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7장 10절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친구들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어느 정도는 이웃이나 직장 동료들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거주지나 일터는 대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는 가족뿐이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상태로 한 가정에 태어난다. 또한 부모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선택할 수도 없는 형제자매를 우리에게 안겨 준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일가친척이 있다. 사촌, 숙모, 숙부, 조부모, 조카 등이다. 우리는 그들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태어난 가정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가족들 가운데는 우리가 거론하기조차 원하지 않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깊든 피상적이든 간에, 우리는 가족을 지켜주고 가족은 우리를 지켜준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맺는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에서 가족의 비유를 사용하는 예를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는 혈통적인 가족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형제자매와 관계를 맺는다(요일 3:16).
교인들 가운데는 우리와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우리는 대개 그리스도를 믿는 공통된 믿음에 근거해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성경은 혈연으로 맺은 형제자매와의 관계보다 성령으로 맺은 믿음의 형제자매와의 관계가 더 친밀하다고 가르친다(눅 14:26). 그런 진리는 신약성경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만, 오늘의 본문과 같은 구약성경의 본문에도 암시되어 나타난다. 이 본문은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더 낫다는 말로 누가 진정한 가족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다시 말해, 혈통적 관점에서 먼 친척보다는 (문맥상 가까운 친구를 가리키는) 이웃이 더 낫다고 말함으로써 ‘물리적이거나 유전적인 차원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관계의 차원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우리는 그리스도는 물론, 그분과 연합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혈연 관계를 맺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하나님 및 그 백성과의 관계에 가장 먼저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진정한 가족이다.
코람 데오
오늘의 본문이 자리한 문맥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의 권고는 아름다워야 한다. 즉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과 우리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담긴 권고이어야 한다. 환난 날에 우리는 친구의 집으로 피해야 한다. 이 말을 신약성경의 계시에 비춰 생각하면, 교회가 다른 사람들은 베풀려고 하지도 않고 베풀 수도 없는 것, 곧 사랑에서 우러나온 조언과 도움을 교인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은 어떻게 돕고 있는가?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Closer Than a Brother
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