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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은 당신의 반응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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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onathan Parnell  /  작성일 20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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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lia Pellegrini on Unsplash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 사건이다.


만일 골고다 언덕에서 그분의 생애가 끝났다면, 우리는 그 희생이 정말로 무엇을 이루어 냈는지 알지 못하여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선한 목적을 위해 그분이 죽으셨다고 한들,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아직도 무덤 속에 계신다면, 그 죽음이 기약한 모든 내용은 사실상 희망 고문을 안겨다 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면, 그 불멸의 생명은 그분의 죽음을 통해 실제로 무엇인가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으로 무엇인가가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그 죽음을 통해 우리 각자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부활은 실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전체도 부활이 남긴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부활이 도대체 성경의 전체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말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이 복음의 메시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복음이 그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님을 말해 준다.


단지 독서용이 아닌 이야기


기독교의 복음은 읽을 수 있는 한 편의 이야기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단지 독서용으로 기록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본질상 그 이야기는, 그냥 담담하게 내용을 관찰하는 태도가 아니라 뜨거운 마음으로 그에 반응하는 자세를 독자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신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성경은 “단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내려가는 반응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살아 내는 반응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이 그와 같은 반응을 요구한다.


만일 부활이 일반 전설과 같이 하나의 듣기 좋은 이야기일 뿐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반응도 필요 없이 그 이야기를 평가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별로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그저 흥밋거리로 읽고 머리로만 내용을 이해한 후에 원래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부활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다시 말해 바뀔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실제 사건이라면, 우리는 그 사건을 담고 있는 이야기에 완전히 사로잡혀야 한다.


그렇다. 정말로 부활이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라면, 우리는 그저 남들의 대화나 엿듣는 자세로 그 사건을 방관하며 지나가는 구경꾼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 이야기에 실제로 등장하는 군상들이기 때문이다. 저들과 똑같이 타락하여 똑같은 곤경에 처해 있는 자들이다. 결국 우리 각자는 영광을 쫓고 기쁨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아직도 정작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자들이다. 고로 이야기를 읽다가 깨닫는다. 이 이야기는 단지 우리에 ‘관해’ 말해 왔던 게 아니라,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고.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 그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사건은 언제나 그 이야기의 정점에서 우리의 반응을 기다린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든 혹은 애써 무시하고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심지어는 그 사건에 대해 아무 코멘트도 하지 않으려는 자세 또한 일종의 코멘트다.


교회의 초창기 지도자들이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의 영향이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죽으신 금요일과 이어지는 토요일까지도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일 수밖에 없던 그들의 두려움은,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다 사라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의 한 저자인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복음서에 이어 또 다른 책을 저술했는데, 그 책은 ‘사도들의 행전’이라고 불린다.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그 책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예수님의 생애가 아닌 초기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록되었다.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부활 사건이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 메시지 자체를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최초에는 부활을 목격한 증인만이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가 될 수 있었다(행 1:22).


누가가 기록한 첫 번째 설교를 살펴보면, 동요하는 군중을 향해 시종일관 부활에 초점을 두고 메시지를 전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메시아에 관한 구약 예언에 비추어 부활을 해석한다. 그리고 예수님이야말로 오랫동안 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담대히 선포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그러고 나서 부활과 뗄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을 언급한다. 곧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의 신분이 공적으로 선포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하늘에서 통치하시며 성령을 보내어 그 부활 소식이 더 강력히 들리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이다(행 2:32-35). 그리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리면서 설교를 마무리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이에 대해 누군가가 단언했듯, “하나님이 그분을 주님이자 메시아가 되게 하셨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베드로가 전한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이 바로 오래전부터 약속된 메시아이며 바로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찌할꼬


이 설교를 들은 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베드로가 마지막 말을 전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청중은 “마음에 찔려” 당혹스러워했다(행 2:37). 마음에 찔렸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옮긴 표현이다. 우리 식으로 옮기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의미이다.


이에 그들의 영혼은 진동하고, 인생의 위기감이 찾아들었으며, 그저 세상에서나 잘살아보려 애써 온 자들의 마음속에 그 모든 사실이 소용돌이치며 혼란을 자아냈다. 진짜 현실이 그들 앞에 드러난 것이다. 베일에 가려 있던 현실이 원색적으로 그들 앞에 펼쳐졌다. 정말로 중요한 사건이 이제 그들에게도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도 무언가 달라져야 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꾸준히 언급된다.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이나 매한가지였다. 사도들은 그 메시지를 듣는 자들이 분개하든(행 4:2), 이해하지 못하여 당황하든(행 17:32), 부활의 소식을 계속 전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부활의 현실은 모든 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말이다.


당신에게 선포되는 복음


우리는 바울이 안디옥에서 전한 설교를 통해서도 부활을 선포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안디옥은 오늘날로 치면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1세기의 대도시다. 그 도시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성경 이야기의 요점을 되짚어 본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메시아에 관해 언급하는 구약 예언에 비추어 부활 사건을 해석한 후, 그 사건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주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우리는 다시 한번, 이렇게 선포된 메시지가 청중의 삶 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볼 수 있다. 곧 바울의 설교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활은 그 소식을 듣는 자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부활은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나 교훈이 아니다.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앙의 사색거리도 아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다시 살아나셨다. 진짜 뉴스가 여기에 있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


이처럼 부활은 우리를 위한 죄 사함의 소식을 선포한다. 따라서 그 소식을 듣는 자는 단지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믿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부활은 우리의 반응을 요구한다. 이에 무응답으로 일관할 수 있는 중간 지대란 없다. 그 소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그 소식을 거절하고 멸망의 길로 걸어가든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그 생명을 바치셨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그 결과 이 순간에도 살아 계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자유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분을 받아들이고, 신뢰하고, 따르라.”


저 복음의 사자들이 여기에 있었다면, 이 같은 메시지를 당신에게 전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Resurrection Demands Response

번역: 장성우

작가 Jonathan Parnell

조나단 파넬은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위치한 Cities Church의 선임 목사로 최근 'Never Settle for Normal: The Proven Path to Significance and Happiness'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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