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Christianity

기독교의 기본진리

저자명 John St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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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박희찬 목사(별내들풀교회) /  작성일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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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에서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1921-2011)라는 이름은 매우 친숙하다. 더불어 그 명성만큼이나 기독교 복음주의의 대표적 설교자 중 하나인 그의 영향력도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상당수의 목회자는 적어도 그 이름을 알고 있거나 책꽂이에 그가 쓴 책을 한두 권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기독교의 기본진리’(Basic Christianity) 역시 1962년 1판 1쇄 출간 이후 판과 쇄를 거듭해 2018년까지 무려 6판 49쇄를 발행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과 함께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읽으면 된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저자의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그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흔히 목사로 소개되지만 사실 ‘영국 성공회 신부’라는 점 등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 역시도 학창 시절부터 그의 설교를 접했고, 목회자가 되어 설교를 하는 현재에도 여러 부분에서 존 스토트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를 막 믿기 시작했던 청년기 이후 20여 년이 흘러 목회자가 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이 책을 읽었던 청년 시절의 ‘흥분과 기대’는 이제 한 목회자의 ‘염려와 부끄러움’으로 대체되었다. 왜 그럴까?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기본’이라 여기며 마음에 새기던 내용을 목회자가 되면 쉽게 지키고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기본’에서 거리가 먼 삶의 습관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내 자신이 여전히 ‘자기 중심성’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인간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의 의미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자기 중심성의 극복, 원수 사랑하기의 세 가지로 정의한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이란 먼 미래나 내세로의 도피가 아닌 ‘지금 머물러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다루는 문제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해 준다. 저자는 생각이나 말에서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이 수고해야 하는 신앙으로 성숙해 가야 함을 강조한다. 책의 머리말 일부를 인용해 보자.


“기독교는 단순히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행동이 따라야 한다”(20).


저자는 우리의 전인격과 삶을 그리스도께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이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목적이 바로 본서의 주제이다. 그 주제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충성스러운 교인’이 되는 것이며 둘째는 ‘책임 있는 시민’이 되는 것으로서 신앙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저자의 이런 주관은 시종일관 흐트러지지 않는다. 또한 이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채택한 글쓰기 방식은 설교자들이 복음을 제시하며 흔히 범하기 쉬운 무례한 방식의 일방적인 선포가 아니라 논증적이며 성경에 기초한 귀납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 준다. 그래서 거부감이 덜하다. 예를 들어 죄에 대한 저자의 진술 방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그 다음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는 하나님 먼저, 이웃이 둘째, 나는 마지막이다. 죄는 이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첫째에 두고, 이웃을 둘째에, 하나님은 마지막에 둔다. [중략] 이 근본적인 자기 중심성은 모든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124-125).


저자는 가나 혼인 잔치를 해석하며 ‘물’은 옛 신앙 즉 율법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곧 복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은 그가 바로 메시아로서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분이며 그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되신다는 사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논리 전개 방식이 간단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글은 쉽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세 가지 답변이 제시된다. 첫째는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 둘째는 그가 보내신 성령, 셋째는 교회를 세우심이다. 이처럼 저자의 글은 단락이 잘 나뉘어 있고 도식화되어 있어 복잡하지 않고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친절하게 매 단락 끝에는 ‘토의를 위한 질문’을 두어 지식적인 확신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저자는 믿지 않는 자나 의심하는 자 그리고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 자의 관점에서 글을 서술한다. 교회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제도로서의 교회에 반발한다. 어떤 사람은 전적으로 부정하기도 한다. 물론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졌고 내부 지향적이며 복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죄 있고 불완전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를 거부할 이유가 못 된다. 우리도 역시 죄 있고 불완전하지 않은가?”(165).


이와 같은 교회에 대한 그의 논증은 5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이런 논증은 비판으로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한다. 가령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죄와 자기’, 이 두 가지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결단을 내리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리스도는 겸손한 분이며 그 겸손은 우리에게 자유를 보장해 준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지만, 독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친절함을 또한 보여 준다.


끝으로 저자는 인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둔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그리스도 안’과 ‘세상 안’에서의 균형 있는 삶을 강조하며 현실과 이상의 중간에서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내용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가 말하는 참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맺도록 하겠다.


“성경을 자신의 지침으로 여기는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 안’과 ‘세상 안’에서 동시에 똑같이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코, 어느 하나만을 택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제자의 삶이다”(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