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by 고상섭2020-05-14

팀 켈러는 TGC코리아 홈페이지에 있는 ‘마음에 호소하는 설교’라는 영상 설교에서 알렉 모티어의 글을 인용한다. “설교자에게 두 가지 과제가 있는데 첫 번째는 진리를 다루는 과제고 두 번째는 청중을 다루는 과제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진리를 가장 잘 듣게 될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진리를 그들의 마음에 와닿게, 그들이 가장 수용적으로 듣게 …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상처를 피하게끔 전할 수 있을까?”


팀 켈러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책 ‘팀 켈러의 설교’에서 “어떤 본문을 설교하든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가리킬 수 없다면 …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마음의 정감을 제대로 건드리고 변화 시킬 수 없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두 가지 과제를 다 완수하는 열쇠가 되는 것일까?


진리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 


알렉 모티어의 첫 번째 과제인 진리를 다루는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성경의 중심 사상이 바로 그리스도이며, 성경 본문을 해석할 때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그 본문에서 풀어내지 못했다면 설교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를 예수님이 만났을 때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5-27)


예수님은 전 구약성경이 바로 ‘자기에 관한 것’임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을 질책하셨다.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드러내지 못하면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 랍비들의 가르침을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Edmund P. Clowney, ‘Preaching Christ in all of Scripture’ 11쪽).


사실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못하면 결국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윤리설교로 끝나게 된다. 설교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믿음으로 살라는 초청이 아닌 ‘더 열심히 살라’는 도덕적 권면이 될 때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팀 켈러는 결국 성경을 읽는 데는 두 가지 길 뿐이라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나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예수님에 관한 것인가?’ 다른 말로 ‘근본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그분이 행하신 일에 관한 것인가?’”


그러나 성경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려 할 때 과도하게 본문에 그리스도를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 붉은 색이 나오면 무조건 그리스도의 보혈과 연결시킨다던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본문에서 잠은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깨어남은 부활이라고 해석하는 등 성경 본문 하나하나에 일대일로 그리스도를 대입하는 것은 잘못된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의 한 형태이다.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는 말의 의미는 모든 성경 문맥을 통해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고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브라이언 채플은 그의 책 ‘그리스도 중심 설교 이렇게 하라’에서 이 과정을 FCF(The Fallen Condition Focus)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초점 맞추기’라고 불렀다. 모든 성경 본문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그 대안으로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설교는 결국 복음이 아닌 율법을 설교하게 된다.


“예를 들면 ‘~처럼 되라’, ‘선한 사람이 되라’, ‘영적훈련을 실천하라’를 강조하는 설교는 복음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설교다. 설교 내용 자체에는 잘못이 없지만, 영적으로는 치명적인 독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그리스도 중심 설교 이렇게 하라’ 39쪽)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다양한 설교 형태 중의 하나가 아니다. 성경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말씀의 의미를 사실상 변질시키는 것이다. 진리를 다루는 일은 결국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알렉 모티어의 두 번째 과제는 청중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팀 켈러는 청중의 마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낼 때’ 변화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변화는 언제나 그 마음의 중심인 ‘정감’(affection)이 변화될 때 이루어진다. 단순한 감정(emotion)의 변화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 수련회에 가서 눈물 콧물을 다 쏟고 돌아오지만 여전히 삶의 변화가 없는 경우들은 대부분 정감(affection)의 변화가 아니라 감정(emotion)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정감(affection)이란 사람의 마음 깊은 좌소에 있는 ‘사랑’을 말한다. 팀 켈러가 설교를 언급할 때 ‘마음을 향한 설교’ 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정감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의 핵심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죄를 ‘무질서한 사랑’(disordered love)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무질서’란 ‘순서가 바뀐 사랑’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이며 죄다. 결국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섬기게 되어 있고 그 사람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사랑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그 사랑의 순서는 어떻게 바뀌는가?


“물론 정감(affection)도 감정(emotions)으로 가득하지만, 감정과 동일하지는 않다. 정감은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감지했을 때 전인으로부터 나오는 성향이다.”(‘팀 켈러의 설교’ 216쪽)


팀 켈러가 청중에 대한 과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사람의 마음의 변화는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감지했을 때’ 전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감정(emotion)의 변화가 있는 사람들은 돈을 기부하거나 후원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의 삶이 변화되려면 단순한 구제 사업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정감인 ‘물질주의’가 깨뜨려져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의지의 결단으로 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탁월하심 즉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때 물질주의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결국 진리에 대한 과제와 청중에 대한 과제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고 또 청중들의 삶 속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복음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복음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여!
진리를 바르게 알고 싶은가?
또 청중들의 삶이 변화되는 현장에 함께 있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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