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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긍긍하는 부모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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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Cameron Cole  /  작성일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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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uliane Liebermann on Unsplash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때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갓난아이를 돌봄이(baby sitter)에게 처음 맡긴 날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비상 연락처를 여러 개 준비한 것은 물론이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아이가 잘 있는지 돌봄이와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가끔 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날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성인이 될 때까지 이토록 잘 키워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심 오늘날의 육아 상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것이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봐 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 거의 전문적 수준의 돌봄 매뉴얼을 만들지도 모른다.

 

또한 교회 주일학교나 놀이방에 아이를 맡길 때에도 두려움이 앞선다. 아이와 다른 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시간 내내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혹시 모를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느라 초조하게 진땀을 흘릴 수도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처음 보낼 때는 더 큰 고민에 빠진다. 담임선생님이 내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아이를 맡기고 뒤돌아서 나올 때면 대성통곡하는 소리에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하원 시간에는 선생님으로부터 오늘 하루 우리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이 자녀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때에 느끼는 불안감은 아이가 크는 내내 반복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도 이 불안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모든 부모는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나처럼 제대로 우리 자녀를 돌볼 수는 없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뛰어난 부모인가?

 

나는 첫째 아이 카메론을 내가 아닌, 완전한 자격을 갖춘 다른 분께 영원히 맡겨 드려야 했던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양육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을 완전하게 하나님 기준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이 지나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겪었던 일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 보내게 되었다.

 

아들이 더 이상 우리의 손에 있지 않음을 온전히 인지하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 부부는 아들에 대한 불안감을 여전히 마음속에 안고 살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로 그러했다. 아내는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한테 아이를 맡긴 것처럼 안심이 안 돼라고 말했다. 부모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하여 진심으로 노심초사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가 잠들기 전에 노래를 많이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하나님은 우리 아이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하나님이 우리처럼 매일 아이를 충분히 안아 주실까? 잠들기 전까지 등을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는데우유와 신선한 채소를 매일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때는 슬픔의 수렁에서 조금도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였다. 나는 하나님의 필요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지만 내 아들의 부모로서 주님이 완벽한 대리자가 되어 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에 관해서는 나 아닌 그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카메론의 두 형제를 이 땅에서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양육의 순간순간마다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불안이 하나님을 내 아이의 부모로서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자만과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자만과 불신

 

첫째, 선생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돌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리 양육자를 내 손으로 촘촘히 관리하려 드는가? 이는 부모로서의 본인 역량에 대한 자만이다. 우리는 자녀의 삶 속에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자신의 손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신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 자만의 방증이다.

 

이러한 자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전능하고 끝없는 사랑을 지녔으며 완벽하게 지혜로워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한다. 또한 아이의 행복을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양육을 우려와 통제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절망과 독단 사이에서 비틀거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있는가? 이는 아이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상황일 때에 더욱 명확히 알게 된다.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도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돌보시고 지키신다. 하지만 우리의 불안은 이러한 사실을 생각의 저 너머로 미루어 놓곤 한다. 자신의 손으로만 아이들을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를 날마다 쉬지 않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가장 잘 증명된다. 독생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벽한 돌보심을 영원토록 보고 또 누리셨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빛나는 통찰과 지키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인간의 몸으로서 신실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할 수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만 양육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평안의 시작은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모두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부모이다.

반면에 우리의 자녀는 완벽한 아버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부모로서 짓게 되는 죄와 실패는 훗날 우리의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그 후손들을 훈육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또한 너무 절망하지도 말자. 당신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이웃의완벽한부모들도 똑같이 실수한다).

 

모든 부모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절대 하나님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부모로서의 소명을 따라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들을 향한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불어, 내 양육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아이들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로 채워진 복음만이 우리에게 희망과 평안을 안겨 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어떤 부모보다 훌륭한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우리 자녀를 사랑하신다. 주님은 우리 아이의 성격, 남과 다른 부분,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알고 계신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부모로서 더없이 완전하다.

 

또한,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부모인 우리들의 무능함을 덮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아이에게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돌봄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큰 은혜로 아이들을 채우실 것이다.

 

자녀가 이 땅에 있든 하늘나라에 있든,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인하여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할 수 있다. 그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 근원적 아버지요 최고의 부모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저 더 나은 부모인 그분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만과 불신을 버리고 아이를 하나님께 맡길 때에 진정한 평안과 안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Grace for the Micromanaging Parent

번역: 고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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