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인식론과 기독교 세계관
by 노승수2020-04-08

1945년,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인문주의일까”라는 강연에서 최초로 언급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라는 표현은 그 강연 제목처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카르트가 진리의 기초로 놓은 방법적 회의, 곧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은 어거스틴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ergo sum)라는 말의 오마주이다. 이처럼 어거스틴과 근대, 현대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구조를 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ergo sum)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마음만이 계시의 빛의 조명을 받아 진리를 간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 의식을 수납처로 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계시를 받는 우리 인식이 오류를 범하더라도 계시를 대면해서 인간의 자아가 드러난다. 이것은 칼뱅이 기독교 강요의 인식론적 기초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으로 나눈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연계는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 무너지고 만다. 앞서 언급했던 데카르트의 오마주는 계시를 걷어낸 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자기동일성을 확장해서 만들어낸 세계였다. 데카르트 당시만 해도 스콜라적인 구조가 신학과 과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 세계관은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인간”이란 구조를 띠고 있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스콜라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재해석으로 본질은 신을 내재하는 관념이었다. 그런데 사르트르가 실존을 말할 때, 실존은 “밖에 서 있다”라는 어원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바로 무한하신 분, 곧 신의 밖에 서 있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우주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성경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 그리고 그 아래로 지하 세계의 구조를 지닌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이사야 42장 5절, 44장 24절에서 땅을 조성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한 히브리어 동사 ‘라카(רקע)’는 ‘두드려서 넓고 편편하게 펴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에 비해 하늘은 둥글다고 믿는다. 예컨대 시편 104편 2절에 하늘을 휘장처럼 친다는 표현은 평평한 땅 위에 하늘이 텐트처럼 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사 40:22). 그뿐 아니라 땅은 음부 위에 놓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바다 위(시 24:2, 136:6)나 빈 공간(욥 26:7) 위에 달아 놓으신 것으로 묘사하며, 땅에는 4개의 귀퉁이가 있다고 생각했다(사 11:12, 겔 7:2). 땅의 기둥들(욥 9:6, 시 75:3), 주초(시 104:5), 기초(삼하 22:16, 잠 8:29) 등의 표현도 이런 이해를 반영한다. 창조세계 전체는 하늘의 하나님과 통일적 전체로 이해되는 구조를 하고 있다. 로마인들이 판테온 돔의 천장에 구멍을 하늘의 눈(oculus)이라고 부른 것은 하늘과 땅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건축물에 담긴 고대인의 세계관은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하는 세계관과 같았다.


이 세계관은 12세기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가 주석을 붙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Περὶ οὐρανοῦ)의 라틴어 번역판에서 최초로 사용된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이란 용어에서도 확인된다. 아베로에스의 능산적 자연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의미하고, 소산적 자연은 피조물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렇게 창조주와 자연, 초월과 자연은 실질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그렇게 하나로 엮여 있는 세계관을 하고 있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의 우주 이해와 신학 이해는 근대에 들어 중력이 발견되면서 큰 변곡점을 맞이했다. 물리학과 미적분학의 발달이 가져온 중력의 발견은 스콜라 신학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계시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지식의 기초로 인간의 의식을 확립한 근대의 데카르트 방식은 신학에서도 변곡점을 불러왔다. 코케이우스는 대표적인 데카르트주의를 채택한 신학자였다(바빙크, ‘개혁주의 교의학1’, 116-117). 신적 작정을 중심으로 이해하던 위로부터의 방식은 중력의 체계에 의해서 다양한 중심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었다. 스콜라적인 체계는 불가피한 변화에 직면했다. 코케이우스는 최초의 성경신학자로 성경 전체를 언약으로 관통해서 이해했다. 그의 신학은 스콜라적인 전통신학과 대조를 이뤘으며 조직신학의 작정에 따른 이해와도 대조를 이뤘다. 언약의 실체(substantia foederis)는 언약의 경륜(oeconomia)이란 이해를 담게 되었다. 이 변화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런 데카르트의 방식은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자기동일성으로부터 확보된 세계는 전체주의의 문제를 파생시켰다. 칸트, 헤겔, 후설, 하이데거에 이르는 독일 철학은 전체주의의 문제를 낳았다. 그것이 결국 나치즘을 불러왔는데 하이데거는 1933년 5월 1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선출된다. 이것이 그의 나치 참여의 시작이었다. 전체주의가 빚은 비윤리성을 러시아계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가 지적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제3성찰, 곧 신의 명증성으로부터 타자의 관념을 도출했다. “타자는 나의 일부일 수 없다. 타자는 사유 될 수도 없다. 그는 무한이며, 무한하게 인식된다. 이 인식은 사유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으로 도출된다.”*라고 했다.


타자 인식이 바로 우리 윤리의 출발점이다.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윤리적이게 만든다. 더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계시하시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참된 기독교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데이비드 웰스가 지적한 윤리 실종도 이런 자기동일성의 무한 확장이 빚은 계시의 결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ergo sum)라는 어거스틴 신학으로 돌아가야 함을 의미하며 칼뱅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를 아는 지식”이라는 인식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______________

* Emmanuel Levina,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Duquesne University Press, 2001). 23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노승수

노승수 목사는 경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MDiv),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핵심감정 시리즈(탐구, 치유, 성화, 공동체)’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