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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이 영원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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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 C. Sproul Jr.  /  작성일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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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죄는 적절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죄는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것보다 어떤 것을 더 사랑하거나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것보다 어떤 것을 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절하게 사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와는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를 찾았다. 거기까지는 잘못된 것이 없었다. 하와가 그 열매를 보지 않으려면 눈이 안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와는 마땅히 그래야 했던 것보다 그 열매를 더 사랑했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했던 것보다 하나님의 법을 덜 사랑했다. 우리 역시 죄인이기 때문에, 흔히 우리의 시험은 어떤 죄를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며 옹호할 때 찾아온다. 우리가 “진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웃의 명예를 훔치는 일은 사랑으로 또 다른 죄를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웃의 아내를 훔치는 일도 죄를 옹호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적절하게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적절한 척도에 따라 사랑하는 것이다. 적절하게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마땅히 사랑해야 해야 할 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죄는 두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모두 마땅히 사랑해야 할 만큼 여호와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령 받았다. 따라서 우리의 거룩한 열정은 하나님께로만 향해야 하고, 다른 모든 감정은 이 열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적게 사랑하거나 혹은 너무 많이 사랑함으로써 실패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는 말씀도 그런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는 적절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이 두 종류의 실패가 종종 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것을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너무 조금 사랑하고, 또한 반대로 어떤 것을 너무 조금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너무 지나치게 사랑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실 때(마 6:33) 똑같은 요점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염려를 멈추라고 권면하신 후에 이 명령을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해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신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마음을 집중할 것을 명령하신다.


물론 이것은 먹고 마시고 옷 입는 것이 죄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천상적이고 신령하고 거룩한 것을 위하여 더럽고 비천하고 세속적인 것을 피하는 일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가 아니다. 동일한 맥락(마 6장)에서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의 양식은 아디아포라에 속하는 문제이다(즉, 가치중립적이다). 우리의 음료도 아디아포라에 속한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이런 문제로 서로 비판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롬 14:13). 그러나 우리는 아디아포라에 속해 있는 대상들을 사랑함으로써 잘못된 길로 갈 때 죄를 범한다.


한편, 산상설교의 이 맥락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지혜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과도하게 분리시키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런 것들에 관해 염려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 다음에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촉구하심으로써 천국 지향적인 관점을 견지하여 이방인과 같이 그런 것들을 갈망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는 점을 상기시키신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것들에 집착하거나 또는 경멸의 눈초리를 보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온갖 좋은 선물에 대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선물에 눈이 어두워져 선물을 주시는 분을 보지 못하는 열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온갖 좋은 선물을 통하여 선물을 주시는 분을 보고 찬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세계이다. 아버지의 법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만, 우리에게 감사하지 않을 자유란 없다. 하나님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죄로, 딸기 아이스크림을 의로 보시지 않지만, 바로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가 우리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감사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분명히 우리가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우리의 감사를 통해 드러난다. 다시 한번,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심을 명심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세워진다. 하나님은 우리만이 아니라 이 세상도 다스리신다. 그러나 우리와 세상의 구별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반발하여 분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감사함으로써 드러난다.


이 세상의 평범한 일들, 곧 세상 것들은 단순히 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단순히 자연적 영역의 도구들이 아니다. 대신에 그것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로부터 온 보배로운 선물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사는 영원히 메아리칠 것이다. 아디아포라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간에, 모든 것이 위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관련되어 있다. 단순히 인간에게만 속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Right Now Counts Forever

번역: 김귀탁 (매일배움)


작가 R. C. Sproul Jr.

R. C. 스프로울 주니어는 본명이 Robert Craig Sproul로 Grove City College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Whitefield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칼빈주의 작가이며, 신학자인 그는 Ligonier Ministries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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