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본문과 신학적 해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

저자명 I. John Hess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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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경태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  작성일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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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박사의 성명이 있다면 저술이나 번역에 신뢰가 있다. 이승구 박사와 조호영 목사(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 중)가 함께 존 헤셀링크의 ‘Calvin's First Catechism: A Commentary’(1997년) 저술을 번역해서 소개했다. 존 헤셀링크(Ira John Hesselink Jr., 1928-2018)는 칼 바르트의 지도로 “칼빈의 율법 이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웨스턴신학교(네덜란드 개혁파)와 일본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에 대한 경계심은 이승구 박사의 번역자 서문에서도 나타나 있다.


최덕성 박사가 2000년(본문과 현장사이)에 헤셀링크의 <개혁주의 전통>을 번역했을 때도 적지 않은 오해가 있었다. 서양에서 칼 바르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학자는 없다. 칼빈 신학이 부흥을 맞이한 것도 칼 바르트의 제자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헤셀링크가 <칼빈의 1차 신앙교육서> 본문과 주석을 한 것도 그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이승구 박사께서 헤셀링크와 만남에서 번역을 약속한 것을, 사후에 약속을 지켜 번역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칼빈을 좋아하는 학자들이 칼빈에 대한 이해가 펼쳐지는 것은 큰 기쁨일 수밖에 없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Catechism”을 “신앙교육서”라고 번역한 것이다. “요리문답”으로 번역하는데, 정일웅 박사는 “카테키즘”을 “교리문답”이 아닌 “신앙교육서”로 번역할 것을 제언했다고 한다. 카테키즘은 1529년에 루터의 ‘대교리문답(Greater Catechism)’과 ‘소교리문답(Lesser Catechism)’이 있다. 카테키즘은 칼빈파에서 다수 등장했고, 신앙고백서(confession)과 함께 표준문서로 정착되었다.


칼빈은 1536년에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판했고, 지나가는 길에 머물게 된 제네바에서 파렐에게 붙잡혀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그 개혁운동의 시작을 위한 매뉴얼이 ‘신앙교육서’이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의 기본 가치는 칼빈의 초기 작품을 소개해 준 것이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그 본문과 신학적 해설”까지 정식 명칭이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에서 본문은 약 90페이지에 해당하고, 해설은 400페이지 정도이다.  원래 33항으로 구성되었는데, 헤셀링크는 14장으로 재구성시켰다. 헤셀링크의 해설을 읽으면서 여러 연구자들도 자기만의 해설서를 집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추천사 중에는 교육에 유익하다고 했는데, 단순 반복이 아니라 재생산적 반복을 하여 다른 해설서를 출간한다면 좋은 우리 신학 자산이 될 것이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CH북스에서 ‘칼빈의 신앙교육서’라는 제목으로 이형기 교수가 번역한 도서도 있다.


90쪽에 해당하는 본문이기 때문에 간략한 본문이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은 “카테키즘”인데 “소요리문답”의 분량보다 적다. 그런데 33항으로 구성되어 신앙고백서적인 구도로 보이기도 한다. 내용이 적기 때문에 반복할 수 있고, 핵심내용을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신앙고백서와 카테키즘을 정리하고 정립하여야 할 위치를 지났다. 한국 장로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규모 있는 세력을 갖고 있다. 좀 더 개혁되고 체계적인 신앙고백서, 카테키즘을 작성할 수준이 된 것이다.


종교개혁 문서를 반복하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종교개혁 문서를 근거로 좀 더 진보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개혁이다.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한국 장로교회의 믿음 증진과 신학 진보에 좋은 기여를 하고 있다. 교회 사역자들이 강단이나 교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읽히고 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