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싸우는 나를 돕는 미래의 나
by Trevin Wax2020-07-14

올해 초, 기독교 대학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내게 다가오더니 죄와 싸우는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그 학생은 포르노의 유혹을 이기는 데 헌신하는 젊은이 모임에 가입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모임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 설명해 주면서, 혹시 내게 그 모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죄와 싸우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전략이나 전술이 있는지 물었다. 


내 첫 번째 반응은 그 모임에 꾸준히 참석함으로 회개와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 최대한 유익을 누리라는 것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언젠가 죄가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게 하고, 또 죄와 싸울 때 혼자 싸우도록 놔두는 걸 즐기는지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교회의 경우 줄 수 있는 도움이라고는 은혜가 넘치는 형제 자매가 모여서 함께 거룩을 추구할 때 느끼는 동지애를 제공하는 게 전부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죄를 정복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서로 서로 돕기 위해 구성된 책임 그룹(accountability groups)의 경우, 의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특정 죄를 얼마나 멀리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지난 모임 이후 특정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를 물어보는 방식으로까지 형식이 발전하는 경우, 성숙한 인격 대신 죄에 대한 저항이 “성공”으로 정의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모임에서 주인공은 죄다. 거룩함은 단지 조연이 되어 저쪽 구석에 머물 뿐이다. 


죄로부터 멀리 초점을 옮기기


체중 감소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생각해보자. 그 모임에서의 대화가 지난 주간 먹지 않은 음식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어떻게 될까? 목요일, 레이첼은 그렇게 갈구하는, 고기가 많이 들어간 치즈 버거를 먹지 않았다. 금요일, 아론은 의지력을 발휘해서 M&M 초콜릿 큰 봉지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토요일, 존은 친구들과 놀러 나갔을 때 항상 먹던 피시앤칩스 대신 샐러드를 먹었다. 


의지력이 가져다준 작은 승리를 축하하고 서로 더 좋은 결정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대화의 초점은 온통 먹지 않은 음식이다. 달리 말해, 주목의 대상은 다름 아닌 유혹이다. 


그러나 죄에 승리를 거두는 데는 더 나은 길이 있다. 피하고 싶은 죄가 아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초점을 돌리는 것이다. 너무도 자주 우리의 관심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과거의 죄 또는 지금 싸우고 있는 현재의 유혹을 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다. 미래에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유혹으로부터 승리를 거두는 길은 나를 무너뜨리는 죄에 주목하는 대신, 나를 그의 형상을 닮은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구세주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에게는 미래의 내(future self)가 필요하다. 


당신의 미래 모습


왜 유혹을 이기기 힘든가에 대한 다니엘 골드스타인(Daniel Goldstein)의 TED 강의 일부를 살펴보자. 


이것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불평등한 싸움이다. 내 말은 이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현재의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나를 주관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있는 힘이다. 강한 팔을 가지고 내 입에 도넛을 넣을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미래의 나는 근처에 없다. 저기 멀리 미래에 있다. 미래의 나는 약하다. 변호사도 근처에 없다. 미래의 당신을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나의 모든 꿈을 짓밟는다. 두 자아 사이에는 계속적인 싸움이 있으며, 우리에게는 이 둘 사이의 싸움이 불평등한 싸움이 되지 않도록 도와줄 약속 장치(commitment devices)가 필요하다. 


이 강의와 관련해서 매튜 리 앤더슨(Matthew Lee Anderson)은 이렇게 썼다.


"약하거나 희미하게라도 미래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현재의 유혹에 저항하는데 도움을 주는 전략이 생긴다. [중략] 미래의 삶을 보다 더 생생하고, 보다 더 강렬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금 할 일을 행하는데 필요한 더 많은 내적 자원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종말론적 제자도’(Eschatological Discipleship)에서 강조했던 포인트 중 하나다. 사도 바울이 가졌던 종말론적 소망은 그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또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그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백한 종말론적 소망에 근거하여 예수님에게 순종하라고 권고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미래의 약속에 근거하여 현재의 순종을 요구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죄를 이겨야 하지?”라는 질문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미래의 나로 가는 길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C. S. 루이스(C. S. Lewis)는 작고 겉보기에는 미미한 선택이 가져다주는 평생에 걸친 효과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승리뿐 아니라 좌절로 점철된 궤도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형성해 가는 존재로 모든 인간을 묘사한다. 


당신이 뭔가 선택을 할 때, 당신은 자기 중심에 있는 뭔가를 바꾼다. 그 작은 선택이 당신을 과거의 당신과는 아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당신이 선택한 그 수많은 결정들은 당신의 중심을 아주 조금씩 천국의 피조물 또는 지옥의 피조물로 바꾸고 있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피조물 아니면 전혀 다른 피조물로,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과 전쟁을 벌이는 존재로 바꿀 수도 있다. 천국에 어울리는 피조물이 될 수도 있다. 거기에는 기쁨과 평화, 지식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피조물이 되는 결과는 광기, 공포, 어리석음, 분노, 무능 그리고 영원한 외로움이다. 우리 각자는 다 매 순간 아주 조금씩 이 둘 중 하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미래의 나를 그리며 정욕과 싸우기


자, 정욕과 싸우는데 효과적인 전략을 물어온 그 학생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가벼운 섹스”라는 환상에 빠진 오늘날 수많은 학생들은 또한 “가벼운 포르노”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포르노는 그냥 어쩌다가 잠깐 빠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얼마든지 축소되거나 정당화될 수도 있고 또 우리 영혼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기에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는 식이다. 고맙게도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모임을 만든 학생들은 이런 죄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기에 정욕과의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평생에 걸친 정욕과의 싸움에는 특정한 죄에 초점을 맞추어 서로를 돕는 책임 그룹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교회 전체가 필요하다. 승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특정한 죄 또는 유혹으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 모여서 의로움을 갈망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만족할 것임을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괴롭히는 죄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되어갈 미래의 자신을 향한 영광스러운 비전이다. 


평생 포르노에 탐닉했는데 단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면 어떨까? 녹음기의 빨리 감기처럼 10년, 20년 또는 30년 후를 한번 빠르게 돌려서 상상해보라. 당신의 미래 모습은 과연 어떨까? 포르노와 같은 육체적 정욕을 탐닉한 당신은 속에서부터 텅 빈 구멍을 가진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과 관련해서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당신의 감각은 아예 죽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제 다른 궤도를 한번 상상해보자.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뒤로 물러서기도 하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강렬하게 느끼면서, 죄악된 정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는 당신의 갈망은 그 어떤 여지를 두지 않는 집중력을 갖고 온전히 성령님만을 의지한다. 그럴 때 당신은 점점 더 순도 높은 불타는 의로움에 헌신한 전사의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당신은 하나님이 부여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잡고, 일곱 번 넘게 쓰러지는 의로운 사람들처럼, 비록 실패했을 때라도 다시 일어나 그 전투를 이어간다. 당신의 시선은 결코 당신을 쓰러뜨린 죄를 향하지 않는다. 대신 그 경주에서 당신을 붙들고 있는 구세주를 향한다. 당신의 미래 자아는 지난 몇 년 동안 절뚝거린 힘 없는 영혼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에너지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동원해서 죄와 싸워내는, 영적으로 강건하고, 의로움의 힘으로 빛나고 또 은혜와 용기로 가득찬 모습이다.  


미래의 당신이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제부터 다음 번 유혹을 받을 때, 죄 너머를 보기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당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타임머신을 통해 미래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검을 집으라.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How Your Future Self Helps You Fight Present Sin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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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