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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믿음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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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 정요석
작성자 박부민 목사(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 작성일 2020-07-19

본문

삶 속에 세우는 신앙입문서

신자가 처음부터 교리적으로 바르게 못 배우면 혼돈을 겪는다. 이는 삶을 불안정하게 하고 이단들의 먹잇감이 되게도 한다. 한편, 도그마에만 갇힌 신앙도 삶과의 괴리로 방황하고 겉도는 신자로 만든다. 따라서 교리와 삶이 통합된 교육이 아니면 어설픈 신자의 양산을 초래한다. 어설픈 신자는 맛 잃은 소금으로 버려져 밟힌다. 사회적 비아냥의 대상이 되거나 불신 회의론자들의 주된 반증 모델로 전락한다.


회의론적 실증론자였던 버틀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1927년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강의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 전에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했다. 그는 “한 사람이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 그는 정밀하게 짜여 있는 모든 교리들을 받아들이고 그 교리들의 모든 글들을 확신과 힘을 다해 믿어야 한다.”면서 제대로 된 믿음이 없는 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어설픈 신자들을 향한 쓴 소리였다. 비록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유를 강조하려고 꺼낸 말이었지만 그가 날린 직격탄은 기분 나빠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믿으려면 확실히 믿고 아니면 자기처럼 분명하게 믿지 않는 게 정직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불행히도 비그리스도인의 길을 택했지만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경적 믿음의 도리와 체계를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정요석 목사가 신앙입문서인 신작 <믿음 수업>의 부제를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로 붙인 이유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저자는 성도를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 온전케 하는 데 초점을 둔 신학 교육자이자 현장 목회자이다. 그는 신앙의 출발선부터 분명한 교리적 토대를 닦아 삶과 결합시켜 주려 한다. 러셀 같은 회의론자들에게 당당히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고 어딜 가도 어설프지 않은 참 그리스도인들로 세우고 싶은 것이다. 그가 섬기는 교회 이름이 ‘세움교회’인 것도 금방 이해가 된다.


따라서 신앙입문서는 신앙의 시작과 성장과정 및 끝을 이끌고 한 인생을 관통하는 책임을 지닌 길잡이다. 이는 골인지점을 향하는 정확한 방향성과 효율적 방법론을 담보해야 하며 그 초점은 첫째, 확고한 교리적 토대요 둘째, 그 위에 구축된 삶이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좋은 신앙입문서이다. 전통적 골자에 의한 교리학습서이지만 교리와 삶을 통합하려는 방향성과 방법론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탁월성과 스킬을 몇 가지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저자는 균형 잡힌 통합적 신앙교육을 지향한다. 신앙도 영양 결핍 없이 균형 있는 신체와 정신적 성숙이 수반되는 튼튼한 성장이 되어야 한다. 서문에 쓴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일그러진 기형적 성장이란 ‘편식, 편견, 편중, 편향’의 편폐를 보인다. 이는 개인의 불안정은 물론 사회화 과정에서도 선한 이웃은커녕 거침이 되는 불행을 배태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기독교 입문 초신자와 기존 신자들이 성경 전체의 내용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자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전체성경(tota scriptura)의 토대 위에 성경 전체의 내용을 잘 섭취해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도우려 한다. 건강한 신앙인으로서 믿음과 삶의 통합성을 지향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저자의 전작들에서도 일관되게 읽힌다. 가령 ‘소요리 문답, 삶을 읽다’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삶을 읽다’라는 교리학습서들에 ‘삶을 읽다’라는 부제를 명기한 의도가 거기에 있다. 교리가 삶과 통합되는 것, 신학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균형의 관건임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신앙학습서의 사명과 목표는 그 균형의 길을 인도하여 삶 속에 세우는 신앙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믿음 수업의 서론이라 할 믿음을 다룬 후 성경과 하나님,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성령님, 칭의와 성화, 그리고 용서와 기도, 죽음을 차례로 다룬다. 이는 조직신학과 교리문답 등의 전형적 교리 체계의 골자인 계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종말론 등을 망라한 것이다. 이로써 신자로서의 불가결한 기초 신앙과 기독교적 세계관의 균형 있는 토대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 인용한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인 ‘인간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의 결을 따라 인생론적 신앙체계를 세워가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9장 용서의 대목이다. 이는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의 주제에 서서 신앙과 삶의 통합적 원리를 강조하기 위함 같다. 저자는 용서를 ‘성화의 증거’라고 말하는데 신자의 성숙과 사회적 관계를 바르게 지탱하는 것이 용서라고 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즉,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체득케 하려는 의도이다. 용서는 진정한 자유의 길임을 말한다.


또한 죽음과 종말을 마지막으로 다룬 것은 책의 종장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존재론적 삶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사실은 인간의 최대의 질문은 종국적인 죽음과 그 이후 아닌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에서 그토록 공부를 해 왔다는 뜻이고 그 신앙적 생사관과 소망을 분명하게 소유할 때 참 신자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결론일 것이다.


둘째, 이 책은 학습서인데 쉽고 재미있다. 좋은 신앙입문서는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어떤 수업이든지 어렵고 재미없으면 학생들의 관심과 집중도, 학습 효율성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간혹 쉽고 재미있음을 거론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한다. 진리는 어렵고 재미없어도 투박하게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한다. 액면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장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신 분은 그리스도시다.


기독교 역사상 여러 형태의 교리학습서가 있어 왔다. 거기에는 고전이 된 책들도 있고 사도신경을 필두로 신앙고백과 교리문답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 우산 속에서 자란 우리가 적잖이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성경을 조직한 교리 학습서들이 그 시대의 언어로 쓰여 있어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일면, 교리 학습서 자체가 경전처럼 돼 버린 상황에서 그것을 다시 해석하는 중간자, 곧 신학자들의 수고가 더해지고 있다. 그래서 전달 과정인 학습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기왕이면 쉽고 재미있어야 그 효과가 배가됨은 자명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특히 내러티브 기술을 적용한다. 저자는 평소에도 기승전결이 숨겨진 내러티브를 좋아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저서들에 부제로 붙은 ‘삶을 읽다.’의 그 ‘읽다‘라는 말이 그의 내러티브적 취향을 말해 준다. 이는 누구나 그의 이야기와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성경적 결론에 이르게 하는 묘한 쾌감을 준다. 마치 드라마를 보여주는 듯 문학적 기술이 뛰어나다. 기독교 진리 입문서 중 이렇게 쉽고도 재미있고 심오한 교육서를 많이 못 보았다. 그가 자기 인생과 신앙의 간증으로 첫 부분을 시작한 것처럼 인생의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며 성경의 결론으로 이끄는 방식은 겸허하면서도 친절하고 따뜻하다. “자 이제부터 교리 교육에 들어갑니다.”라는 식의 일방적 강의가 아니다. 내러티브가 끝난 후 각 장의 토론 문제로 앞서의 이야기를 정갈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얼핏 구도자들을 위한 라브리식 대화와 하브루타의 문답 교육, 그리고 열려 있는 상담적 얼개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참 즐거운 책이다.


셋째, 문화적 접촉점과 친화성이다. 저자는 문학과 미술을 초대장 혹은 마중물 삼아 문화친화적 손길로 신앙의 도리 및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먼저, 문학적 매개체로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김춘수, 박인희, 이해인, 나태주, 괴테, 워즈워스, 예이츠 등의 총 열편의 시를 꼭지마다 표제 삼아 질문을 던지고 답을 풀어 나간다. 그렇다고 어려운 문학과 신앙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게 아니다. 신앙 자체가 먼 이데아의 이론 놀이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우리의 정서와 문화 속에서 주어지는 인생의 적실한 해답임을 체감케 하는 추동력을 주려는 애씀이다. 좋은 신앙학습서를 찾는 우리로서는 이 점이 고맙다. 이런 접근법이 신앙교육의 창의적 발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작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에서도 저자는 시와 소설을 소개하는 ‘성경으로 읽는 문학’ 코너를 통해 일상과 삶 그리고 창조세계, 사회적 인식론, 보편 실재적 삶에의 연결고리를 찾도록 시도하고 있다. 이는 이미 언급했듯이 교리가 삶과 통합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오해 없기를 바라지만, 신학이 공부를 좀 더 많이 한 사람들의 스콜라적 외골수로 빠지거나 고답적 교육방법론에서 정체되는 답답함을 탈피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과 최근까지의 저자의 노력은 빛을 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보수적 신앙인들에게서 흔한 이원론의 극복이다. 이원론의 성격은 편향성이다. 모든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가로막는 벽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설파한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를 이해하고 그 위에 신앙의 확장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경, 교리 학습 또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합당하다.


이에 따라 저자는 제리코, 고갱, 뭉크, 쇠라 등의 미술 작품을 통해서도 같은 접근법을 활용한다. 오히려 기왕에 프란시스 쉐퍼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분석한 바도 있거니와 렘브란트나 고흐, 세잔의 작품도 거론하고 나아가 앤디 워홀, 백남준 등의 작품들도 곁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후속 믿음 수업 제2교시가 될 심화 편에서 기대해 보겠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한국적 배경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불교나 풍속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당대적 가치들을 두루 견주어 성경적 질서로 자연스레 이끄는 대목도 매우 흥미롭고 지혜로운 부분이다.


넷째, 또 한편 감동이 된 것은 책 속의 아름다운 삽화들이었다. 저자의 사모 이정하 작가의 창작품이라고 한다. 책의 어느 귀퉁이에도 그의 이름이 명시돼 있지 않아 사실 섭섭한 면이 있다. 아마도 겸허히 내조하고픈 작가 당사자의 의중 때문이리라 짐작은 된다. 어쨌든 소박한 삽화가 곁들어 주니 공부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 열리고 내내 따뜻함이 감돈다.


이 책은 신앙입문자들과 기존 신자들이 기독교진리를 기초부터 잘 다져 신앙을 삶 속에 세워가는 데 매우 유익하다. 초신자들을 위해 해당 성경 구절들도 따로 정리해서 좀 큰 글씨로 부록으로 붙였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바람직한 학습서에 긴장된 설렘이 깃든 걸음마의 기쁨과 광폭의 가속도를 보는 감동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허다한 무리들이 하늘에서 응원하지 않겠는가. 그들 중 가장 뿌듯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할 자들은 아마도 '오직 성경'을 사수하며 성경적 교리체계를 세운 당대의 개혁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남긴 유산들이 오늘날의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실효적으로 교육되고 실천되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리라. 더욱이, 어려운 것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신 참 교육자 그리스도의 교육적 기대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좋은데 그리스도인들은 싫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내뱉는 우리 시대에 귀한 신자들을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삶 속에 분명하고 온전하게 세우려 애쓰는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믿음 수업’의 수강생들이 가득 차 많이 읽히고 활용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경건, 사회적 응전력(應戰力), 그리고 당대의 이슈들에 대한 성경적 답변이 담긴 심화된 믿음 수업 제2,3교시를 열어갈 노작들을 또 기다린다. 아울러 이 책을 도약대로 진일보한 신앙학습 도서들이 여러 곳에서도 다수 출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