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증명하는 최초의 증거
by Justin Bass2021-03-29

예수의 죽음 이후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그를 따르는 어떤 무리가 예수가 부활해서 자신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고 증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과거 그를 반대하던 바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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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적 증거는 무엇일까?


이 질문과 관련한 분야, 즉 고대사, 고전, 그리고 성경 연구 분야에서 가르치는 학자들은 종교적 배경과 관계없이 나사렛 예수와 관련한 몇 가지 기반 사실에 있어서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공생애를 시작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자 귀신 쫒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Caesar)가 통치하던 시절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 이후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그를 따르는 어떤 무리가 예수가 부활해서 자신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고 증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과거 그를 반대하던 바울도 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면 예수와 초기 기독교에 관한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가장 주된 자료는 1세기에 쓰인 신약 성경이다. 그럼 이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나사렛 예수에게 얼마나 더 시간적으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까?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역사적 증거는 과연 무엇일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당신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다.


기반 사실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


기독교에 관한 가장 오래된 증거 중에는 4세기 초에 만들어진 코덱스 바티카누스(Codex Vaticanus) 즉 바티칸 사본과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 즉 시나이 사본과 같은 필사본이 있다. 콘스탄틴 폰 티셴도르프(Constantin von Tischendorf)는 신약 사본 연구에 있어서 인디애나 존스와 같은 인물인데, 그는 1859년 이집트에 있는 성 캐서린 사원에서 시나이 사본을 발견했다. 콘스탄틴 폰 티셴도르프는 나중에 기록하기를, 자신이 사실상 불에 타버릴 뻔한 시나이 사본을 구했다고 주장하면서 수도원 사제들이 이미 두 뭉치의 사본을 땔감으로 썼고 나머지도 불태우려고 하는 것을 자기가 막았다는 것이다. 그는 시나이 사본을 '현존하는 가장 가치 있는 성경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상당 부분에 있어서 시나이 사본보다 더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papyri manuscripts)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 중에는 3인치짜리 양피지에 요한복음(18:31-33, 37-38)의 다섯 구절이 적힌, P52(역자 주: 고대 사본에는 이렇게 번호가 붙는다. P52는 학계에서 특히나 유명한, 상징적인 사본이다)라고 불리는 사본이 있다. 이 작은 보물은 학계에서 서기 125년에서 17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50년보다 더 긴 간격을 두는 학자도 많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것들 외에 또 하나의 혁명적인 발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발견은 시나이 사본보다 더 위대하고 또한 P52 사본보다도 더 탁월하며, 내가 생각할 때, 그 어떤 고고학적 발견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훌륭하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3절부터 7절에 나오는, 바울 이전(pre-Pauline)에 이미 사람들이 암송하고 있던 신경(creedal tradition)의 발견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진주'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사도적 신경 진술은 신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해 다른 어떤 고대 문서를 뒤져봐도 이런 구절은 찾을 수 없을 정도다. 비록 초기 기독교 운동의 흔적이 바로 이 다섯 구절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다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복음의 진수와 기독교 신앙이 토대를 두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이 구절을 통해서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기독교의 역사적 기반 사실을 발견하기


자, 그럼 가장 오래된 기독교의 증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고전 15; 3-4)


바로 이 부분이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 바울이 나중에 추가한 부분을 뺀, 바울이 받아서 쓴 실제 신경이라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신약 학자이자 무신론자인 게르트 뤼더만(Gerd Lüdemann)은 이 발견을 '최근 신약 학계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성취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초대 교회, 중세 신학자, 그리고 우리가 아는 종교개혁 학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이 구절을 인용했고 또 주석까지 썼지만, 20세기가 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 구절이 애초에 바울이 쓴 게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서기 49년에서 50년보다 적어도 10년 더 이전부터 이미 성도들이 암송하던 신경, 즉 신앙고백을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성경 구절 안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바울은 이 구절을 소개하면서 “내가 받은 것을”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전 15:3).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 그는 자신이 받은 어떤 특정한 전통을 고린도인에게 전했는데, 그 전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음을 더 밝히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고전 11:2 참고). 그것은 예수님에 관한 어떤 가르침과 이야기(고전 7:10; 9:14; 11:1; 고후 10:1), 최후의 만찬(고전 11:23–26), 찬송(고전 8:6; 고후 8:9), 그리고 바로 예수님의 죽음, 장사, 부활 그리고 다시 나타나심에 관한 바로 이 신경이다(고전 15:3-7).


두 번째는 언어적인 이유 때문이다.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서 어디에서도 쓴 적이 없는 단어와 구절을 여기에서 쓰고 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사”, “사흘 만에”, “보이시고” 그리고 “열두 제자” 등은 오로지 여기에만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데서 사용되었어도 당시 전통의 영향을 받아서 쓰였다. 


이런 점들 때문에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예외 없이 고린도전서 15장 3-7절은 바울 이전에 성도들이 고백하던 신경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이 신경은 심지어 바울이 가장 먼저 쓴 서신서보다도 앞선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앞서는 걸까? 


언제 어디서 바울은 이런 신앙고백을 받은 걸까?


학문적인 배경 또는 (무신론을 포함해서) 신앙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든 학자들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이 신경이 예수가 죽고 5년 안에 만들어졌다는 데 동의한다. 예수가 죽고 10년 정도 흐른 후에야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몇몇의 학자도 있지만, 또 어떤 이는 심지어 예수가 죽고 일 년 안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약 학자인 제임스 던(James Dunn)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신앙고백은 예수가 죽고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신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져서 정형화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제임스 던이 가장 뛰어난 예측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고작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새롭게 믿게 된 사람들은 아마도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던 시기에 이 신경을 외우고 또 그 내용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신경은 회심한 사람들에게 입문 교리 교육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15장 3-7절은 사도행전 속 설교(행 10:39–40; 13:28–31)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 속 예수 수난 이야기의 교리적 요약이자 기본이 되었다. 


그럼 바울은 언제 어디서, 도대체 누구로부터 이 위대한 진주를 전달받은 것일까? 학자들은 아마도 그건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직후(서기 34)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로부터 3년 후인 서기 37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2주를 함께 보냈고(갈 1:18), 또 그 기간 중에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갈 1:19)를 만났다. 나는 후자가 맞으리라고 본다. 그래야 이 신경 속에 나오는 내용과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게바에게 보이시고……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고전 15:5,7). 신약 학자이자 불가지론자인 바트 어만(Bart Ehrman)도 이 점에는 동의한다. “그 예루살렘 방문에서 아마도 바울은 그가 언급한 모든 전통, 그리고 그가 전통이라고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아서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전통으로 간주되는 내용을 전수 받았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공격적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날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이 땅을 밟고 있는 것은 단지 기독교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와 최초의 증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강력한 변증을 통해서 21세기 불신자들에게 도전해야 한다. 서기 30년,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고 다시 살아나 만유의 왕이 되었다고 선포했다.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 수제자 베드로 그리고 예수의 적이었던 바울까지, 이 세 사람 모두가 부활한 예수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 세 사람은 부활이 역사적으로 도무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임을 확신했다(고전 15:11 참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세 사람이 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그들이 가진 신앙의 진실됨을 증거하고 있고, 이는 바트 어만과 같은 회의론자조차 설득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이 세 사람이 목격한 것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어놓은 게 아깝지 않게 느낄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신경에 따르면 열두 제자와 500명이 넘는 사람이 예수를 보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지금에는 예루살렘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이르기까지 수십 억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예수를 믿음으로 만나고 있다. 회의론자였다가 오로지 부활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A. N. 윌슨(A. N. Wilson)은 이렇게 썼다. “바하는 이 이야기를 믿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지난 1,500년 간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이 부활 이야기를 믿었다.”


우리는 이제 고린도전서 15장 3-7절이라는 역사적인 근거에 깊이 뿌리를 박고, 이 믿지 않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 과감하게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들에게 대답을 요구해야 한다. “사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로마 제국을 송두리째 뒤집었으며, 인류 역사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수십 억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이 능력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당신은 생각합니까?”


도대체 그들이 누구를,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바뀌었던 걸까? 




원제: What’s the Earliest Evidence for Christianit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사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로마 제국을 송두리째 뒤집었으며, 인류 역사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수십 억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이 능력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당신은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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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ustin Bass

저스틴 바스는 NGO를 통해 난민 사역을 하고 있다. Jordan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을 가르치고 있고, 바트 어만(Bart Ehrman)과 같은 대표적인 무신론자와 공식적인 토론을 벌였다. 저술한 책으로는 'The Battle for the Keys: Revelation 1: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