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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삶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페이지 정보

저자명 Abraham Kuyper
작성자 김석현 강도사(호서대 연합신학전문대학원 역사신학 Th.M 과정) / 작성일 2020-10-18

본문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이름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쓴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라는 책에서였다. 당시 내 수준은 교회에서 설교와 강의로 칼뱅주의에 대해 개념을 잡아가는 수준이었기에 그 책도,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신학을 했기에 적어도 ‘아는 척’은 할 수 있겠다고 자평自評할 수 있겠다.


나는 개혁신학에 본격적으로 10년 전에 입문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첫 학기에 ‘개혁신학개론’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여러 과제 중에 하나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의 상세한 목차를 다는 것이었다. 잘 알다시피 이 책은 강연을 책으로 만든 것이기에 각 장의 제목만 있을 뿐 상세한 목차는 없다. 당시 이 과제를 하기 위해 책을 두 세 번은 읽은 것 같다. 한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고, 다음에는 책장을 뒤적이며 문단을 나누고 문단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나갔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중역이어서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 과제는 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어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곤 한다. 과제 덕분이긴 했지만, 이것이 나와 카이퍼의 본격적인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는 다른 책을 읽으며 등장할 때마다 접했다. 헤르만 바빙크의 전기, 네덜란드 개혁교회 역사에 대한 책, 네덜란드 역사책 등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나는 카이퍼와 진한 만남을 가졌다. 바로 한국어로 최초로 번역된 ‘영역주권’이라는 책에서다. 이미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느꼈겠지만, 카이퍼가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에서도 이를 느꼈다면, 네덜란드어로 읽을 때 느낌은 어떨지 아주 궁금했다. 아쉽게도 나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번역자를 통해 원문의 분위기를 한국어로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카이퍼의 단어와 문장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책에 나타나는 많은 수사修辭는 독자의 긴장감을 고조하여 카이퍼의 주장에 집중하도록 한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전달력이라는 면에서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영역주권’은 1880년 10월 20일 암스테르담 새 교회당에서 전했던 자유대학교 개교연설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즉, 이 책의 내용이 특정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대학의 이상과 목표를 천명하는 개교연설이라는 면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그 내용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이를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대로 가져오거나 일반화된 명제로 만들어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카이퍼의 의도를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이 책을 마음대로 난도질하여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영역주권’, 이 개념은 얼핏 봤을 때 그렇게 어려운 개념이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이해하면 그렇다. 하지만, 이 개념이 쉬운 개념이라면 지금까지 회자되고 논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논리학 용어를 가지고 말하자면, 이 개념은 일종의 공리公理다. 영역주권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가장 기초적인 명제, 자명한 진리인 공리와 같다. 그럼에도 카이퍼가 개교연설에서 이를 언급하고 그 후의 강연(1898년 프린스턴신학교 스톤강좌)에서 이를 확대한 것은 이 사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영역주권은 무엇인가? 영역주권은 보통 다음의 문장으로 표현된다.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한 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예술 등의 모든 영역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있고, 그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역주권을 드러내는 삶은 곧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 곧 개인적 경건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더 넓은 영역은 모호하지 않다. 일상생활이라는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관계라는 영역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찌하든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때로는 절망을 느끼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이미 카이퍼가 이 책에서 말한 영역주권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연설 후반부에서 카이퍼가 말했듯이 이는 개혁파의 원리이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정리한 ‘두 왕국론’을 19세기 네덜란드라는 현실에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려고 한 것이 ‘영역주권’이다. 그러므로 영역주권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개혁파에서 가르쳐 왔던 ‘두 왕국론’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여야 하며, 또 그것을 간략하면서도 분명하게 표현한 개혁파 신앙고백서로 돌아가야 하겠다. 이러한 작업 없이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본의를 해칠 수 있다.


카이퍼가 이 연설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적 의미’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을 성경과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이끌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 영역주권은 성경의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문적 목적’에서는 이를 학문의 영역에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카이퍼의 과제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개혁파 원리’는 영역주권이라는 개념이 개혁파 진영에서 나온 원리라는 점을 논증한다. 개혁신학의 핵심인 ‘하나님의 주권’사상에서 나온 것이 영역주권이고, 이를 계승하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자유대학교를 개교한다는 카이퍼의 강한 소신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카이퍼는 이 부분에서 각 학문의 분과에서 영역주권을 어떻게 구현할지 말하고 있는데,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칼빈주의 강연’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연설의 확장판이 ‘칼빈주의 강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반드시 그 책을 읽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자유대학교 개교연설은 카이퍼의 기도로 마무리된다. 이는 카이퍼 자신의 경건함을 표현한 것으로만 볼 수 없다. 내용상 새롭게 시작한 학교가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가 없으면 설립한 의도대로 세워질 수 없다는 그의 소신을 드러내는 기도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학교가 운영되기를 바라는 그의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3대 개혁신학자 중 하나인 B. B. 워필드의 말이 생각났다.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의 배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며, 모든 발생되는 일에서 그의 뜻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인식하는 사람이며, 기도로서 하나님의 대한 영적 태도를 가지며, 구원의 모든 역사에 인간 자신을 의지하는 태도를 지우고 하나님의 은혜에만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다.”


카이퍼는 연설의 마지막에서 진정한 개혁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앙을 머리로만 하는 자가 아니었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정독한다면 적지 않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쉽지 않는 주제의 책을 도서출판 다함에서 접근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내주었다. 활자가 크고, 한쪽 당 20줄로 편집해서 책장을 넘기는데 큰 무리가 없다. 게다가 선지식이 없는 독자를 위해 번역자의 해설을 첨부하여 독서를 돕는다. 본문을 먼저 읽고 해설을 읽거나 그 반대로 좋을 것 같다. 그 의도는 카이퍼의 글을 가능한 한 친숙하게 접하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을 독자의 의무는 출판사의 의도대로 카이퍼의 글을 직접 읽고, 그와 씨름하고, 책 속에서 질문을 주고받으며 영역주권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다.


책 표지에 “Abraham Kuyper Series”라는 말이 있다. 즉, 카이퍼의 또 다른 글을 계속 내겠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다음책의 정확한 발간 시일은 알 수 없지만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름은 많이 알려졌지만, 저서는 그리 많이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브라함 카이퍼 시리즈’에 얼마나 많은 책이 포함될지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작은 책을 구입하여 읽고 정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모든 그리스도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개혁파에 속한 모든 성도에게 기쁨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