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 속에 나타난 기독교적 자아의 원천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저자명 James Houston · Jens Zimm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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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  작성일 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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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원천들을 위한 기독교적 내러티브


오늘날의 두드러진 풍조는 자기를 찾는 열풍이라 할 만하다. 한동안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와 같은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들이 유행하다가, 최근에는 정체성 또는 자아와 같은 단어들의 사용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근대 이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를 모색하는 연속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찰스 테일러는 『자아의 원천들』(Sources of the Self, 새물결)에서, 근대적 세속화를 경험한 서구 사회에서 개인은 타인이나 제도로부터 분리되고 자유로워졌지만, 그에 반해 인간의 자아는 상호 유기적 관계로부터 이탈하면서, 불안과 우울, 목적 없음이 숙명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제임스 휴스턴과 옌스 치머만의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는 테일러의 이와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이라 할 만하다. 서구인들이 신을 믿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상상하고,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 정체성을 갖추었다면, 이 책의 저자들은 신의 개입을 경험하고 그에게 응답하며 삶을 재구성한 이들의 회심 내러티브들을 소개한다. 이 책은 캐나다의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를 기반으로 한 42명의 신학자들과 기독교 지성인들이 협동으로 작업한 산물이기에, 한 걸출한 철학자가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줄기로 근대적 자아의 논의를 통섭한 『자아의 원천들』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매 장마다 다양한 저자들의 필치와 관점을 새롭게 배우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자아를 독립시키고 해방시킨 근대적 세속주의가 식상해지면서 인간의 존재 의미와 목적에 대한 종교적 중요성이 새로운 관심을 얻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 역사에 대한 탐구가 신론이나 구원론, 성례, 선교 등과 같이 지극히 종교 내적인 주제들에 집중되었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분과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어떻게 인간의 자기 이해와 삶의 변혁에 영향을 주었느냐를 묻는 것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면서도 꽤 낯설게 느껴지는 새로운 질문이기도 하다. 테일러는 근대적 자아가 초월성을 상실하고 내재적 세계로 축소되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규범과 가치를 잃게 되었다고 했는데, 신과의 관계에서 인간됨을 찾는 자아의 원천에 대한 회심 내러티브는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위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러한 기대와 의도를 안고, 이 책은 일곱 시기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들께로 돌아와 삶의 가치를 추구한 이들을 분류한다. 1부와 2부는 각각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인물들을 조명한다. 3부 초기 교회의 정체성, 4부 중세 시대의 정체성, 5부 종교개혁 시대의 정체성까지는 기독교적 자아에 대한 토대 위에서 논의가 전개된다. 그러다가 6부 근대 세계의 출현과 기독교 정체성은 세속화라는 인식론의 변화를 배경으로 논의를 이끌어 가며, 7부 20세기의 기독교 정체성은 더욱더 심화된 도전에 맞서 기독교 정체성 탐색의 과제를 헤쳐 간다.


성경과 초기 교회: 기독교적 정체성의 원형


성경적 정체성 내러티브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변화시키는 기독교적 자아를 탐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원형(prototype)을 제공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릴 만한 인물들인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레미야, 신약의 베드로, 바울, 야고보와 유다가 제시된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인생 개입과 부르심에 응답하고 회개하며 고난과 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발견한 대표적이고 비중 있는 인물들이다. 여러 예언자들 중에 예레미야가 선택된 것은 회심 과정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반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고, 신약에서 예수님의 형제들인 야고보와 유다를 언급한 것은 신자의 정체성이 혈연을 넘어서 “하나님의 부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159)임을 부각하기 위한 선정이다. 성경 인물들의 자아가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겪으며 성숙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묘사는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다윗의 신명기적 자아, 역대기적 자아, 시편적 자아라는 구분과 베드로를 그의 이름, 벳새다라는 장소, 어부로서의 정체성 등으로 구분하는 기술은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하는데, 이 모든 내러티브에서 견고한 축은 하나님의 부르심, 찾으심, 구비시키심, 그리고 신실하심에 근거한다.


초기 기독교는 이교 사상과의 융합 내지는 구별을 통한 정체성 찾기를 시도했는데, 교부들의 서술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철학적 융합 외에도 상징적, 문학적, 인격적 표현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의 핵심 탐구 과제인 로고스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재발견하고, 오리게네스는 그 유명한 총괄갱신론(이 책에서는 ‘만물회복설’로 번역되었다)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세계에 대한 상상을 재구성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에너지를 볼 수 있다”(250)는 인간의 창조적 정체성을, 암브로시우스는 이삭의 우물을 비유로 들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와 인간 영혼의 신비로운 연합을 가르치는 “세례 정체성”(298)을 얘기했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에덴동산의 아담을 수사들의 삶에 비유하며 수덕주의의 장점을 역설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 나타난 참회적 자아뿐 아니라 종말론적 인생을 살아가는 순례자적 자아, 그리고 시편 강해에 나타나는 탄식하고 청원하는 자아와 그리스도를 통한 치료를 전망한다. 그레고리우스 1세의 회심에 대한 이해는 철학자 폴 리쾨르의 분석을 빌려,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idem) 발견에서 진정한 자기 됨(ipse)으로 나아가는 은혜의 성품 형성 과정으로 해석된다.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 깊어지고 확장되는 복음적 정체성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에 기독교적 정체성은 깊어지고 확장된다. 지식을 추구하는 믿음(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라는 중요한 복음신학의 개념을 정립한 안셀무스는 지적 엄밀함을 갖춘 개인으로서, 베네딕투스회 공동체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신학과 저술 활동을 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회심을 자만과 자기 중독의 삶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인한 자유와 겸손의 삶으로 제시한다. 회심이 단순히 믿기로 결심하는 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자 그가 허락하신 자유와 섬김의 삶으로 들어서는 것이라는 관념은 도미니쿠스 수도회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은 신자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겸손과 가난이 덧붙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철저하고 깊이 있는 회심 이해는 복음을 위해 자발적 가난을 실천했던 수도원 운동의 생명력이 되었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 복음의 신비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세 최고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저술 활동의 절정기에 신비적 체험을 한 후 저술을 그만두었다. 결국 진정한 회심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음의 신비에 들어서는 것이며, 이는 아퀴나스의 고백과 같이 “주님, 당신이면 됩니다”(531)라는 겸손과 단순함, 그리고 증인의 삶을 일으킨다.

종교개혁 시대는 개신교적 자아 신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책은 토머스 모어와 토머스 베컨과 같이 당시 가톨릭 제도의 권위적 중심성을 옹호한 이들과, 루터와 칼뱅에게서 드러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 자아 발견을 비교한다. 루터의 인간론은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의지에 대한 강한 의심을 피력하며, 오직 은혜의 선물을 강조한다. 인간의 행위 주체성은 근대적 자아 개념의 핵심인데, 루터는 자아의 주체성은 아담-자아를 죽이고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자아를 통해서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칼뱅은 회심을 탈출(에덴에서의 탈출, 로마로부터의 탈출)로 이해하며, 심연의 불안 속에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치료적 자기 성찰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 앞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라 한다. 회심과 자아의 관점에서 루터와 칼뱅을 볼 때, 이들이 강조한 바는 오늘날의 과도한 자아중심주의와 치료문화로부터 탈자아중심적이며 견고한 자아의 정립을 위한 토대가 된다.
 

기독교 전통의 주목할 만한 소수자 정체성


이 책의 시기별 분류와 달리, 기독교 전통의 소수자 정체성 논의들을 별도로 조명해 볼 수 있다. 초기 기독교가 주류 세계로 편입되고 발전하던 시기에, 지중해 반대편에서는 상반된 상황 가운데 기독교적 정체성을 달리 체험하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었다. 예컨대,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은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의 지배 속에 노예가 되고 억류, 강제 이주, 인신매매를 당하며 힘없이 살아야 했다. 그곳에서 기독교는 크게 부흥하기도 했으나 이들은 ‘외세 지배하의 기독교 정체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들의 취약한 신분은 ‘포로들’이라는 말이 동시리아의 성인 전기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강제 이주라는 상황을 통해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리스도인 포로 및 노예들과 이교도 주인들 사이의 교류를 통해서 회심이 발생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미지는 성경 시대를 넘어가면서 서구인들 중심으로 채색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는 전체 42장 가운데 2장만을 할애하여 고대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다루지만, 역사학자 필립 젠킨스가 정확히 지적하듯,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발원지는 비서구권역인 중동과 아시아였다. 이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포로 시기와 억압 속에서 기독교적 정체성을 간직해 왔을 뿐 아니라, 이슬람 문명을 비롯한 비기독교 세계와의 교류 속에서 신앙을 방어하고 표현해 왔다는 점에서 오늘의 기독교 선교에도 중요한 교훈이 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중세 시대의 정체성 탐구 가운데 그리스도인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다. 이 책은 연대순으로 인물을 서술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기독교적 정체성에 대한 여성의 기여는 종교개혁과 근대 세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노리치의 줄리언은 하나님을 어머니로 묘사하며, 남성성과 더불어 여성성을 함께 담는 포괄적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사실 종교적 언어의 여성화는 클레멘스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부들에게서도 나타났고, 안셀무스 또한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를 그의 많은 시와 기도에 사용했다. 14세기 중반부터 종교적 계층의 위계구조가 무너지고 교육받은 평신도와 여성들이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고 연합된 사랑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늘어났다. 지옥과 연옥, 천국으로의 여행을 그린 『신곡』의 저자 단테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천상의 안내자를 자신이 이생에서 흠모했던 여인 베아트리체로 묘사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베아트리체는 완벽한 사랑이자 완성된 기독교 신자로서 단테의 실수와 수치를 깨닫게 하여 그를 회심의 자리로 나아오게 한다.


종교개혁 시대에 살았던 아빌라의 테레사 또한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하고 신비한 사랑의 표현을 남겼다. 고난받으시고 상처 입으신 그리스도 경험은 그를 초자연적인 기도의 삶으로 이끌었다. 테레사에게 회심은 수도원의 삶, 섬김의 삶, 그리고 자기중심으로부터 예수와의 연합된 삶으로의 변화였다. 근대의 안나 마리아 판 스휘르만과 잔느 귀용은 기독교 신앙에서 여성적 정체성을 더욱 섬세하게 정립해 준다. 특히 종교개혁 시대 이후 근대적 자아와 개인이 강화되는 흐름에서 여성적 자아는 그리스도께 대한 인격적 사랑과 연합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일깨워 주므로, 오늘날 더욱 만연하는 개인주의와 편의주의를 넘어서는 영적 사유를 제공할 수 있다. 19세기 인물인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순교를 기독교 영성의 한 담론으로 묘사했다. 그가 말하는 순교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의지를 죽이고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체성을 찾도록 부름받는 것이다. “신학에 중요한 학문을 연구하는 일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므로 여성에게 적합하다”(738)는 판 스휘르만의 주장은 기독교적 자아 형성에 기여하는 여성적 감수성을 돋보이게 한다.


근대와 현대 세계: 도전받는 기독교적 정체성


근대와 현대 세계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자아를 이해하는 방식은 자율적 개인주의와 기술 문명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근대 이후의 기독교적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버니언은 최심을 천상의 도성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노정 이야기로 전달한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자신의 회심을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지각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당시 청교도들에게서 흔했던 율법주의적 굴욕이 아니라, “위엄과 온유함의…달콤한 결합”(783),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구원의 아름다움과 내적 달콤함을 즐겁게 묵상하고 열망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또한 이 책은 존 웨슬리 대신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를 조명한다. 찰스는 기독교적 영향력이 가라앉던 18세기 근대 계몽주의의 발흥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찬송과 예배의 존재로 제시하는 독특한 기여를 했다. 그가 쓴 찬송들은 시대정신의 급류 속에서 신앙의 가치를 재발견한 풍성한 자료들이다. 당시 웨슬리 형제들이 이룬 복음주의적 회심과 경건 운동은 “대단히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의 정체감을 확립”(809)했다고 평가된다.


블레즈 파스칼은 수학자로서 탐구와 논증에 능숙한 사람이지만, 그는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로써 (데카르트가 추구한) 인간 이성의 탐구 범위 바깥에 있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더 크고 지속적인 인간의 대화에 깊이 기여”(866)했다. 키르케고르는 자기주장이 융성하던 19세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의 진정한 자아 발견을 추구하며, 진리에 이르는 길로서 회개와 믿음을 수반하는 회심을 제안한다. 카를 바르트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위해 선택받았다”(897)고 선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 전적 은혜에 응답하는 것을 인간의 참된 자유로 보았다. C. S, 루이스의 회심 여정은 자기 집착에서 자기 부인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복하며 기도하는 삶에서 자신이 갈구하던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본회퍼는 참된 자기의 토대를 “내 이웃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되는 데 나의 행동이 도움이 되는지 여부”(977)와 연결시키며 관계적 정체성을 재차 상기시킨다. 현대 기술문명에 대한 자크 엘륄의 비판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현대 기술 발전 배후의 영적 원동력은 현대화된 고대 영지주의로 볼 수 있는데, “물질성과 육체성이라는 낮은 영역을 멀리하고 특별한 종교적 통찰 또는 지식에 입문하는 방식으로 상위의 순수한 영적 영역으로 탈출하려”(1007) 하기 때문이다. AI, 메타버스, 빅 데이터의 급증하는 지배력과 함께 영지주의적 자아가 재현한다면, 기독교는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인격적 정체성을 지키고 회복하는 사명을 선제적으로 끌어안아야 하지 않을까?


회심 경험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정체성의 변증적 가능성


이 책은 기독교의 회심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존재로의 변혁적 차원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종종 회심은 개종이라는 외적 현상으로만 좁게 이해되곤 하는데, 기독교의 전통적 회심은 인격적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그 대상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삶이 재구성되는 사건이다. 기독교적 회심은 하나님 경험의 진수를 의미하며, 거기로부터 삶의 의미와 기쁨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소명과 그리스도께 대한 제자도가 뿌리내린다. 비록 이 책의 저자들이 회심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자아의 이해와 세계에 대한 상상이 회심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경험으로부터 비롯됨을 보여 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자기의 발견과 표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소중한 권리가 되었다. 이는 젊은 세대만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중년들도 회복해야 할 중대한 가치다. 기존에 사람들의 소속과 존재를 규정하던 혈연, 학연, 일터 등은 자아의 진정한 발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으로 취급된다. 새로운 관계를 찾는 사람들은 느슨한 취향의 네트워크를 선호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으나,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또한 현대 사회의 괄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가 정체성 정치다. 정체성이라는 단어는 소집단과 개인들이 자기 이해뿐 아니라 권리를 주장하는 개념이 되었다. 각자의 이슈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기독교도 어떤 의미에서 자기의 입장을 양보 없이 내세우는 정체성 투쟁의 한 축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기독교의 내러티브들은 하나님과의 유일무이한 관계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존재라는 인식을 반복적으로 발견해 왔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기 발견과 진정한 자아 회복을 위한 자기 부인과 헌신이라는 기독교 정체성의 유산은, 자기주장으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는 시대에 차별되고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가 말이 아닌 삶으로, 공동체로써 회심의 변혁성을 보여 준다면 말이다.


이 책은 기독교적 자아 탐구를 위한 회심의 문화사를 다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변화된 기독교 세계에 걸맞은 균형 잡힌 자료들을 전부 제공하진 못했다. 동방교회와 아프리카 그리스도인에 관한 일부 논의를 담긴 했지만, 논의의 깊이나 분량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늘 그렇듯, 우리에게 한국과 아시아의 기독교적 자아 탐구라는 과제를 넘겨준 것으로 이해하련다. 그 과제 또한 족히 1,000페이지 이상의 연구 가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