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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삶에 답하다

종교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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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 김봉현
작성자 박태양 목사(TGC코리아) / 작성일 2020-04-27

본문

‘종교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 김봉현 목사의 달란트가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책이다. 틈 날 때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소소하게 글쓰기를 즐겨하는 저자가 생애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 일종의 종교 입문서라는 게 참 뜻밖이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하자면 이 책은 ‘종교 사용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시중의 종교학 책이 주로 종교의 정의, 기원, 개괄, 현상을 설명하면서 철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등과 관련돼 연구된 것이라면, 이 책은 기성 종교를 어떻게 대하고 접할 것인지를 주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평소에 말씀 묵상이 체질화된 저자의 독창적인 사유 체계가 잘 반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자는 일반 학계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각 종교와 그 특징을 나열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새롭게 종교를 분류하고 설명한다. 그는 기성 종교를 세속주의, 과학주의, 명상종교, 계시종교 네 가지로 나누고, 그 각각의 핵심 가치를 성실한 개척자, 자유로운 여행자,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 그리고 영혼으로 살아가는 인격자로 묘사한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세속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준다: 죽음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편, 과학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최종적인 소멸일 뿐이다. 나는 우주에서 단 한번만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특별하다. 나는 먼지이기에 겸손해야 한다. 삶은 순간이기에 소중하다. 그리고 명상종교는 이렇게 말한다: 육신이라는 현상은 소멸해도 정신이라는 원리는 존재한다. 선한 마음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런 사람만이 평화를 경험한다. 명상은 깨달음의 방편이다. 끝으로, 계시종교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 이후에 영혼이 존재한다. 영혼 구원이 핵심이다. 모든 인격을 만든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다. 계시는 인간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메시지다.

 
종교는 ‘죽음에 질문을 던져 삶에 답을 얻는 것’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그의 생각에 종교는 ‘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죽음에 대한 것’이다. 그에게 종교의 절대 가치는 결국 죽음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분류한 네 가지 종교의 궁극적 차이도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죽음을 무시하고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세속주의’라고 한다. 인간을 단지 육체로 규정하고 죽음을 소멸로 받아들이는 것을 ‘과학주의’라고 한다. 인간을 정신으로 규정하고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진정한 나로 생각하는 것을 ‘명상종교’라고 한다. [중략] 인간을 영혼으로 규정하고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진정한 나로 생각하는 것을 ‘계시종교’라고 한다.”(42쪽)


저자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타종교의 무가치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이 책의 주요 목차만 보더라도 잘 나타난다; 종교에 대하여(1부), 네 개의 종교(2부), 종교로의 초대(3부). 3부 제목이 ‘기독교’ 또는 ‘복음’으로의 초대가 아니라 그냥 ‘종교’로의 초대다. 만약, 비교종교학적인 측면에서 기독교가 역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종교라는 것을 이 책이 주장하기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저자의 전개 방식이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각 종교가 가진 단점과 과실보다는 장점과 공헌을 주로 나열하며, 어떤 종교든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종교에 대해 선입관을 갖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충고하기도 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핵심 내용이 가장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 무시되거나 왜곡되지는 않는다.


만약, 어떤 종교에 입문했다가 지금은 멀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종교 자체가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치 상한 우유를 모르고 마시면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빌어서 설명한다. “종교는 상온에서 쉽게 부패한다.” 이것이 지금 종교가 왜곡된 모습 곧 분쟁, 권력화, 세속화, 교조화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유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종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국 계시종교야말로 다른 종교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를 모두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계시종교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제시하는데, 코란보다는 성경에 더욱 익숙한 한국적 분위기에 따라 당연히 기독교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저자가 목표로 하는 독자층은 기존의 기독교인이 아니다. 이미 다른 종교에 심취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된 대상은 종교 밖에서 서성대고 있는 비종교인이다. 물론 저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비종교인은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종교성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세속적이라면 결국 그 사람은 세속주의라는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확고하게 주장한다. 저자는 세속주의야말로 누구나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비종교적인 종교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다른 종교관도 살펴보는 기회를 가져보라고 제안한다.


자기가 가진 하나의 기준으로 다른 가치관을 공격하는 것은 종종 ‘영역 오류’에 속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교육을 경제 논리로 보고 의료를 시장 논리로 볼 때 영역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에 대한 오해의 핵심이 종교를 종교의 관점으로 다루지 않고 자기가 익숙한 관점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얼핏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판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절대 진리는 없고 오직 상대적인 가치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 시대의 세계관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그가 시도하는 접근법은 ‘화자’ 중심이 아니라 ‘청자’ 중심이라는 것을 기억해야지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든 종교가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사람에게 다 살펴보고 생각해 본 후 종교의 세계로 넘어오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교가 각기 내세우는 좋은 것을 정확히 인식하되, 기독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른 종교와 같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결 같이 균형과 배려를 잃지 않고자 애를 쓴다. 그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과학주의를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가장 지성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과학은 매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만 그것을 절대화하는 과학주의는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구분한다. 과학과 과학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각각의 관점에서 서로의 종교관을 바라보았을 때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각 종교마다 서술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종교의 입장에서 타종교가 비판하는 것에 대한 대답과 해명을 꼼꼼하게 기술한다. 독자의 시각에서 보면, 각 종교의 입장을 저자가 당사자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불쾌감이나 반감이 특별히 생기지 않는다. 어떤 종교라도 포용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기독교의 유일성, 복음의 절대성을 전혀 노골적으로 선포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차분하고 겸손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종교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현대인의 종교관이 사실상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세속주의자이다. 그래서 죽음을 무시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 논쟁할 때는 과학주의자가 된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장례식장에서는 계시종교를 믿는다. 돌아가신 고인이 지금 좋은 곳에 가셔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이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명상종교를 믿는다.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향해 비판한다.”(43쪽)


이런 한계를 가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저자는 하나님을 믿는 계시종교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계시종교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되고자 한다면 이슬람교에 관심을, 그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화’되는 경험을 원한다면 기독교에 입문해볼 것을 권면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종교 서적이나 신앙 서적의 범주에 들지 않는 독특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다. 틈새시장이라고 할까 아니면 블루오션이라고 할까, 아무튼 기성 경건서적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새롭게 등장한 진주 같은 작가가 참신한 구상과 반짝이는 글 솜씨로 기존의 상품 군에 들지 않는 멋진 작품을 종교를 외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놓았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 있지만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과 기독교를 믿고 있지만 왜 믿고 있는지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이 글은 '월간목회'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