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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험하는 말씀 읽기

존 파이퍼의 초자연적 성경읽기

페이지 정보

저자명 John Piper
작성자 김선일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 작성일 2018-11-01

본문

성경 읽기의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 「존 파이퍼의 성경 읽기」

기독교인은 그 책(the Book), 즉 성경의 사람들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신앙생활의 질적 수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핵심 기준이다. 성경을 읽는 방식은 다양하다. 성경은 고도의 학문적 연구대상이기도 하면서, 개인의 안녕과 위로를 위한 교훈집, 혹은 성공과 번영을 위한 법칙서로 취급되기도 한다. 신학은 사실 이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느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의 장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가장 큰 이유도 성경을 알고 싶어서다. 자신들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한다. 따라서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문제는 전문 신학의 작업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에서 선택과 결정의 준거 이야기(reference narrative)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가 받아들인 이야기가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준다.  

  

현대 미국교계에서 개혁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열풍을 일으킨 존 파이퍼의 「존 파이퍼의 성경 읽기」(두란노, 2017)는 부제가 암시하듯, 성경 읽기의 목표를 ‘하나님을 경험하는 초자연적 말씀 읽기’로 명토 박으면서 그 의미를 근 600페이지에 걸쳐서 상세히 설명한다. 그는 성경 읽기의 거시적 목표인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시작해서, 미시적으로는 우리 삶과 감정에 구체적으로 선한 변화를 일으키는 성경 읽기의 과정을 전개하고 있다. 원제가 Reading the Bible Supernaturally, 즉 ‘성경을 초자연적으로 읽기’이기 때문에, 책을 펼치면서 그 의미가 몹시도 궁금했다. 성경을 초자연적으로 읽는다고 하면, 그와 반대되는 개념인 자연적 읽기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가리킬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이퍼는 초자연적 읽기와 자연적 읽기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초자연적 성경 읽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적 읽기를 중요시하며, 자연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 성경 읽기라는 역설적 상호 결합을 강조한다.


초자연적 성경 읽기란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성경 읽기라고 하면 언뜻 신비적 상상력, 맹목적 믿음이나 직통계시에 의존한 성경 읽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파이퍼는 초자연적 성경 읽기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49).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 문답의 첫 문장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가 떠오른다. 기독교 신앙에서 존엄한 가치를 지니고 함부로 토를 달 수 없는 명제이지만, 도대체 하나님의 영광이 오늘의 구체적인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신학자이고 목사인 나에게도 순간순간 올라오곤 했다. 그래서 약간은 추상적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그래도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소요리문답 1문의 후반부를 조명하며 ‘기독교 희락주의’(Christian hedonism)를 주창했던 저자이니 뜬구름 잡는 진술을 늘어놓을 것 같지 않았다. 예감은 적중했다. 아니, 내 예상을 뛰어 넘으며 성경 읽기에 관한 흐트러진 생각들을 가장 중요한 줄기에 다시 엮어주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어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관행을 간파한 듯, 저자는 클라이드 킬비의 말을 인용한다. “타락이 남긴 큰 비극 중 하나는 우리가 친숙한 영광에 권태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5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분의 존귀함, 아름다움, 가치, 탁월함이라고 표현한다. 이 영광은 구원의 서정인 예정, 창조, 성육신, 화목제물, 성화, 완성을 통해서 점점 더 확대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힘겹고 비루한 우리의 삶을 구원의 전 과정으로 탁월하고 아름답고 충만하게 인도하시기 때문에 영화로운 것이다. 우리는 앞에 놓여 있는 삶의 문제들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실존에서 발견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95). 저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성경 읽기의 연결 관계를 고린도후서 3:13-18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완고한 마음에 의해서 가려진 수건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책 전체의 논지로 기능을 하는데, 우리의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성경 읽기라는 놀라운 은혜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영광을 음미함


하나님의 영광, 즉 우리 삶에 임하는 그분의 존귀함과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발견하는 성경 읽기의 구체적 방법으로 ‘음미함’(savor)이라는 하나님께 대한 정서적 반응을 강조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을 누리는 열쇠는 음미함(“맛보아 알지어다”)에 있다. 말씀을 음미함은 이성의 도구에 치우친 지성적 읽기나 자기도취에 빠진 감정적 읽기의 위험을 동시에 넘어서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기쁨과 사랑과 행복으로 경험되기에 지성주의를 넘어서며, 그 말씀이 개인의 정신승리 요법이 아니라 우리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높은 진리, 즉 하나님의 무한한 존엄함과 아름다움을 조명하고 맛보게 함으로 감정주의를 넘어선다.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넘어서는 말씀의 읽기는 쓴맛과 단맛을 겸하여 음미함을 통해서 가능하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봄으로써 갖게 되는 유쾌한 감정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감정들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135) 이렇게 성경에서 하나님을 음미함으로 우리에게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탁월함을 인정하는 고백이 나올 수 있다. 


파이퍼는 왜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변화되지 않는지, 감동과 기쁨이 충만하지 못한지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펼치신 존엄함과 탁월함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외부의 원수(사탄)와 마음의 질병(죄)이라는 방해자 때문이다(248).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가 항상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지니는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다(292). 하님의 영광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음미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영광과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욕망이 목표가 되는 한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되는 성경 읽기에 이를 수 없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대립한 것은 그들이 성경을 오독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바로 읽으려면 자기를 내어드림을 수반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자연적 성경 읽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도 없고, 그 영광을 음미함에서 오는 삶의 변화도 경험할 수 없다. 


성령께서도 이러한 초자연적 성경 읽기를 도우신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매순간 하나님과 더불어, 그분을 의지하면서, 자연적인 삶을 매 순간 속속들이 초자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331). 저자는 줄곧 초자연적인 성경 읽기를 중심 주제로 삼지만, 이를 자연적인 성경 읽기와 대비시키지 않는다. 자연적인 성경 읽기란 무엇인가? 성경의 역사적 배경과 문법, 문맥, 문학성 등을 분석하면서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할 때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러한 수고의 중요성을 조금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 읽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고, 이 목표를 위한 온전한 읽기는 기도와 섭리적 인도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비하심으로만 우리는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에 주목할 수 있다. 


초자연적인 자연적 성경 읽기


저자의 독특한 주장 중 하나는 성경을 온전히 읽기 위해서 알기 위해서는 문학 규칙과 장르를 알아야 하지만, 그러한 분석적 이해가 성경 읽기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보통 본문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발견하게 하는 태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진정성과 확신을 가지고 본문을 보게 하는 태도는 본문 자체의 메시지를 최대한 경청하면서 온 힘을 다해 본문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425-426) 그는 이것이 기본적인 읽기의 자세이며, 성경 읽기의 궁극적 목표에 부합되는 정신과 마음의 유용한 습관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세가 성경을 자연적으로 읽는 것, 즉 지면의 통상적 이해를 부차적으로 미루지는 않는다. 이점에서 파이퍼는 기독교에서 성경의 위치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이슬람의 꾸란과 비교할 때, 성경의 온전한 읽기는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수반한다. 꾸란은 천국의 아랍어로 기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경은 이슬람의 꾸란에 상응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변함없는 실체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은 성육신을 통해 역사 속에서 고정되지만, 성령의 영감은 그런 식으로 성경을 고정시키지 않는다.”(449) 꾸란과 달리,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저자의 특정한 언어와 문학적 패턴을 알아야 한다. 성경 읽기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통상적 목표와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 궁극적 목표가 병행되어야 한다. 자연적 읽기가 초자연적 읽기 안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그분을 예배함이라는 핵심 목적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성경은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끈기 있게 엄격해서 보는 훈련을 요한다. 


저자는 성경을 읽을 때 적극적 주목하기와 능동적 독서가 결합되면 강력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488).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로마서 1:16-17의 ‘하나님의 의’를 인간 공로적 의가 아닌 믿음으로 살게 하는 선물임을 깨달았던 방식이었다. 따라서 문장을 도해하고, 본문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저자의 문법적 습관에 주목하고, 맥락 내에서의 의미를 성찰하는 자연적 읽기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조명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인도되는 초자연적 성경 읽기의 일환으로 통합된다. 저자는 이러한 성경 읽기가 하나의 성경 본문이 수백만 가지의 상황과 관계에 적용되는 풍성한 방식을 이끈다고 말한다(536).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저자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말씀을 음미하며, 인간의 삶과 감정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초자연적 성경 읽기가 핵심 해법이다. 초자연적 성경 읽기는 자연적 읽기에서 나타나는 언어와 장르에 관한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독자들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에 이르게 한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게 되고, 우리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탁월함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이라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되는 성경 읽기는 다름 아닌 승리하는 삶의 위대한 대열에 합류하는 길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여러 관점과 방법들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소개되어왔다. 구속사적 관점, 그리스도적 관점, 하나님의 나라 관점, 선교적 관점 등등... 이러한 관점들이 텍스트의 신학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파이퍼의 이 책은 그러한 신학적 관점들과는 달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경을 보게 해준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경 읽기, 초자연적 성경 읽기라고 하는 거시적이고 상층부적인 서술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자의 초점은 어떻게 그러한 읽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며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느냐로 모아진다. 그는 “하나님이 가장 큰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는 곳에서 거룩 같은 것은 없다”(139)는 놀라운 단언을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성경을 경건하게 영적으로 읽으며 삶으로 연결시키는 핵심 목양의 역할을 한다.


나는 그동안 존 파이퍼가 연루되었던 여러 논쟁들(칭의론, 만인구원론, 화장火葬, 여성안수  등)에서 사안에 따라 그에게 동의하기도 했고, 이견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현대적 이슈들이 아닌 신앙과 신학의 토대적 사유를 일깨우는 그의 독보적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칫 신학적 사유의 고공행진만 할 수 있는 개혁주의 신앙을 삶의 지면으로 착륙하게 했던 그의 학자적 목양 능력은 탁월하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저서들 가운데 「하나님을 기뻐하라」(Desiring God)가 선사했던 신선한 충격에 못지않은 유익과 설렘을 경험했다. 확실히 파이퍼는 명료하고 집중적이다. 복잡다단하고 파편화된 성경에 대한 여러 이해와 관점들을 관통하는 ‘초자연적 성경 읽기’라는 고유한 불변의 법칙을 새삼 심오하게 일깨워준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성경 읽기의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라고 잡았다. 프로레고메나는 서언, 서설이라는 뜻으로 중요한 저작에 앞서 나오는 입문의 기능을 한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성경 읽기의 프로레고메나로 추천하겠다.  


*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 서언, 서설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