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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박에서 자유로 가는 여정

율법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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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 김형익
작성자 정윤석 목사 (의왕석수교회) / 작성일 2018-11-19

본문

이 책을 읽으면서, 약 25년 전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고등학생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힘든 학창시절이었지만, 예배 시간에 부르던 찬양과 목사님의 설교 말씀으로 힘을 얻던 그 때의 나. 주일 아침이면, 마치 미팅에 나가는 수줍은 학생처럼 오늘도 주님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고, 또 마음이 설레곤 하던 그 시절. 그 후로 25년 남짓의 시간이 흘러 그 고등학생은 목사가 되었고,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그때의 고등학생과 지금의 나는 단순히 학생에서 목사로 신분만 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시절의 나는 구원의 은혜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수업을 마치면 여전히 교회로 달려와 청소하고, 주보를 한 손 가득 들고 전도를 나가곤 했다. 그러나 개척교회의 목사가 된 지금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내 손으로 뭐라도 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교회도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마지못해 전도지를 들고 동네를 나선다.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종교적 행위는 오히려 당시보다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왜 나의 마음은 이렇게 식어 버린 것일까?
 
아마도 많은 신앙인들이 이와 동일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본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김형익의 목사의 '율법과 복음'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두 가지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이것은 율법과 복음을 혼동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율법적인 삶과 복음적인 삶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율법적인 삶을 설명할 때 '의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이끈다.

“율법과 복음을 혼동할 때 의지는 신앙으로 둔갑하기 쉽습니다. (중략)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신앙생활도 잘 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자주 믿음과 의지를 혼동합니다. 이것은 율법과 복음을 혼동했기 때문에, 그리고 율법과 복음을 혼동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은 은혜입니다”(26면).

저자의 적절한 설명을 통해, 전도하는 나의 행위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그 동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영어식 표현을 예로 들어 더욱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율법은 조건적 성격을 갖는 'if(만일)/then(그러면)'으로 표기할 수 있고, 복음은 'because(때문에)/therefore(그러므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내 모습에 그대로 적용해 보았을 때, 'becasue/therefore'와 같은 복음주의적 마음으로 전도를 하던 나 자신이 어느새 'if/then'의 율법주의적 모습으로 변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둘째,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지만 그 이후 거룩하게 되는 과정은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기초한다'는 오해 때문이다. 즉 성화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종종 신앙 생활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거룩해질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 행위를 인정하셔서 더 큰 은혜를 허락하신다고 오해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 역시도 율법과 복음을 혼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마음 역시 율법적인 삶을 보여주는 'if/then'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서 거짓교사들이 가르치던 잘못된 복음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결국 의지와 행위로써 의를 이룰 수 있다는 율법주의적 사고관이 칭의 뿐 아니라 성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한다.
 
"율법과 복음의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여기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의 현실은 율법과 복음을 오해하고 혼동함으로써 신자의 성화 문제도 심각하게 오해하게 되었고, 결국 자기 의지로 거룩과 의를 이루어 가려는 율법주의가 많은 성도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89면).
 
한국 교회가 과거 폭발적인 성장과 부흥을 경험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성장과 부흥의 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식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저자가 언급하였듯이, 이 시대가 은혜라고 하는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은 복음과 율법에 대해 바른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 목회자와 이 둘을 혼동한 채 행위 중심의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우리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은혜에 사로잡혔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 그리고 어느새 율법주의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목회자로서의 나. 이러한 잘못된 방향성은 많은 성도들의 고민이자 한국 교회의 고민일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마주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성도가 기복신앙 중심의 설교, 윤리 중심의 설교, 감수성 위주의 에세이식 설교, 복음을 외면한 율법주의적 설교를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교회의 강단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도록 많이 강조해 온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강단의 회복은 설교자들에게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설교를 분별하는 성도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와 설교자를 분별하는 것은 성도의 책임입니다"(207면).

나도 저자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성도로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지는 않는지, 마음 속 욕구를 추구하고 또 그 욕구에 부합하는 설교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은 설교는 설사 복음적 설교라 하더라도 은근히 거부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 성도들의 수준이 적어도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저자 김형익 목사는 청중인 성도들의 책임보다 설교자들의 책임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는 설교자가 복음적 설교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하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저자의 이러한 일침에 설교자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의 헌신과 섬김을 쉽고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는 방법이 율법주의적인 설교, 혹은 감성과 지성을 만족시켜 주는 에세이 설교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설교자라면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동기, 율법 의식을 자극해서 섬김과 순종을 이끌어 내려는 욕구를 민감하게 살피고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다. 이 책이 많은 설교자들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율법과 복음을 바르게 이해시키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국 교회가 회복을 이루는 데에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마치 아주 은혜로운 설교 말씀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복음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충분히 뜨거워질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설교자로서,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고, 또한 성도로서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보며 다시 은혜로 가득했던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한다. '율법과 복음'을 통하여 이러한 갈망을 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