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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상처, 여성 폭력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페이지 정보

저자명 Elaine Storkey
작성자 이춘성 목사(광교산울교회) / 작성일 2020-11-01

본문

인류를 뒤덮고 있는 상처

스토키를 만나다


약 3년 전, ‘젠더와 성 윤리’에 대한 발표를 부탁받아 여성학과 젠더를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복음주의 진영에서 참고할 만한 균형감 있는 여성학자를 추천받았는데, 그가 바로 일레인 스토키(Elaine Storkey)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인 사회학자로, 그녀의 남편 또한 유명한 그리스도인 사회학자다. 스토키는 1980년대 여성주의가 유행하던 때,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그리스도인 여성학자들과 이를 무작정 반대하던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대화의 창구 역할을 한 중재자다.


그녀는 급진적 여성주의가 지닌 반기독교적 요소와, 보수주의가 지닌 여성 차별에 대한 무감각을 동시에 지적하였고,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시도를 하였다. 필자 또한 그녀가 쓴 책들을 통해 여성주의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비록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성주의가 지적한 성차별의 현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시도는 여성주의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이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이후에 여러 이론서를 출간했다. 다만 아쉽게도 그녀의 주저들은 한국에 번역 소개된 바 없다. 그녀는 이론서를 출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일레인은 1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래된 그러나 여전한 여성 차별과 폭력에 대한 실제 사례를 수집하였다. 또한 이러한 폭력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 계속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 결과로 2015년에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Scars across Humanity)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나를 비롯한 이 책을 들추어 읽은 사람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몇 번이고 멈춰서 한참 동안 저린 가슴을 어루만져야만 했을 것이다.


진실의 힘


이 책의 영어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인류를 가로지르는 상처(흉터)”다. 의역하면 “인류를 뒤덮고 있는 상처”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 책의 제목은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이다. 두 제목은 이 책의 성격과 독자의 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영어 제목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덤덤하게 진술하는 다큐멘터리 같다면, 한글 제목은 무언가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 책은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데이터와 피해자들의 진술을 덤덤하게 서술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가 격양된 목소리로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자는 그런 방식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일레인은 억지로 운동을 만들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다큐멘터리 식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더 분노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극적 효과를 준다. 당연하게도 이는 사실이 지니는 부인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진실 속에서 놀라고 분노했으며, 가슴 아팠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이토록 잔인하게 학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성에 기반한 폭력은 사회 윤리라는 그럴 듯한 포장지에 은폐되어 있다는 끔찍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접하는 사회 윤리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그 사회와 공동체가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던 전통과 관습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럽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여성 할례를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프리카인의 시선에서는 전통적인 사회 윤리를 깨는 비도덕적이며 그 사회를 탄압하는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비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죽이는 남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여성들의 모습, 전쟁에서 여자아이들이 납치당하고 성폭행당하는 현실과 이를 철저히 숨기는 국가적 은패, 지금도 성노예로 팔려 가는 여성들 모두 나름의 논리로 포장하고 그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에 대한 언급이 유일하게 한 곳 나온다. 전쟁의 논리 앞에서 무참하게 유린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내용이다. 일본은 지금도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부정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눈감고 있는 것이다. 스토키는 이러한 여성 폭력의 현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계가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 주듯, 전 세계에서 15-44세의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으로 말미암은 죽음, 장애, 신체 훼손은 암, 말라리아,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다”(17쪽). 이토록 숱한 폭력이 여성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 안은 안전지대인가?


이 책에 나온 잔인한 폭력들을 교회 안에서는 공개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각각의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사생활들을 보면 공적으로는 감추어진, 은밀한 폭력이 여전하다. 최근 알게 된 실제 예를 들어 보자. 새로 부임한 젊은 목사는 교회 일에 열심인 신앙 좋은 안수 집사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안수 집사가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한다는 것이다. 최근 경찰이 수 차례 출동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진상을 파악해 보니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은 해묵은 일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전임 은퇴 목사는 이를 알고도 묵인하고 있었고, 중직자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아래윗집에 이웃해서 사는 교우들조차도 안수 집사의 극심한 가정 폭력에 침묵했고, 폭행을 당하는 안수 집사의 아내도 간섭을 원치 않았다. 새로 부임한 목사가 이 사실을 알고 폭력을 그만두라고 권면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계속 교회에서 일하고 싶으면 상관 말라는 협박이었다.


이런 예는 목사와 같은 사역자들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매 맞는 사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은밀한 성차별을 너머서 노골적인 폭력이 신앙의 양심에 눈 감고 약한 성을 대상으로 악의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것은 신앙과 삶이 분리된, 두 얼굴을 가진 괴물 같은 존재가 우리 안에 용인되고 있다는 증거다. 서로에 대한 윤리적 무관심, 그러면서 신앙을 통해 죄책감을 씻는 거짓 은혜가 참 신앙으로 둔갑하여 교회를 교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폭력의 기원


이같은 비극적 상황에 대해 스토키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규모의 폭력은 사회와 문화 그 자체 안에 어떤 식으로든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면 존재할 수 없다. 여성의 가치에 대한 뿌리 깊은 전제 혹은 권력 사용에 대한 어떤 정당화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다”(17쪽). 스토키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통해 구조적 원인을 찾고자 하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한다. 적자생존의 세계관인 진화는 윤리적 정당성을 제공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이 차별받고 고통당하는 것이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러한 이유로 스토키는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이 문제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가부장제 문화를 원인으로 제시한다. 이 결론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일지 모른다. 여성주의가 오랫동안 거부하고 해체하고자 했던 것이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가 여성의 고통이 가중되는 원흉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학의 원인 분석이다. 또한 가부장제를 해체하여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하는 사회만이 폭력을 감소시키고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해결책은 오랫동안 여성주의가 취한 입장이다. 스토키도 이에 동의하며, 기독교가 이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한다. 후반부의 종교, 특별히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스토키의 논의를 읽으면서는 이전의 기독교 여성주의의 주장에서 발전된 내용이 없어 조금 아쉬웠다.


창조 질서에 기대어 …


마지막으로, 기독교 내부에서는 가부장제에 대해 여전히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다. 기독교의 가부장제가 과연 세상의 가부장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기독교가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해체주의적 입장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여성주의 관점이 성경을 해석하는 틀로 바른지, 그 근거를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실 현실에서는 이 둘 모두 어떤 분명한 답도 주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내가 속한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신학 속에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을 통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어떠한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창조 질서와 윤리를 주장하고자 한다. 십계명의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마라”이다. 이 조항은 두 단어로 이루어진 매우 단순한 문장이다. 이에 대해서 한 구약학자는 이 계명은 예외가 없는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석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자유인이든 노예든, 피부색, 인종,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폭력으로 고통당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하고 명쾌하며 예외가 없는 명령 말이다. 누구든 이 명령 앞에 예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