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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서 보아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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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achael Starke  /  작성일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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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stock

보호하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남성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드려 여성을 위한 피난처와 보호자가 되어주는 남자들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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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 내 SNS 뉴스피드에 끔찍한 성적 착취로 고통을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여성들은 자기 나라에서의 성폭력을 피해 탈출했지만 이민국 직원들에 의해 강간을 당하거나 인신매매로 팔려나갔다.


내가 일하는 실리콘 밸리의 언론 매체 두 곳의 보도에 의하면 첨단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들도 동료들에 의해 성희롱을 당하거나 유혹에 노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사석에서 나눈 대화에서, 자기 어린 자녀들이 포르노를 본 후에 서로 성적인 장난을 쳤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슬프게도, 오늘날 이러한 예들은 넘쳐난다.


나는 엄마이고 딸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딸들에 대한 염려를 이겨보려 하는 나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기반이 없는 엄마들은 이렇게 성적으로 망가져 있는 문화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더더욱 모를 것이다.


문화: 악당인가 구세주인가?


자신 역시 성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한 조디 알라드(Jody Allard)라는 미혼모가, 성적인 폭력은 실재하고 이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청소년기에 있는 자기 아들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에 관해 글을 썼다. 알라드는 아이들이 엄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문화가 이미 아들들에게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알라드가 믿기로는 자기 아들들의 사고방식은 외면적으로 문화의 영향이고 해결책이라는 것들 역시 외면적으로 공교육을 통해 받은 것들이다. 알라드는 자신의 노력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낙담해있고 결국 이렇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여가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들조차 근본적으로는 알라드 자신에게 안전한 존재가 아닌 셈이다. 


알라드의 글에 대한 반응은 익히 봐 왔거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재빠른 비난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나는 알라드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성폭행과 성적 착취를 경험한 수많은 여성을 만나봤다. 나 역시 실리콘 밸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내 자신도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알라드, 내 자신, 또는 다른 여성들에게 있어 그런 기억을 털어내 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행한 범죄의 대가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정의가 구현되지 않을 때, 사람들이 그런 범죄를 행하지 못하도록 막고 그런 범죄로 고통 받는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가 나를 압도한다.


하지만, 알라드와 내 경험이 유사하긴 해도,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의 진단은 서로 다르다. 향후 상황에 대한 예측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알라드는 가부장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인간 본성을 “안전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의 시각은 다르다. 혹자는 알라드의 관점이 너무 부정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충분히 부정적이지 않다는 데 그 문제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안전하지 않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실로 엄청난 악을 행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볼 수 있기에, 해답 역시 있음을 분명히 믿는다. 우리를 안전한 존재로 만들 뿐 아니라 우리를 진정으로 선하게 만들 수 있는 해결책 말이다.


오래된 문제


구약에서 보아스만큼 명확하게 이 소망을 보여주는 이는 없다. 그는 오늘날의 어두움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시대의 문화에서 자랐다. 


사사기 19장은 보아스의 고향을 뒤덮고 있던 영적 어두움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한 레위인과 그의 베들레헴 출신 첩이 길을 가던 중 베냐민 족속의 땅에 속한 성읍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지만 그들을 집에 들여 유숙케 하려는 이들이 없다. 마침내 한 노인이 거리에서 유숙하지 말라며 그들을 자기 집으로 들여 묵게 한다. 과연, 거리에서 밤을 보내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HBO에서나 볼법한 저속한 판타지 드라마에 나오는 반전이 등장하는데, 정욕에 눈이 먼 군중이 집을 에워싸고 레위인을 성폭행하기 위해 그를 끌어내라 요구한다. 군중들이 흩어질 기미를 안 보이자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을 대신 그들에게 내준다. 그들은 밤새 그 첩을 강간하고 능욕하기를 아침이 올 때까지 계속하였다. 동틀 때에야 그들은 그 여자를 풀어주었다(삿 19:25). 


해가 떴을 때 그 여인은 문 앞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 레위인 남편은 그녀의 시신을 열두 덩이로 토막을 내 한 지파당 한 조각씩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를 각 지파가 보게 하였다. 


지배 문화에 대항하는 자


보아스가 자랐던 그 독기 서린 문화를 고려할 때, 그 역시 그가 나고 자란 문화를 그대로 본받으며 자랐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보아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보아스는 부유한 지주이다. 룻이 도착했을 때 보아스의 집에서는 추수가 한창이다. 추수 직전 키 크게 자란 밀밭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추수 일꾼들이 여자들을 성폭행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있는 여자들은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과부들이나 이방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과부인데다 이방인이기까지 한 여인이 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보아스는 말과 행동으로 그 여인의 필요를 공급한다. 보아스는 룻에게 물을 주고 그 자신 및 그의 하인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보아스는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한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룻이 자기 자신과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칠이 아닌 수 주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이삭을 주워갈 수 있도록 해준다. 


룻이 보아스가 베푼 친절에 대한 감사와 놀라움으로 그의 발 아래 엎드리는 장면을 그려보라. 보아스가 한 대답을 읽을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난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룻 3:10–11)


룻의 희생과 믿음에 대해 보아스가 한 축복의 말은 순전하기 그지없다. 보아스가 한 말을 보면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그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 자체로 명백한 대항 문화적 가치였다. 하지만 룻의 사연이 보아스를 깊이 감동시켰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살던 땅을 떠나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피난해 온 여인들은 룻 외에도 많다. 


보호와 믿음의 유산


보아스와 룻이 만나기 수십 년 전에 여호수아는 정탐꾼 둘을 가나안 경계를 넘어 보내 그 땅으로 진군해 들어가기에 앞서 그곳을 미리 살펴보게 했다. 그들은 라합이라는 가나안 여인의 집에 머무는데, 라합은 자신의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던 사람이었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던 여인이었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가족을 구해줄 것을 간청한다. 그들은 라합이 먼저 그들을 보호해준다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지켜줄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맹약을 지킨다. 그날 이후 라합은 이스라엘 땅에 거하고, 지체 높은 이와 결혼해 아들까지 얻는다. 


보아스가 바로 그 아들이다.


라합이 자기 아들에게 그 레위인의 첩의 끔찍한 죽음과 시신 훼손에 관한 일을 말해주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삿 19:30). 라합은 그녀 자신의 상황 안에서 아들 보아스에게 그 일을 말해준 것이다. 다시 말해, 남자들에 의해 학대 받는 여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이 이스라엘의 참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어떻게 피난처가 되어주었는지, 그리고 결국 보아스가 어떻게 그 가족 안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룻에게 한 보아스의 말은 그가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보아스의 행동을 결정해준 것은 단순히 그가 받은 교육이 아니다. 그 자신 역시 자기 모친 라합의 피난처가 되셨던 하나님, 자기 백성을 불러 자신을 본받으라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사람이다. 


여호와께서 룻에게 복 주시기를 구하며,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모친에게 주셨던 그 보상을 구현하는 사람이 된다. 이 보상은 보아스나 룻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두 사람을 통해 그들의 손자인 다윗에게까지, 그리고 그들의 후손 예수에게까지 계속될 것이었다.. 


보아스를 본받아


보아스가 살았던 그 문화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할 수 없었다. 보아스와 그의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법과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그 문화에 저항하던 이들을 통해 바로 그 문화의 한복판에서 실행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그의 신실하심이다. 보호하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남성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드려 여성을 위한 피난처와 보호자가 되어주는 남자들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이다. 


그런 남자들은 궁극적으로 죽기까지 자기 육체를 드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본받는 이들이다. 그런 남자들은 우리 문화가 아닌 우리 구주를 본받는 이들이다. 


알라드는 자신이 쓴 글에서 자기 아들들이 본받을 만하고 자기 자신이 믿을 수 있을 만한 남자들이 없다고 탄식한다. 알라드가 보아스의 이야기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보아스의 후손인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예수님은 그저 안전하기만 한 분이 아니라 피난처와 구원을 궁극적으로 체화하시는 분이시다. 




원제: Boys will be Boaz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이정훈

그런 남자들은 궁극적으로 죽기까지 자기 육체를 드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본받는 이들이다. 그런 남자들은 우리 문화가 아닌 우리 구주를 본받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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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achael Starke

레이철 스타크는 실리콘 밸리에서 20년 이상 일했으며 현재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서 영업 관리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복음, 성(性), 일, 기술 등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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