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의 교회와 국가
by 이승구2020-03-13

지방 정부에서 ‘코로나19’ 사태의 추이에 따라, 특히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서 종교집회 금지명령을 검토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여러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공동체는 본래 교우들과 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며 그 점을 늘 가르친다. 특별히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가르칠 때, 그것의 적극적 의미는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써 왔고, 또 신경을 쓸 것이다.


필요시 제한 명령?


혹시 필요하면 “종교시설 집회 제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그 “표현 방식”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서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행정부와 교회들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의 협의 결과를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내용을 전달하면서 이에 따르지 않으면 “종교시설 집회 제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면, 그것은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의 중앙정부나 지방 정부가 교회 공동체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 제기로 들리기에 이런 식의 표현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함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국가와 교회의 구별


국가와 교회는 각기 독립적인 기관으로 각각의 영역에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기관이다. 물론 중세 때나 지금 이슬람권과 같이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려고 시도한 때도 있었다.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 시대, 공산사회처럼 국가가 교회와 종교 활동 전체를 통제한 적도 있었다. 이 모든 역사의 과정을 통해 국가는 국가가 세워진 목적을 다 해야 하고, 교회는 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다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국가와 교회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독립된 기관이라는 이해를 발전시켜 왔다. 간단히 표현해서 ‘국가와 교회는 상호 독립적’이라고 했다(the separation of the state and the church). 정부와 국가는 독립적 기관으로 제 역할을 할 때 그것이 결과적으로 서로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럽 역사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사를 가지고 시작한 미국은 처음부터 국가와 종교의 구별을 아주 분명히 하면서 활동해 왔다. 미국이 국교(國敎)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요즈음 이것을 지키지 않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고, 또 그것을 다시 회복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면 그들이 겪은 복잡한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성도들의 이중적 자격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은 동시에 국가의 국민이므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더 좋은 국가가 되도록 힘쓰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국민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옛 변증론자들이 강조해 온대로 우리는 좋은 시민임이 틀림없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은 우리가 잘 해낼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어떻게 활동을 할 것인지의 문제,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의 예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교회 공동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성경으로부터 배웠다. 이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 유럽은 수없이 많은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많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라는 원칙과 실천이었다. 이 원칙이 무너지는 듯한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 교회 공동체는 성경의 원칙이 버려지는 인상을 받게 되고,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된다. 바라기는 우리나라의 중앙정부나 지방 정부가 예배에 있어서 어떤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표현이나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또한 교회의 성원들도 이 원칙, 교회의 문제는 교회가 결정하고 교회가 시행해야 한다는 원칙에 참으로 충실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극복될 것이고 별문제 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 일이 지난 후에라도 그 누군가가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가 교회 공동체의 활동에 제한을 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은 결과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촉발할 수 있는 일이 된다는 것을 모두가 명심했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사태 정도가 아니라 더 크고 매우 복잡한 상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정치적 주장?


교회 공동체도 교회의 이름으로 국가의 문제에 관여하여 이렇게 저렇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정부든 지방 정부든 정부는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의 성도들은 국가의 구성원이므로 개인 자격으로 다른 시민들과 함께 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으로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그리하는 것이다. 개인들이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견해를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단체를 구성해서 여러 의견을 말하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으로는 정치 문제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이름으로는 어떤 것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 교회로서의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모든 교회가 일어나 피해를 무릅쓰면서 주장을 할 때 그것을 무겁게 여길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진보라는 사람들과 보수라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해왔다. 현재 우리가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도 전혀 듣지 않을 가능성이 많은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스스로가 한 것이다.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어떤 주장을 하는 때의 심각성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국가에 어떤 요구를 할 때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명확한 교회의 활동을 외부 세력이 간섭하는 경우다. 이때는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더라도 교회 전체가 한목소리로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경우다. 신사참배를 하면 예배당에서 예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배당을 폐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나서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때 구성원들의 이름으로 신사참배는 국가적 행사이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결의했고, 결국 몇몇 분들만 순교 당하고, 옥중 성도가 되었다.


우리에게 또 그런 일, 교회 전체로서 어떤 주장을 해야 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전과 같이 순응해 버리고 몇몇 사람만이 어려움을 당하는 과거와 같은 교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이 사태를 일제하의 상황과 같다고 이야기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는 국가가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회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도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면 이런 정책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적어도 성도들은 그것은 안 된다고 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교회로서 지체 의식이 더 분명해져야만 한다.


부디 성도들 각자가 좋은 시민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의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성격을 잘 유지하고,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여러 활동을 제대로 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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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승구

이승구 교수는 기독교교의학(CHRISTIAN DOGMATICS)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자로서,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졸업, 합동신학대학(MDiv)과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PhD)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