤 교회를 세우고자 하셨을까? 어떤 구조와 조직을 갖춘 교회를 세우고자 하셨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주어지게 된다. 우선 오순절 사건 직후에 탄생한 교회는 그 조직이 뚜렷하게 잡혀 있지 않았다. 그 교회는 사도들이 감독하는 하나의 모임으로서 네 가지 사역에 헌신했을 뿐이다. 즉 사도들의 가르침, 성도 간의 교제, 성찬, 그리고 기도에 집중했다(행 2:42).


그러다가 초대교회의 리더십은, 특별한 구성을 갖추지 않은 가정 모임에서부터 조직화된 회중으로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집사와 장로라는 뚜렷한 직분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신약교회의 ‘직분’에 관해 연구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리고 이 논의에서 핵심이 되는 쟁점은, 항구적으로 부여되는 직분과 일시적으로 부여되는 직분을 어떻게 서로 구별할 수 있느냐이다.


이러한 직분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서 다루기가 쉽지 않은 또 하나의 논점은,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예외적인 은사가 항구적으로 주어지는 은사인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주어진 은사인가 하는 문제이다. 나와 같은 은사중지론자는 신약에서 언급되는 일부 은사가 “사도의 표”(고후 12:12)로 주어졌다고 믿는다. 즉 구속 역사의 목적상 교회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약성경에 의존하고 있던 시기에만 주어졌다고 믿는다. 당시 초기 단계에 있던 교회를 이끌고 지도하는 데는 그처럼 예외적인 은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신약의 정경이 완성되고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사도라고 일컬어진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는, 집사와 장로 혹은 (해석자가 따로 구분할 경우에는) 목사와 같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직분만 존재하는 규범적인 상황이 교회 안에 확립되었다.


교회의 조직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는 디모데서나 디도서와 같은 후기 서신들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이 서신들은 더 이상 특별한 직분이나 은사를 언급하지 않고, 집사와 장로 그리고 디모데가 수행했던 복음 전파자의 역할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는 어떤 직분이나 은사가 교회의 유년기에만 허락되었고 성숙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집사의 직분


집사라는 직분은 교회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처음부터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을 수용하며 성장하자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문제의 정황은 이렇다. 당시 1세기 문화에서 과부는 취약 계층에 속했는데, 교회는 공동체 의식에 따라 그처럼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불평등하게 음식이 배분되어 실망하는 과부들이 발생하게 되었다(행 6:1-7). 이를테면 아람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과부들을 교회가 편애하여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과부들이 음식을 받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차별 대우의 문제가 교회 안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익숙하게 경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시 사도들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곱 사람을 선택해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런 해결책을 실행하여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고자 하였다(행 6:4).


물론 그런 편파적인 행동의 책임이 사도들에게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도들이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음식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행 6:2). 교회를 키우고 양육하는 데 자신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차원에서 일곱 사람이 선택되어 따로 세워졌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자질이 요구되었다. 즉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했다(행 6:3).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지역 교회에서 세움을 받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함으로써 임명을 받게 되었다(행 6:6). 이처럼 안수식과 임명식이 있었던 사실은 그들에게 분명히 구별된 사명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일곱 사람은 정말로 집사로 세워졌던 것일까? 이에 대해 성경은 그들의 직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섬기다’라는 의미를 가진 ‘디아코네오’라는 용어는 (‘집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디콘’(deacon)과 근접한 관계성을 지닌다. 그리고 일곱 사람이 집사라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어도, 그들은 성도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역을 하기 위해 임명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그 일곱 사람을 집사의 원형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직분은 교회가 말씀 사역과 좀 더 실천적이고 물질적인 사역을 어떻게 구분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결국 집사라는 직분은 성도의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 가령 재물과 음식을 나누거나 서로를 돌아보는 일을 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섬기는 리더십


여기서 우리는 교회를 섬기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또 영적으로 일정한 자격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신약성경은 언제나 섬기는 리더십을 전제로 한 직분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집사와 장로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야 하며 자신보다 타인을 더욱 돌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집사와 장로의 두 직분 가운데 어느 한 직분이 다른 직분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건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집사에게 요구되는 영적 자질을 나열할 때, 장로에게 요구되는 자격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제시했다. 집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제외한다면, 그 신앙의 덕성과 영성에 있어 최고의 수준을 보여야 했다(딤전 3:8-12).


앞서 언급한 사도행전 6장의 구제 사역은, 집사에게 일반적으로 부과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샘플과 같다. 이에 따르면, 집사는 구제뿐 아니라 교회의 재물과 소유 전반에 관련된 일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직분임을 알 수 있다. 이후에 바울은 집사의 사역 범위 안에 특별히 과부에 대한 섬김을 중요한 항목으로 포함시킨다(딤전 5:3-16). 그리고 일반적인 과부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과부에게 초점을 맞추고 교훈을 제시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내용은, 과부를 섬기는 일에 교회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사는 교회의 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관행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자원을 바르게 사용하는 분별력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지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따라 행동하는 영적 은사를 갖춰야 한다. 그리하여 어려운 문제를 처리할 때 정확한 사리 분별을 해야 한다.


여성 집사에 관하여


그렇다면 모든 집사는 남자여야 할까? 신약성경에는 여성 장로와 관련해서는 참고할 만한 본문이 없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되지만, 여성 집사의 경우는 다소 애매한 언급이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가령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자매 뵈뵈”를 로마에 있는 교회에 추천하는데, 이때 그녀에 대해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언급한다(1절). 여기서 ‘일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안수식이 요구되는 직분은 아니어도 집사의 사역에 참여하는 직무를 의미할 수 있는 단어이다. 또한 디모데전서 3장에서 바울은 집사의 자격을 설명하는 가운데(8-13절), 여자들에 대한 조건을 첨가한다(11절). 그런데 이러한 조건을 동일한 장에서 장로에 관해 설명할 때는 말하지 않는다(1-7절).


이와 같은 사실을 감안한다면, 디모데전서 3장 11절에서 “여자들”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카스’는 여성 집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의미로 읽을 경우에만 본문의 흐름이 산출하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내가 속한 개혁교단은 이러한 성경 해석의 전통을 따라 여성 집사를 인정하며 그 직분을 공식적으로 제정해 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입장이 여성 장로에 대한 논쟁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장로의 직분


이 글에서는 (오늘날 장로교단에서 ‘가르치는 장로’라는 명칭으로 구분하는) ‘목사’가 (‘다스리는 장로’에 해당하는) ‘장로’와 분리된 직분인지에 관해서는 다룰 수가 없다. 그 주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상당한 분량의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만 신약성경이 교회 안에 있는 또 다른 규범적인 직분으로서 ‘장로’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직분을 언급할 때 신약성경은 세 가지 타이틀을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한다. 그 세 타이틀은 ‘감독’(에피스코포스), ‘장로’(프레스뷔테로스), ‘목자’(포이멘)이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0장 17절과 28절에서 그 세 가지 개념은 모두 동일한 사람들에게 사용된다. 이 사실만으로도 지난 수백 년 동안 엄청난 분량으로 논의되며 쟁점이 되어 온 주장, 즉 각각의 타이틀이 독립된 직분을 가리킨다는 주장을 일축하기에 충분하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7절과 디도서 1장 5-9절에서 장로가 도덕적으로 또 영적으로 지녀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열거한다. 집사와 마찬가지로 장로 또한 특정한 덕목을 갖추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리더십이다. 성품의 결함은 그 어떤 재능으로도 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집사와 달리 장로가 갖춰야 할 특징이 있다면, 바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 3:2). 물론 모든 장로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딤전 5:17). 이는 일반 장로와 다른 역할을 감당하는 장로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이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집사 또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로서(딤전 3:9), 그중에서도 가령 나이든 여자는 젊은 여자를 가르쳐야 하고(딛 2:4), 나아가 전체 회중 또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를 가르쳐야 한다(골 3:16). 그리고 모든 신자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벧전 3:15).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능력만으로는 장로의 직분을 얻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능력이 장로에게는 더욱 분명하게 요구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권한에 있어서도 집사와 장로 간에는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집사의 권한은 그 집사가 속한 지역 교회에 제한되지만, 장로의 권한은 그와 같은 지역 교회를 넘어서 행사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의 장로들은 예루살렘 공회에 참석해서 신약교회 전체에 구속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행 15:6-21).


이와 같이 신약교회의 리더십은 집사와 장로라는 두 가지 직분을 통해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하여 교회 안에 그 두 직분을 공고히 세워야 한다. 잘 훈련받은, 경건한 직분자를 세우는 일은 교회가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이때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그 모든 일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전 14:40).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Leaders in the Church

번역: 장성우

작가 Derek Thomas

데렉 토마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럼비아에 위치한 First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이다. 그는 아틀란타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과 목회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Ligonier Ministries의 작가이며, 저서로는 한국어로 번역 '웰린 강해 신서' 시리즈와 'How the Gospel Brings Us All the Way Hom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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