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약속하는 우리의 회복
by Petar Nenadov2020-06-17

“우리 오늘밤에 나갈 거예요 아빠?” 앞줄에 앉은 여자아이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일단 착륙하면 호텔을 알아보고 저녁을 먹을 거야.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되면 디즈니에 갈 거야.” 아빠가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오빠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마침내 디즈니월드에 가게 되었다며 어린애다운 흥분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애비(Abby)라는 여학생이 떠올랐다. 과연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애비는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애비는 우리 교회에 다니는 열여섯 살 된 학생인데, 최근에 암 진단을 받았다. 일 년 육 개월 전, 감기 증상인 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몸에 백혈병이 있어 화학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나는 디즈니에 가 보려고 올랜도에 간 것은 아니었다. 로젠 싱글 크리크(Rosen Shingle Creek)에서 개최되는 TGC 내셔널 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그 도시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공항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오하이오에서 올랜도까지 나 같은 사람들이 발길을 옮길 만한 공원이라든가 관광지에 대한 광고조차 접하지 못했다. 그런데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줄곧 강연을 듣는데, 비행기에서 앞줄에 앉아 떠들던 그 아이들의 기쁨과 언젠가 애비도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마음속에 수시로 찾아들며 이런 물음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복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소’라고 불리는 디즈니보다 어떤 점에서 더 나은 기쁨과 바람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고통과 위로


디즈니는 오래 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Make-A-Wish Foundation)과 제휴를 맺어 왔다(역주: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취지 하에 1980년 설립된 미국의 자선 단체로서 두 살 반에서 열여덟 살에 걸친 환자들의 신청을 받는다). 이 재단에 신청되는 소원 가운데 디즈니월드와 같은 리조트에 가는 일은 여전히 인기가 제일 높다. 그런 목적에서 ‘기브 키즈 더 월드 리조트’(Give Kids the World Resort)도 운영되는데, 이곳은 생명에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아이들과 가족들이 환상적인 휴양을 일주일 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70에이커 규모의 비영리 시설이다.


애비는 ‘메이크어위시’에 당첨되면 어떤 여행을 할 수 있는지 홀리(Holly)라는 자매를 통해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홀리도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자매로서 암 투병을 하고 있는데, 8년 전 ‘메이크어위시’에 선정되어 디즈니에 가게 되었다. 홀리와 그 가족들은 암이라는 질병과 그 치료 과정이 가져다주는 고통이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여행과 같은 바람이 환자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치료를 받는 도중에라도 바라볼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이 ‘메이크어위시’에서 하는 일을 알게 되면, 당연히 흥분되어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꿈에 그리는 여행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말인즉슨 그 아이들이 악몽과 같은 삶을 살아왔음을 뜻한다. 그 여행은 아이들이 겪어 온 아픔과 고통에 대한 위로를 상징한다. 어떤 아이들은 여행을 할 만큼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기 위해 더 많은 후원금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혹 여건이 된다면, 당신도 그 재단을 후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복음은 그러한 위로보다 어떤 점에서 더 나은 소망을 제시하는 것일까?


부활과 회복


내가 참석했던 TGC 컨퍼런스의 마지막 시간이 되자 팀 켈러(Tim Keller)가 나와 누가복음 24장을 해설하며 예수님의 부활이 내포하는 독특한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누가복음 24장 40-43절을 다루었는데, 그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 24:40-43).


켈러는 다소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식사 장면 속에 중요한 포인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육체와 영혼을 지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으로 등장한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꿈 속에 나타나거나, 또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 등장하신 게 아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실제로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이 자신의 손과 발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며 그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신 일은, 장차 새롭게 될 세상에서 새롭게 될 육체를 가지게 될 부활의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켈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활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위로 그 이상을 약속한다. 곧 ‘회복’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부활은 사실상 우리가 상실한 게 아무것도 없음을 말해 준다.”


당시 켈러는 독신으로 있는 지체들과 어려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에게 이 진리를 적용했지만, 나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남매와 지금도 자신만의 ‘메이크어위시’ 여행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식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우리 아들은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할 거야’, ‘우리 딸이 병원에 갇혀 고등학교도 못 다니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 모든 부모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므로 그 모든 자들을 위한 진정한 소망이 있음을 확신했다. 곧 새로워질 세상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믿는다. 우리에게 일어난 그 어떤 좋은 일도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믿는다. 진정으로 좋은 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은 끝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들려주는 좋은 소식은 세상이 들려주는 나쁜 소식보다 더 생생한 현실을 보장한다.


애비의 몸에는 암이 있지만, 암이 애비를 다스리진 않는다. 예수님이 애비를 다스리신다. 그래서 그녀는 수시로 손을 들어 그분을 찬양한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천을 보며 경배했던 이들처럼 말이다(눅 24:52).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이 들려주는 회복의 약속은 그 어디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그 약속이 제시하는 기쁨도 이 세상의 어떤 일시적인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가져다준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Restoration: the Promise of the Resurrection

번역: 장성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Petar Nenadov

페타 네나도프는 오하이오주 아크론에 있는 Lakeside Christian Church의 목사이며 'The Promised One: Matthew'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