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k

사이트 내 전체검색

tgck

검색버튼
사이트 내 전체검색
QT
homeHome QT 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착각하지 마라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1-01-14

본문

Photo by Joshua Earle on Unsplash

마태복음 7장 1-12절

80c2834370070fe9b6986f25eb63c755_1579150932_4817.png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외식하는 자들은 남들의 티는 보면서 자신들의 들보를 보지 못한다. 오늘 본문에 “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은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명백한 죄악과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행 5:3-4, 살후 3:14,15). 한편 상대방으로부터 비판받지 않기 위해 비판하지 않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적 윤리관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판받지 않기 위해 비판하지 않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비판할 때 그 비판으로 다시 비판을 받는 것은 상대방의 일을 넘어서서 일어나는 일이다. “비판을 받을 것이요”(2절)의 수동태 동사는 ‘신적 수동태 동사’로 봐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을 비판하는 우리가 그 비판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은 외식하는 자들이 결국 자신이 비판한 그 비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권면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형제의 티는 보지만,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흠잡는 습관에 젖어있고, 비판을 통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여기서 들보(δοκὸν, 도콘)는 건축물의 큰 기둥이나 나무의 매우 큰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저히 모를 수 없는 것을 모르는 외식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수사적 표현이다. 심지어 6절의 말씀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너무나 치욕적인 말이다. 자신을 모르고 남들만 비판하는 그들은 막상 자신 앞에 있는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진주가 무엇인지 모른다. 곧 개, 돼지 같은 존재이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잘 보지 못한다. 혹시 나는 이런 어리석음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기도가 내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도 좋다는 착각


외식하는 자들은 기도하면서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로 이어지는 현재 명령형의 동사는 하나님께 지속해서 반복적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구하는 것을 줄 것을 약속한다.


심지어 하나님은 인간들의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주실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면 된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이 단락을 읽을 때 우리는 기도를 우리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착각할 수 있다.


이 단락 또한 계속되는 청중인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들의 티를 보는 그들을 향한 권면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봐야 하고, 자신을 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기도해야 한다. 구해야 한다. 찾아야 한다. 두드려야 한다. 자신의 코앞에 진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간절하게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기도를 이해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자신이 대접받기 원하기 때문에 남을 대접해야 한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황금률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의 기도는 자기실현의 도구가 되고, 우리의 선행은 조건이 된다.


황금률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을 율법이요, 선지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가 무엇을 하는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세우면 황금률은 다르게 읽힌다.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대접하셨는데, 나는 왜 다른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고 있단 말인가!”


기도는 자기실현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고 있을까?


d7e7c8ed89567a95de4a07a83d3aaa31_1579264767_6109.png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