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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가 새롭게 풀어놓는 구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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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atrick Schreiner  /  작성일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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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을 읽을 때, 한 눈은 옛 이야기에 두고 또 한 눈은 새 이야기가 보여 주는 변화에 맞춰야만 그 메시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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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복음서의 진가, 특히 마태복음의 아름다운 특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태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그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확신에 차서 들려주는 메시지는 단지 본문의 기사뿐 아니라 그 기사의 배열, 즉 마태가 저자로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을 고려할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마태가 사용한 이야기의 형식을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를 얼마나 정교하게 엮어 놓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기록한 복음서는 한마디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진전되는 이스라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더 쉽게 표현해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마태복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 이야기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 이야기는 어떻게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는가?

-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 이야기는 어떻게 진전되는가?


그러므로 마태복음을 읽을 때, 한 눈은 옛 이야기에 두고 또 한 눈은 새 이야기가 보여 주는 변화에 맞춰야만 그 메시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태가 풀어놓는 요셉 이야기


먼저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예로 들어 보겠다. 얼핏 보면, 마태복음 1장 18절에서 2장 23절에 소개되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읽힌다. 여기서 예수님의 탄생은 요셉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초반부에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꿈을 통해 그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장차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분이심을 알게 된다(마 1:18-25). 그러다 2장으로 넘어가면, 예수님의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이후에는 라마로 올라와 결국에는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된다. 이 모든 여정은 환난을 피해 진행된다(마 2장).


그런데 마태는 이러한 사실을 단순히 기술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에는 또 다른 요셉이 등장한다. 그도 꿈꾸는 자였으며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 자기 가족을 애굽으로 내려오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이후에는 그 가족(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나게 된다. 바로 이 이스라엘 이야기는, 이제 마리아의 남편인 새로운 요셉을 통해 반영되고, 성취되며, 진전된다. 창세기에서 요셉은 자기 가족을 애굽에 청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일시적으로 기근에서 구원하는 역할을 감당했지만, 마태복음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써 아기 예수님을 살리게 되며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진짜 대적인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게 된다(마 1:21).


물론 마태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탄생과 피신에 관한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처럼, 이스라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때 독자들은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꿈쟁이 요셉과의 비교를 통해, 마태는 옛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비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마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새로운 요셉으로 묘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예수님을 새로운 요셉으로 그려낸다. 이를테면 요셉과 예수님 모두 각자의 아버지에게 총애를 받았고, 형제들에게는 배척을 받았으며, 고난과 유배의 시간을 거치다가, 이방인의 법정에 세워지게 되며, 마침내는 자신을 배신한 형제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 백성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이자, 새로운 구원이며, 누구라도 그 면전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통치자로 등장하신다. 이렇게 옛 이야기가 들려주는 메아리가 우리 귓가에 들리면, 그때부터 이야기의 깊이와 아름다움은 더 선명히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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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가 풀어놓는 모세 이야기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로 마태복음 17장 1-8절에 등장하는 변화산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이야기 역시, 일견 단순해 보인다. 예수님이 어느 산에 오르셨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그 곁에 함께 나타나더니 용모가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관복음 전체가 바로 이 변화산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유독 마태복음만 모세와 시내산을 특별히 떠올리도록 독자들의 시선을 모은다. 즉 마태가 이 본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옛 이야기를 반영하고, 성취하며, 진전시킨다.


우선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모세처럼 6일 후에(출 24:16) 한 높은 산에 오르시는데(출 24:12), 이때 세 명의 사람이 동행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다(출 24:1). 그리고 구름이 산에 덮이더니(출 24:15-18), 그 구름 속에서 어떤 음성이 들린다(출 24:16). 그런데 마태복음은 여기서 다른 공관복음과 달리, 모세 이야기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세 가지 요소를 포함시킨다. 첫째로, 마태는 마가와 달리 모세의 이름을 엘리야보다 앞에 둔다(마 17:3; 막 9:4; 여기서 누가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과 비교하며 마태의 의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마가복음이 공관복음 가운데 가장 이른 저술로서 마태의 저술에 참고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로, 마태는 장차 오리라고 예언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암시한다(신 18:15). 가령 변화산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에 관한 음성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들려왔던 음성과 동일하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소개되는데, 여기에 한 가지 명령이 덧붙여진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이다. 이 명령이 첨가된 이유는, 모세가 훗날에 자신과 같은 선지자가 나타날 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했기 때문이다(신 18:15). 셋째로, 마태는 마가라든가 누가와 달리 예수님의 얼굴이 빛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마 17:2; 출 34:30 참조).


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는 유사점을 통해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는 예수님을 새로운 선지자요 새로운 중보자로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변화된 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분으로 묘사한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을 때, 그 역시도 변화되었다. 이는 율법의 목적이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는 데 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출애굽의 목적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의 영광을 반영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 앞에서 변화되신 사건은 다름 아닌 모세 이야기를 완성시킨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새로운 중보자로서 새로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임재를 반영하셨던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통치 아래에 살며 그분의 영광을 반영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소망을 성취하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세 이야기를 진전시키셨다. 그리고 모세와 달리 예수님의 얼굴은 영원히 빛나면서도 그 얼굴을 가리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빛나는 얼굴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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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가 풀어놓는 ‘의로운 피’에 관한 이야기 


마태가 이스라엘 이야기를 더 깊이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요소는 모세나 요셉과 같은 ‘인물’만이 아니다. ‘상징’ 또한 그 이야기를 반영하고 성취하며 진전시키면서 마태의 저술 목적을 이루어 낸다. 예를 들어 그는 ‘의로운 피’라는 주제를 들어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킨다. 다시 말해 구약의 서두부터 결말에 걸쳐 등장하는 피에 관한 내러티브를 하나로 묶어 예수님의 피를 통해 그 내러티브의 목적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 준다. 예컨대 마태복음 23장 34-35절에서 그는 (구약의 첫 살인 사건을 가리키는) “아벨의 피로부터” (구약의 마지막 살인 사건을 가리키는)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언급한다. 그리고 여러 메신저가 이스라엘에 보냄을 받지만 그들이 배척당하게 되리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닥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마 23:34-35).


여기서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의로운 피’라는 주제를 사용한다. 이러한 ‘피’의 주제는 마태복음 26-28장 도처에 널려 있다. 아래의 여섯 가지 예를 한번 살펴보자.


1.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언약의 피'와 '죄 사함'을 함께 언급하신다(마 26:28; 렘 31:27-40).

2. 유다는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아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아벨과 사가랴의 피에 관한 앞선 진술을 반영한다(마 27:4).

3.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받은 돈을 '핏값'이라고 하며 그 돈으로 밭을 산다. 그래서 이 밭은 '피밭'이라고 일컬어진다(마 27:6, 8).

4. 빌라도는 자신의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라고 선언한다(마 27:24).

5. 이스라엘 백성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친다(마 27:25).

6. 빌라도의 아내는 '저 옳은 사람', 즉 예수님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전갈한다(마 27:19).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아벨이나 사가랴처럼 의롭지만 고난받는 자로 묘사된다.


이렇게 피를 언급하는 예를 살펴볼 때, 독자들은 마태복음 23장 35절을 떠올리며 ‘피’에 관한 내러티브가 어떻게 이스라엘 이야기를 반영하고, 성취하며, 진전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장면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은, 그 백성에게 버림받은 목자, 다시 말해 무고한 피를 흘린 새로운 목자로 그려진다. 또한 이방인 적으로 인해 피신했다가 마침내는 그 손에 죽임을 당해 성전인 육체가 찢기는 고통을 겪은 새로운 이스라엘로 그려지신다. 바로 이분의 피는 완전무결한 피였기에, 그 피로 인해 새로운 출애굽이 일어나고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고했으나 피를 흘린 이야기와 자신의 죄 때문에 대적한테 침략을 받아 피를 뿌린 이야기가 이스라엘 역사에 공존한다. 예수님의 피는 그 두 가지 내러티브의 목적을 함께 성취한다. 그분의 죽음을 다룬 마태의 이야기는 표면적인 수준에서도 의미를 전달하지만, 앞서와 같은 상징이 자리한 더 큰 문맥을 살펴볼 때 심층적인 수준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결론


이 글의 지면상 마태복음에서 어떻게 예수님이 새 아브라함이 되시는지(즉, 어떻게 동서로부터 많은 백성이 이르는지), 새 다윗이 되시는지(즉, 어떻게 진정한 왕으로 다스리시는지), 새 솔로몬이 되시는지(즉, 어떻게 참된 지혜를 가르치시는지), 또 새 예레미야가 되시는지(즉, 어떻게 예루살렘의 운명을 바라보며 슬퍼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밖에도 다루지 못한 요소는 많다. 가령 가룟 유다는 새로운 이세벨이나 아히도벨 또는 압살롬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반역하는 유형에 속한 인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새 열두 지파로, 유대 지도자들은 애굽과 앗수르 및 바벨론의 새 통치자로 그려질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산들은 시내산과 비교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나아가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닐던 광야를,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강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던 바다를 새롭게 연출할 수 있다.


이처럼 마태는 이스라엘 이야기를 반영하고, 성취하며, 진전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다가오는 세대를 제자 삼고 가르치고자 했다. 바로 그 기록이 자신이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지혜는 다름 아닌 마태복음의 ‘형식’ 속에 잘 묻어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넓은 문맥에서 읽어 보도록 하자. 그리하여 새롭게 눈에 띄는 진리로 다시금 놀라운 깨달음을 얻도록 하자. 




원제: Matthew’s Gospel as You’ve Never Read It Before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장성우


모세와 달리 예수님의 얼굴은 영원히 빛나면서도 그 얼굴을 가리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빛나는 얼굴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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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Patrick Schreiner

패트릭 슈라이너는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있는 Western Seminary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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