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람인가 장소인가
by Matthew Miller2020-05-13

많은 이들이 어렸을 적에 손가락 깍지를 끼고 “교회가 있네요 / 첨탑도 있어요 / 열어보세요 / 사람들이 보이죠”하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신약에서는 ‘교회’가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들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교회’라는 말을 예외 없이 세 가지 뜻으로 사용한다. “청소년부는 오전 9시에 교회에서 출발합니다”처럼 장소를 가리키거나 “교회가 끝나면 교제실에서 점심을 함께 하겠습니다”처럼 모임 자체를 가리킬 때 교회라는 말을 쓴다. 또는 “교회의 기도와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처럼 사람들을 지칭할 때도 있다.


이쯤 되면 우리가 ‘교회’라는 말을 맞게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답의 이면에는 스토리가 있는데, 이를 들어보면 우리가 왜 ‘교회’라는 말을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는지 알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시작해보자. 예수께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실 때 “교회”라는 뜻으로 쓰인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114회 등장하는데, 사람들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칭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가리키기도 하고, 한 지역 교회를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엡 5:27; 살전 1:1). 교회론을 뜻하는 ‘에클리지올로지’(ecclesiology)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에서 온 것이며 당회(sessions), 노회(presbyteries), 대회(synods) 그리고 총회(assemblies)를 “교회의 치리회”(ecclesiastical courts)라 부른다.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는 언제나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을 뜻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처럼 라틴어에서 갈라져 나온 로망스(Romance)어군에 속하는 언어들은 교회를 가리킬 때 신약의 ‘에클레시아’를 그대로 사용한다. 교회는 프랑스어로 ‘레글리스’(l’eglise)이고 스페인어로는 ‘라 이글레시아’(la iglesia)인데 모두 라틴어 ‘에클레지아’(ecclesia)에서 온 것이다.      


영어는 좀 더 복잡한데, 영어의 ‘처치’(church)의 어원은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독일어의 ‘키르케’(Kirche)나 네덜란드어의 ‘께르크’(kerk)와 마찬가지로 영어 ‘처치’(church)는 ‘에클레시아’가 아니라 “주님의”라는 뜻의 그리스어 ‘큐리아콘’(kyriakon)에서 왔다.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는 114회나 등장하는 반면 ‘큐리아콘’은 고린도전서 11장 20절 “주의 만찬”과 요한계시록 1장 10절 “주의 날”에서만 사용된다. 하지만 신약 다른 어떤 곳에서도 ‘큐리아콘’을 주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자신들이 모여 성만찬을 나누는 장소를 가리켜 ‘큐리아콘’(kyriakon)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집”이라는 표현을 줄여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처치’(church)라는 말이 사실상, 적어도 어원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실제 건물이나 위치를 가리킨다는 말이다. 영어 단어 ‘처치’(church)의 어원론을 따져보면 위에서 소개한 아이들 노래가 실제로 맞는 셈이다. “여기 교회가 있어요 / 이건 첨탑이구요 / 열어보세요 / 사람들이 보이죠”


이로 인해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이 성경을 번역할 때 곤란한 일이 생겼다. 틴데일이 그리스어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하던 1536년, 그는 신약의 ‘에클레시아’는 장소나 건물이 아닌 사람들을 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번역하면서 틴데일은 ‘에클레시아’를 “church”라는 단어 대신 회중이라는 의미의 “congregation”으로 번역했다 (I wyll bylde my congregacion.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yle ageynst it). 하지만 킹제임스역(King James Version)을 비롯해 훗날의 영어 번역본들은 ‘에클레시아’를 “church”로 번역했다. 그리하여 원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는 ‘장소’를 가리키던 영어 단어는 지난 400여 년간 소위 “이중직”을 수행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우리 역시 그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신약 성경에서 “church”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그것이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에클레시아’)을 지칭한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Clowney)는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그리스도의 몸이요 모임이며, 성령의 교제하심이다”라고 말한다. 교회를 가리키는 성경의 은유는 다양하다. “congregation”의 원래 의미가 “모인 양 떼”인데, 성경에서는 교회를 일컬어 양 떼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가족, 몸, 성전, 그리고 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를 사용하는데,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우리의 본질이 뭘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속적인 믿음과 회개로 ‘하나님의 신적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기도에서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바란다고 한다(엡 3:21). 다음 장에서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eklethete) 그 ‘부르심’(kleseos)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하고,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kleseos)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eklethete)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엡 4:4–5)라고 한다. 교회의 이름인 ‘에클레시아’와 신적인 부르심인 ‘클레세오스‘(kleseos)가 분명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의 기원이 신적 부르심에 있음을 생각할 때, 교회의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교회가 하는 모든 예배, 교육, 교제, 그리고 봉사는 주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것에서 나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모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로 끝나는 것이다(계 2:7, 11, 17, 29; 3:6, 3, 22).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유형(有形) 교회”와 “무형(無形) 교회”를 구분한다. 이는 눈에 항상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와 가끔은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서의 교회를 구분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온 세계에서 참 종교를 고백하는 모든 이들과 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이들, 즉 교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당신이 식별할 수 있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2항)과 하나님이 예정의 은혜와 중생의 능력을 통해 들을 귀를 주신 이들, 다시 말해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모여진, 모여지는, 또는 모여질 택자들의 전수(全數)로 구성된” 더 적은 수의 사람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1항)에 대한 구분이다. 


목사, 장로, 집사는 “유형 교회”를 섬기라 부름 받은 이들이지만 그들의 사역은 회중의 각 사람이 신적인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촉구하여 그들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름으로 “무형 교회”에 속한 이들임을 증명하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예수께서 돌아오셔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신 후에야 비로소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가 앞으로 영원토록 완전히 일치하게 될 것이다(마 7:21–23; 25:31–46).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우리의 말과 생각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선한 목자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그의 백성들로서의 교회에 대한 성경적 강조점을 회복하고 잊지 않도록 하자. 이를 위한 하나의 시도로 필자의 가정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아이들 노래를 조금 바꿔서 부르고 있다. “교회가 있네요 / 첨탑도 있어요 / 열어 보세요 / 사람들이 보이죠”라고 부르는 대신 손 동작 순서를 거꾸로 하여 이렇게 노래한다. “교회가 있네요 /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죠 / 이 첨탑 아래에서 / 늘 함께 모이죠.”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Is the Church a People or a Place?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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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tthew Miller

매튜 밀러는 Erskine Theological Seminary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그린빌(Greenville) 캠퍼스에서 디렉터 및 겸임교수로 섬긴다. C.S. Lewis Institute의 그린빌(Greenville) 디렉터로도 사역하고 있으며, 피에르 커시얼(Pierre Courthial)의 A New Day of Small Beginnings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