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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을 만큼 좋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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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obert B. Strimple  /  작성일 20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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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나는 1935년 세례(침례)를 받은 이후로 규모가 큰 ‘주류’ 개신교 교단에서 자랐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시절 유행했던 옛 자유주의를 설파하는 목사님들에게 많은 실망을 해서 부모님께 다른 지방의 정통 장로교회로 옮기자고 말했다. 우린 교회를 떠났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깊은 성경적 믿음을 주셨다.


오늘날 미국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주류 교회들은 성경적 신앙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어떻게 성도를 끌어모으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결과 매년 성도의 수가 줄어들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복음주의라는 용어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하다. ‘신생’ 교회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복음주의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상은 과거의 낡은 자유주의와 많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성경적 복음을 고수한다고 여전히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의 풍성한 기쁨과 성령의 힘으로 설교하기보다는 청중을 지나치게 의식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배우자, 부모, 자금 관리자가 되는지와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설교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이고 견고한 토대 없이 이런 설교만 듣는 청중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제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와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한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이 빠져서는 안 된다. 성도의 수가 증가하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에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이 선포돼야 하고 그것이 믿어져야 한다(롬 10:13-15). 복음이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핵심적으로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참담한 여론조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 본 자료에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1950년대에(내 세대)는 75퍼센트에 달했으나, 다음 세대(내 자녀 세대)는 35퍼센트로 줄었다. 그리고 진행되는 연구 프로젝트에 의하면 그다음 세대(나의 손주 세대)에는 15퍼센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연구에서는 “교회에서 자란 십 대들은 신앙을 급격한 속도로 거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들이 신앙에 다가서도록 할 수 있는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그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실용적’ 설교 주제가 왜 복음을 대체하게 되었는가? 1960년대 캐나다인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전달 도구가 마사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는 “교회의 문제는 나쁜 소식이 뉴스인 세상에서 복음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데 있다”라고 주장했다. 성경의 메시지는 좋은 소식일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살린 기적의 소식이다. 이러한 소식은 이웃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에 관한 일상적인 뉴스보다 더 믿기 힘들다. 복음의 내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큰 것이기에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증거들로 참되고 입증되었기 때문이다(히 2:3-4).


나는 당신에게 요한복음 11장 17절부터 45절에 있는 놀라운 이야기를 한 번 더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주님이 마르다에게 하신 질문,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것을 믿느냐”(26절). 마르다가 “예 주님, 믿습니다”라고 한 것처럼 성령은 우리 각자가 대답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다.


마르다의 대답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25절). 하나님 말고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고 나서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대답했다. “네, 주님. 내가 곧 오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마르다는 부활이 하나님이 행하실 엄청난 구원의 행위라는 것을 정확히 보았다. 그녀는 구원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메시아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것이다. “예 주님, 당신 안에 생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마르다는 사실상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이 세상에 오기로 약속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행하신 권위적인 기적을 알고 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예수님이 부르시자 실제로 죽은 자가 나왔다(43-44절). 예수님은 부활의 능력을 행하셨다. 그분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참된 마지막 구원자이자 참된 말씀이심을 증명하셨다.


대학 시절에 꽤 유명했던 프랑스의 실존주의 무신론자인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 “페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원은 나에게 너무 큰 단어야. 나는 그렇게 높은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구원은 예수님에게 너무 높은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예수 안에 있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소식은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크고 놀라운 소식이기에 믿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oo Good to Be True?

번역: 송유희

작가 Robert B. Strimple

로버트 스트림플은 University of Delaware를 졸업하고,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학위(ThM)를, University of Toronto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 명예교 수로 은퇴했으며,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에서 초대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그는 중국, 푸에트리코,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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