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
by 장대선2020-05-02

5월을 가리켜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날 등이 5월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푸르른 5월이라 하겠다. 많은 교회에서도 가정과 관련한 행사를 5월에 기획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5월은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달이다.


그렇다면 가정의 달인 5월과 관련하여 우리는 성경에서 어떠한 지침 혹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매년 5월에 교회가 가정과 관련한 행사를 기획할 정도로 가정이 중요하다면, 가정과 관련해서 성경은 어떠한 교훈과 지침을 기록하고 있는지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5월 행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구약성경이건 신약성경이건 간에 성경은 가정의 ‘가장’(House Head)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대표적으로 구약성경의 모든 ‘톨레도트’(Toledot, 족보)가 가장인 아버지의 계보로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household)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함으로써 가장을 중심으로 가정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 즉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 대하여 언급할 때도 개인보다는 ‘무리’(Flock)로서 다루고 있다. 그 무리가 때로는 ‘군대’(Army)로 표현될 정도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질서 있는 무리의 개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언급하는 ‘개인’은 대부분 무리를 이끄는 사람, 혹은 무리를 이끌게 될 사람들인 것을 구약성경에서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한마디로 성경은 믿음의 무리와 관련하여, 그리고 영적이든 물리적이든 간에 그 무리를 이끄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든 교훈과 지침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개인화된 사회에서 개인적인 경건을 중심으로 신앙과 생활이 이뤄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성경은 이스라엘의 왕과 사사, 그리고 선지자를 이스라엘 무리(백성들) 가운데 보내어 세우고 질서 있게 이끌도록 하신 것이다. 심지어 신약성경에서도 믿음의 백성들은 사도들과 목사인 감독들의 지도 아래 장로들과 집사 직분의 직무 가운데서 교회공동체가 운영되도록 하셨다. 사무엘 밀러(Samuel Miller, 1769-1850)가 그의 책 ‘장로회 제도’(Presbyterianism, 1835)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로들을 교회의 치리자로 세우는 장로회(Presbytery)로서의 교회를 신약교회로 세우셨다. 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통상적인 경우, 이러한 질서의 원리를 깨뜨리지 않는 것이 바로 성경의 맥락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고 하신 계명이 나타내는 바를 생각해보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계명은 단순히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효도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로 대표되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권세와 권위의 질서에 순종하고 따르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의 질서, 즉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시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고 이르신 때로부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십계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와 그 권위의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이를 명하신 하나님의 권세와 권위에 순종하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모범이었다. 십계명의 첫 번째에서 네 번째에 이르는 계명을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여섯 가지 계명, 특히 그 가운데서도 다섯 번째 계명을 따라 위에 있는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것은, 앞에 있는 네 가지 계명들도 지키지 않는 불순종이요 패역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에 있어서 가정과 그 가정의 부모, 그 가운데서도 ‘가장’에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구체적이고도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의 장이다. 가정에서 가장의 권세와 권위 아래에서 잘 다스림을 받으므로 그 확장된 형태로서 교회의 치리자들(가르치는 자와 다스리는 자)이나 국가의 관원들과 같이 위에 있는 권세와 권위에도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순종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권세 혹은 권위의 문제가 갈수록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페미니즘(Feminism)과 소위 성 소수자의 인권 보호와 같은 성 평등(sex equality)의 주장이 갈수록 일반화되기에 이르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어떤 면으로 하나님의 권위 질서를 깨뜨리는 죄악의 바탕 가운데 있는 문화 현상이 분명하다. 그러한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위 질서가 이미 심각하게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가정에 대해서는 가장을 머리로 하는 질서에서 생각해야 한다. 개별적인 구성원들의 역할과 권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의 다스림과 그 역할 가운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가정이다. 특별히 신앙에서 가장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장로교회를 비롯한 대부분 교회에서는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의 경건 생활을 권장하며 지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는 ‘가정예배 모범’(The Directory for Family Worship)을 작성했었다.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이를 정식으로 채택했었는데, 가정예배 모범의 서문에서 스코틀랜드 교회는 이르기를 “본 총회는 개교회의 목사와 치리 장로들이 개교회에 소속된 각 가정에서 이같이 중요한 의무(가정예배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부지런히 살펴보고 돌아보도록 명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만일에 그러한 가정이 발견된다면 그 가정의 가장이 먼저 그 잘못을 시정하도록 사적인 권면이나 경고를 받아야 할 것이며, 그런데도 계속해서 그러한 잘못을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려 한다면 당회(a Consistory, 즉 지교회의 치리회)에 의해 엄중한 책망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바로 그러한 책임과 의무를 전제하기 위해서 가정을 구성하는 첫 관문인 결혼예식과 실질적인 가정을 구성하게 되는 첫 과정인 출산 후의 유아세례가 모두 예배당에서 교회의 회원인 회중 전체가 바라보는 가운데 행해진 것이다.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 특히 주일과 관련한 가장의 역할을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로서 참여했던 윌리엄 구지(William Gouge, 1575-1653)의 ‘거룩한 안식일’(The Sabbaths Sanctification, 1641)이라는 글이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의 글에 따르면 가장의 역할과 그 수행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집은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다. 사무엘하 6장 12절에 기록된 오벧에돔의 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며 복을 주신 것과 같이 주일에 가정에서 행하는 사적인 경건의 의무들이 정당하고 충실하게 이행될 때, 개인의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며 복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신약시대에도 여전하여 “두세 사람이” 그러한 목적으로 함께 모일 때, 즉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자리에 그리스도 또한 함께하시는 것이다(마 18:20).


그뿐만 아니라 구지는 그의 글에서 주일에 행할 사적인 의무로서의 가정예배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러한 의무들을 이행할 때, 그들 중에 능력이 있는 사람은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항상] 그렇게 해왔던 바와 같이, 다른 모인 자들의 입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교리문답을 시행하고, 설교를 되뇌며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도록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한 “가능한 한 가정의 ‘가장’(구지는 여기서 가장을 가리켜 가정의 ‘다스리는 자’라 칭한다.)이 이러한 의무를 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라고 말한다. 그런즉 가정예배를 비롯한 사적인 경건의 의무들은 가정의 목회자인 가장의 책임과 의무 가운데 행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 기독교 가정에서 이러한 가장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혹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장이 가족 구성원들, 특히 자녀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며, 또한 요구되는 덕목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족 구성원들이 가장에 대한 이해와 신뢰, 그리고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분명하게 세워져야 한다. 이것이 성경에 근거하는 교회의 신앙 전통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과 의무는 공적인 교회의 틀과 예배가 경건하고 거룩하게 서는 바탕이요 기초이다. 그렇기에 일찍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가정예배 모범을 작성하여 지교회의 치리회가 가정의 가장을 권면하고 지도하는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구지의 책에서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구지는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교회에 가기 전에, 그러한 경건의 의무를 수행함으로 성도는 공적인 예배에 더욱 적합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 다녀온 후에, 이러한 사적인 의무를 수행함으로 공적인 의무들이 더욱 우리에게 유익하게 된다.”라고 했다. 즉 “이러한 사적인 의무들을 행함으로 우리가 교회에 있지 않을 때도 거룩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의 역할, 특히 주일을 거룩하게 성수함에 있어서 가장의 역할과 의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교회의 지도와 관리를 병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정의 달 5월에 교회가 더욱 중점을 두고 강화해야 할 올바른 취지일 것이다. 공적인 회중으로서의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세우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목사와 장로의 직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사적인 하나님의 교회로 세우는 책임과 의무를 위하여 가장이 있음을 기억하여 더욱 특별하게 실천하는 5월이야말로 진정으로 기독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정의 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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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장대선

장대선 목사는 도서출판 고백과문답 대표와 장로교회정치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교리 연구가로 활동하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스터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제2치리서’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