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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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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Chris Castaldo  /  작성일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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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eremy Kuehn on Unsplash

설교자 모두는 성경에 대한 진지한 확신과 자신에 대한 냉정한 회의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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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설교를 시작하기 직전, 나는 강대상 앞에 서서 회중석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크리스, 오늘 네 설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고, 이들을 멍에로부터 구원하고, 하나님을 찬양케 할 것 같니? 너 정신 나갔구나. 대담하고, 뻔뻔스럽고,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제 설교를 시작해야지.“라고 생각한다.   


설교를 시작하기 직전의 그 짧은 순간, 의심의 화살이 온갖 방향으로부터 날아들 때, 내게도 반격용 무기가 있다. 사도신경에 기반한 스펄전(Spurgeon)의 말 “성령을 믿나이다”를 되뇌는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내 말의 무력함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때 내가 기억해야 할 말이다. 


또한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인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를 반복하여 선포한다. 성경의 말씀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권위가 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우리에게 설교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빛 안으로 끌려 들어올 수 있는 수단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권위에 대한 반감


회중석에 앉아 있는 이들 중 일부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 반감이 있을 것이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계몽주의 이후 세속화 시대에 점차 가속화되었지만, 사실 이는 우리 인류에게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먹었던 때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를 거부해왔다. 이러한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됐고, 옛날에는 권위를 위임 받은 사람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점점 더 사람들은 이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가정, 교육, 법, 교회 할 것 없이 말이다. 이 모두가 이 세상의 최종적인 권위이신 하나님을 인류가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는 주요 방식 중 하나인 설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한테 설교하지 마”는 타락 이후 우리가 주장해온 윤리적 독립성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설교한다”는 말은 원치 않는 요구들을 가지고 하는 지루한 연설과 동일시 된다. 교회에 다니는 이들은 이런 식의 태도를 떠벌리며 말하지는 않지만, 교회에 다니는 이들에게도 그런 식의 태도가 이미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 내용을 다루지는 않고 그저 듣기에 좋은 설교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무지하다는 사실도 이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조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기회는 전혀 없을 것이다.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자들이 스스로 잘 하고 있다는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지기 전에, 설교자 역시도 권위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성경 강해 워크숍에 참석하거나 서재에 존 칼빈(John Calvin)의 그림을 걸어두거나 스스로를 진리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이들 역시도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듯 고통스런 순간들이 있다. 결국 다른 죄인들을 향해 설교하는 설교자 역시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로 인해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있는 진리를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설교자가 설교하는 자세는 겸손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설교자 모두는 성경에 대한 진지한 확신과 자신에 대한 냉정한 회의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균형을 잡는 네 가지 방법은 기대, 강해, 관련성, 그리고 기름 부으심이다.


기대


교리 공부를 통해 성경의 권위, 영감, 그리고 충족성에 대해 적절히 배울 수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익하다(effective)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딤후 3:14–16).


성경이 영감(inspiration)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바울에게는 언제나 성경을 전하는 것이 유익하리라는 것에 대한 깊고 심오한 기대가 있었다. 우리가 잘 알듯 바울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라고 권면한 것은 바로 이 근거 때문이다. 이는 설교자들을 위한 복음이기도 한데, 설교자가 하는 선포의 유익성은 설득력 있는 웅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설교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유익하게 되도록 만들기 위한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으로 인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렇기에 말씀은 그 자체로 유익하다. 그러한 기대감으로 말씀을 전하자.     


강해


설교 준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설교자들은 종종 성실한 말씀 연구에 꼭 필요한 시간과 동기를 찾지 못해 쉬운 지름길 같은 것을 찾아보고자 하는 유혹에 맞닥뜨린다. 그러한 순간에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 본문의 권위, 다시 말해 하나님은 바로 자기 자신의 권위로 성경 기록자들을 감동시키셔서 하나님 자신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기록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벧후 1:21). 성경 본문에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의미가 있다는 이 전제야말로 설교자들로 하여금 매주 설교 준비에 충실히 임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하나님이 성경 본문에 영감을 불어넣으실 때 특정한 상황 속에서 하셨듯이 설교자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각 본문의 특정한 배경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여 하나님이 의도하신 메시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지닌 권위다. 이로 인해 설교자의 말씀 연구는 가치 있는 일일 뿐 아니라 필수적인 일이 된다. 


관련성


설교의 근간은 신중한 석의여야 하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바를 보면 설교는 또한 우리 삶에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교는 우리를 권면해야 하고 우리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설교에 인간적인 요소를 더한다는 말이 아니다. 권면과 적용은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 의도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설교는 우리의 지성을 깨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설교는 또한 우리 마음을 격려하고 꾸짖기도 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를 행하는지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7). 바울처럼 설교자도 보살피는 양 떼를 잘 먹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기름 부으심


성경은 자기 자신이 먼저 복음에 사로잡힌 후에 열정적으로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각자 같은 이들을 보여준다. 구약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말씀 선포에 관하여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고 고백했다. 


이런 불붙음이 신약에서 오순절 날에 임했는데, 예수께서는 이 날에 대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중략]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다. 이 은사의 열쇠는 청교도들이 말했던 바 기름 부으심이다. 기름 부으심은 어떻게 임하는가? 기름 부으심은 설교자가 성경 본문의 권위와 하나님의 보좌를 이어주는 권위는 무엇인가 같은 주제를 묵상할 때 받는 것이다. 기름 부으심은 설교자로서의 부르심이 갖는 권위를 묵상할 때 주어진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그 신적인 순간이 바로 기름 부으심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아름다움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꿰뚫는 그 순간이 바로 기름 부으심이다.  


천상의 힘


설교자가 해야 하는 일이 하늘에서 주시는 권위로 뒷받침된다는 확신을 되살리지 않으면 성경적인 설교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이 명제 안에는 결국 영감된 본문의 성격, 그것이 지닌 유익성에 대한 기대, 통찰력을 주는 강해, 회중의 삶에 대한 깊은 관련성, 그리고 그 말씀이 선포될 때 임하시는 기름 부으심이 모두 들어가 있다.  


설교자로서 입을 열기 직전에 불화살들이 날아들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말씀을 맡은 종을 통해 신적 권위가 역사하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 그리고 그가 주시는 권능의 은혜에 힘입어 부름 받은 설교자들이 설교할 수 있는 것이다.




원제: Courage to Preach

출처: www.ligonier.org   

번역: 이정훈

설교의 근간은 신중한 석의여야 하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바를 보면 설교는 또한 우리 삶에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교는 우리를 권면해야 하고 우리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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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Chris Castaldo

크리스 캐스탈도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 있는 New Covenant Church의 선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Justified in Chris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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