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
by Scott Hubbard2020-01-13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이미 거룩에 대한 열망을 심어 놓으셨다. 그 거룩은 당신을 가두는 좁은 방처럼 불편하게 느껴지기보다 즐거움이 깃든 정원처럼, 하늘의 메아리처럼, 다시 찾은 에덴의 눈부신 경관처럼 아름답게 다가온다. 따라서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물론 그 자체가 영광스러운 사실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와 같이 의롭게 되기를 진정으로 사모한다. 그분이 거룩하시듯 당신도 거룩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룩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구체적으로 말해, 어떻게 하면 늘 더듬거리며 샛길로 빠지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께만 집중하는 영적 대화로 바뀔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잔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가 인생에 산적한 고민을 그분께 다 맡길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헛된 자랑을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이 가난한 심령으로 변화되어, 의에 대한 무관심이 뜨거운 갈망으로, 인색한 태도가 관대한 손길로, 쉼 없는 고달픈 일상이 평온한 생활로 바뀔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하면 인생의 궁극적 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분을 알 때만 생명을 얻고 가장 고상한 유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성경의 여러 본문을 통해서 그러한 거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르침을 대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곤 한다. 바로 거룩이란, 너무나도 자주 사소한 일들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평범한 일과를 주목하라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거룩을 어떻게 추구하라고 권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그는 전반부에 걸쳐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는다. 즉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생을 보증하셨다고 찬양한다(엡 1:3-14). 또한 우리의 영혼을 살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으며(엡 2:1-10)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선포한다(엡 3:14-19).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후반부에 걸쳐 바울이 하는 작업은, 그 복음을 일상의 소소한 생활 속에 적용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나열한다. 서로에게 진실하라(엡 4:15). 빨리 화해하라(엡 4:26). 정직하게 일하라(엡 4:28). 선하게 말하라(엡 4:29). 친절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으라(엡 4:32).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으로서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서로를 대하라(엡 5:22-6:9).


이 각각의 교훈은 그 자체로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거기서 강조되는 순종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관심을 잘 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순종의 대부분은 일상에서 쉽게 잊히는 순간, 어딘가 방치된 영역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스타프 빙그렌(Gustaf Wingren)은 루터의 직업소명에 관해 설명하며 “성화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평범한 일과 속에 숨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일상의 영역, 바로 거기서 거룩이 이루어진다.


눈을 땅 끝에 두지 마라


그래서인지 거룩을 추구하면서 미련한 자의 오류에 빠지는 이들이 많다.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잠 17:24). 저 멀리 있는 놀라운 광경만 바라보다가 정작 발끝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먼 미래에 실행하려고 거창한 순종을 계획하는 데만 마음을 둔 나머지 당장 코앞에 있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평범한” 순종은 실천하지 못할 수 있다.


날을 잡아서 아내와 아이들을 섬기는 데 하루 종일 헌신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당장 가사를 돌보는 일에는 무관심할 수 있다. 이다음에 미전도 지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게 해 달라고 뜨겁게 기도하는 선교사가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소그룹은 소홀하게 돌볼 수 있다. 언젠가 비영리 단체를 개설하여 사회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청년이 맡겨진 계산대 아르바이트는 대충 때울 수 있다. 앞으로 닥칠 어떠한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대학생이 조금 전 룸메이트가 치우지 않고 나간 그릇 더미를 보며 투덜거릴 수 있다.


이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때가 되면 순종하리라는 마음은 오늘의 순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곤 한다. 앞선 잠언에서 솔로몬이 밝혔듯이, 명철한 자는 자기 앞에 있는 지혜를 본다. 그는 오늘의 의무, 오늘의 과제, 오늘의 대화, 오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 모든 게 사소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크리스천은 그때그때 쌓이는 낱장의 벽돌로 웅장한 예배당이 지어지듯 거룩도 그렇게 이루어짐을 알고 있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는 일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평범한 과정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라


그렇기에 거룩을 추구하는 일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정도보다 더 쉽기도 하고 더 어렵기도 하다. 더 쉬운 이유는, 우리의 성장이 대부분 한 번에 한 단계씩 은혜 안에서 꾸준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어려운 이유는, 성화의 과제가 일상의 전 영역 속에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평범한 일과, 즉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그 모든 일을 통해 거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우리의 영적 성숙은 바로 이 “무엇을 하든지”에 달려 있다. 남들에게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특별한 일을 할 때든 평범한 일을 할 때든, 인생의 중대한 순간에든 일상적인 순간에든,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따라서 하루 열두 번도 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님이 10년 후에는 어떤 사명을 맡기실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잘못된 생각에 빠지려 할 때마다 그 생각을 바로 멈추는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시간에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 힘쓰는가?’, ‘한눈팔지 않고 오늘도 정진하고 있는가?’, ‘상대를 향해 따뜻한 말을 하고 있는가?’


이처럼 일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격려가 되기도 한다. 일단 부담이 되는 이유는, 주님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 자신만의 시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격려가 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가 애쓰며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매순간 지켜보시며 그 일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은 일, 말하자면 냉수 한 잔을 떠 주는 일조차 잊지 않으신다(마 10:42). 반드시 그 일을 기억하시며 그에 맞는 상급을 준비하신다.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게 된다(엡 6:8). 더 나아가 그분은 우리의 순종에 어떤 결함이 있든,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는 그 순종을 자신의 은혜로 덮으신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


그렇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거룩을 실천해야 할까? 당연히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C. S. 루이스는 ‘개인기도’(Letters to Malcolm)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의 원리를 제시했다.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시작하라.” 이를테면 매번 기도할 때마다 “창조와 구속과 ‘인생의 모든 복락’에 관해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모조리 고백하는 식으로” 기도를 시작하지 말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작은 대상들에 주목함으로써 기도의 말문을 열라고 권했다. 창가 너머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라든가 이제 막 끝마친 아침식사 또는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감사의 고백으로 기도를 시작하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가장 사소한 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다면, 가장 고상한 일에 대해서도 그분을 결코 예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우리의 순종에도 적용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세를 배운 자만이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 이 사실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작은 일을 통해 훈련되지 않고는 큰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고 엉망이 되었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를 익혀야만 자녀들의 구원과 같은 큰 일에 대해서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수입이 부족할 때도 자신의 소유를 내어주며 섬길 줄 알아야만 수입이 넉넉해졌을 때도 똑같은 마음으로 섬길 수 있다. 오늘 만나는 이웃과 부끄러움 없이 예수님을 나눌 수 있어야만 언젠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도 그분의 이름을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상의 작은 순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가 우리에게 대단한 순종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수십 년간 형성된 우리의 성품도 하루만에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한 변화는 긴 세월이 흐르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하루는 오히려 그보다 작아 보이는 일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친구를 용서하기, 부끄러운 생각을 멈추기, 아이에게 관심 갖기, 진심어린 말로 격려하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등.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상의 순종을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Offensively Ordinary Steps to Godliness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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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cott Hubbard

스콧 허바드는 Desiring God의 에디터, All Peoples Church의 목사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