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척에 있어서 즉각성이라는 우상
by Adam Ramsey2021-04-15

급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인내로 나아가는 연습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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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특별히 복음전도 목회자)가 반복하는 죄는 성급함이다.” (유진 피터슨)


내게는 아내와 동료들이 입증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나는 뭐든 빨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운전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기록하고, 먹고, 걷는 것조차 빨리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공항에서 꾸물대는 사람들이나 추월 차선에서 규정 속도보다 낮게 달리는 뻔뻔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화 있을진저.


나는 기도할 때에도 "주님 '지금 당장' 내게 인내심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몇 년 간, 천천히 하는 법을 배우긴 했다.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일하시는 속도에 집중했고, 주님 앞에서 잠잠하게 기다렸다. 


신속함의 우상


보편적으로 선진국가의 교회 개척자들은 마치 대륙횡단 여행 중에 있는 네 살 아이 수준의 인내심을 갖고 있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어요? 얼마나 더 가야되요?’ 우리 마음의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나는 수만 명 규모의 초대형 교회와 몇십 명 정도 되는 가정교회, 그리고 그 중간 규모 정도되는 교회에서 목회한 경험이 있다. 각각의 경우, 내 마음은 성급함이라는 유혹에 사로잡혔다. 즉각적 만족감을 주는 우상과 같은 유혹은 모든 사역의 현장에 존재하며, 우리가 풍성한 비전과 자원의 부족함 사이의 긴장을 다룰 때, 이러한 유혹은 교회 개척자들을 심각하게 괴롭힌다.


교회 개척자들은 날마다 유혹에 대해 깨어서 성령께서 움직이시지 않는 순간까지만 나아가야 한다. 성도들의 창을 통하여, 우리가 그들을 위해 갈망하는 것과 우리가 실제 보는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을 발견해야 한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결혼 생활과 사역을 밑바닥까지 혹사시키는 리더는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경 말씀의 지혜가 교만함과 인내심을 나란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 어찌 놀랄만한 일이겠는가? 예를 들어 전도서 7장 8절을 보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성급함이란 우리의 시간이 하나님의 것보다 낫다고 여기는 생각의 교만이다.


서두르지 않는 예수님의 사역


마치 처음 출전하는 큰 시합에서 출발선에 서 있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교회 개척자들은 출발할 때부터 지속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며 빛처럼 빠른 속도에 이르도록 추진시키는 아드레날린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무엇보다 목회자는 장거리 선수지, 단거리 주자가 아니다.


짐 엘리엇(Jim Elliot)이 '소음, 서두름, 그리고 군중'이라고 명명했던 불경한 삼위일체는 우리의 기쁨을 쉽게 빼앗아 간다. 대형 교회 혹은 성장하는 교회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공생애의 최전선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들에 대해 우리 역시 어느 정도 경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첫째로, 즉각적 만족의 성급함이었다.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둘째로, 화려한 과시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유혹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마 4:5–6). 마지막으로, 사탄은 세계적인 영광과 능력을 미끼로 사용했다(마 4:8–9). 


이들 각각의 유혹 (성급함, 자기 증명, 영광)은 타이밍과 관련이 있다. 결국 예수님의 금식은 끝날 것이고, 메시아로서 주님의 정체성은 입증될 것이며, 지상 왕국의 영광은 그분께 속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이다.


그리고 '아직'의 시간 동안, 예수님은 인내하시며 성부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고 계신다. 복음서에서 단 한번도 급하게 행동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는가?


성령의 속도에 맞추어 달리라


알란 크라이더 (Alan Kreider)가 쓴 ‘초대 교회의 숙성된 인내’(The Patient Ferment of the Early Church)라는 책에서, 그는 인내야말로 로마의 통치 아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필수 덕목이었다고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인내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해야만 했다. 상황을 조작하거나, 근심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결코 그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그야말로 교회 개척을 위한 놀라운 지혜다. 


오래 지속되는 사역을 위한 사역의 더딘 속도는 후진이 아니라 많은 결실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서구 교회는 컨퍼런스나 팟캐스트라는 하늘에서 잠깐 있다가 금새 없어지는 별똥별을 흉내내는 리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계절을 이해하고 기다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농부와 같은 리더가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에 우리보다 더 큰 책임을 가지고 헌신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수확하는 성실한 사역의 리듬 속에서 쉼을 누릴 수 있다. 모든 결과는 주님께 맡긴 채 말이다. 야고보서 5장 7–8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급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인내로 나아가는 연습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엄청난 기도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사역으로 이끄는 삶의 규칙을 통해 거룩한 한계를 수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한 충실한 결말을 만들어 내는 리더십 습관(예를 들어, 참된 다양성, 솔직한 친구관계, 정기적인 안식일의 쉼, 그리고 성급하지 않은 기도생활 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닥쳐올 문제들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때 인내는 성장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만 고정하면 된다. 시간을 창조하신 그분께서는 결코 계획의 뒤편에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심지어 기다림조차도)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영광스러운 진리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원제: Church Planting and the Idol of Immediac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정진호

오래 지속되는 사역을 위한 사역의 더딘 속도는 후진이 아니라 많은 결실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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