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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in My Everything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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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 Ken Shigematsu
작성자 김봉현 목사(나무의숨교회) / 작성일 2019-03-04

본문

이 책은 오늘날의 숙제가 ‘분주함’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시대의 숙제는 바로 그 분주함이다. 요즘 사람들이 선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뻐서이다. 그들은 악할 여유도 없고 선할 여유도 없다. 생활을 위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분주함은 결국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분주함의 끝은 번아웃이다. 우리의 내면, 건강, 관계, 생활이 망가진다. 분주함은 환경의 우상을 섬기도록 만든다. 분주한 사람은 환경에 끌려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틀린 일이더라도 상황이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하고, 맞는 일이더라도 상황이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분주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삶 전체를 망가뜨린다. 따라서 이 분주함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결정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기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우리가 처한 상황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그 기준을 하나님 안에서 세우기로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그는 수도원적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수칙’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수도원적 삶이란, 내 생활을 억압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방편이다. 이 수칙은 마치 포도나무가 잘 자라도록 세워 놓은 격자무늬의 구조물과 같다. 그 구조물이 포도나무를 세우고 성장하게 하듯이, 올바른 수칙도 나의 생활이 바른 방향을 향해 가도록 돕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12가지 삶의 수칙을 본론에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안식일에 대한 수칙이다. 안식을 결정하는 것은 분주함에 저항하고, 쉼을 채우기로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 질서가 아니라 창조 질서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로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의 불안을 넘어 안식을 결정해야 한다. 안식일을 그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로 채워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진정한 안식으로 채워져야 한다. 곧 하나님께로 나를 이끌고 내 안에 생명이 충전되는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서 안식이 있는 삶이 분주한 삶보다 창조적이 된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해야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기도와 말씀에 대한 수칙이다. 이 시간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이름 지어지는 시간이다. 상황이 주는 의미를 가지고 분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묵상을 통해 내가 하는 일들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시간은 우리가 하는 동일한 일을 다른 의미로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불필요한 일들을 가지치기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우정과 성에 대한 수칙이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다. 영혼을 나누는 우정, 또 마음을 나누는 사랑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만족을 느낀다. 분주한 사회는 우리에게 관계란 시간 낭비라고 말하고, 외로움을 최소 경비로 해결하라고 권한다. SNS의 피상적인 관계나 진정성 없는 성관계를 추천한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우리를 더욱 메마르게 할 뿐이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관계를 가꿀 때 메마르지 않는 내면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여섯 번째는 가정에 대한 수칙이다. 분주함으로 가정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를 절벽에 세우는 행위이다. 가정의 숙제를 풀어가면서 진정한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것, 또 함께 예배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우리가 항상 우선순위에 두고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몸과 놀이에 대한 수칙이다. 몸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몸을 하나님의 영이 사시는 영적 공간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돌봐야 한다. 잘 자는 것, 잘 먹는 것, 잘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과도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몸과 건강을 중요한 삶의 기준으로 여겨야 한다. 또한 놀이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놀이는 자기 몰두에서 벗어나 삶을 순수하게 즐김으로써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다. 몸과 놀이를 잊고 사는 삶은 주유소에 들리지 않고 끝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와 같다. 어느 시점에서 모든 기능이 멈춘다고 해서 이상히 여길 일이 아니다. 반드시 몸을 위한 시간, 놀이를 위한 시간을 삶의 일부로 가져야 한다.


아홉 번째는 돈에 대한 수칙이다. 수도원 서약에서 청빈의 서약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돈에 대한 서약을 하는 것이다. 분주함과 싸우기 위해서는 돈에 대한 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지금보다 더 갖기를 바라는 기준으로 돈을 대한다면, 나는 분주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돈에 대해 단순함과 나눔의 서약을 해야 한다. 내 생활을 단순히 하고, 그 단순한 생활을 유지하며, 그 이상의 수익은 나눔에 쓰겠다는 서약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돈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태도로부터 자유해져야 분주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열 번째는 일에 대한 수칙이다. 수도원 영성의 중요한 부분은 노동이다. 수도사들은 노동을 중요한 영적 훈련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을 위해 일한다고 고백하며 노동했다. 그렇게 일 자체를 자기 연단과 보람의 기회로 삼았다. 그들은 농사, 요리, 건축, 사무 등 모든 일에 그와 같은 태도로 임했다. 우리도 그들처럼 일을 대해야 한다. 일에 대한 고백이 달라질 때, 일의 가치도 달라진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필요악으로 일을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세워 가는 헌신의 과정으로 일을 규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또한 분주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는 섬김과 전도에 대한 수칙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사명은 일하고, 사랑하고, 전하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주변에 나누는 섬김과 또 자신이 알게 된 하나님을 타인에게 전하는 전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과 안정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12가지 수칙을 소개한 저자는, 하루를 사는 모습이 곧 평생을 사는 모습이기에 그 하루를 위한 삶의 수칙을 세우고 지켜 가라고 도전한다. 이렇듯 우리가 겪는 분주함의 원인을 기준 없음에서 찾아 간다. 우리가 분주한 이유는 바른 기준을 가지고 삶을 살지 않아 결국에는 상황에 끌려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안식하지 않는다. 기도를 멀리하고 놀이를 포기하고 몸을 돌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삶은 우리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또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관계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채우려는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만 관계를 대하고, 진정한 우정과 사랑, 가정을 돌아보는 일에는 게을러진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점점 메말라 간다. 그리고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정신없이 일한다. 일의 의미, 돈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바쁘게 일하는 자리에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 넣는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실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바쁘다는 이유로 안식, 신앙, 관계, 가정, 놀이, 몸, 섬김, 전도를 잊고 살고 일과 돈에 대한 고민을 다 포기할 때, 우리는 상황에 끌려다니며 힘을 점차 잃어버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바쁘더라도 이 소중한 삶의 수칙을 기억하고 내 삶에 세워 나가고자 노력해야 한다. 안 그래도 바쁜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생각하기보다 덜 중요한 일들을 포기하고서라도 생활 속에 바른 기준을 세워 가기로 결정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쁘다는 상황을 마치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처럼 사용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바빠도 되는 것인지, 또한 이 분주함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고민이 필요하다.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 책을 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로 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적용은 미국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있는 특수한 정황에서 가능한 부분이 많다. 그 적용을 내 삶에 곧장 대입하면 맞지 않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적용을 시도한다면, 자신의 삶은 수칙을 세울 수 없는 조건 속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하나의 예로 받아들이며, 우리는 각자의 삶에 어떤 기준과 적용을 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가 권면한 것처럼 간단히, 천천히, 유연히, 내 인생 단계에 맞게 기준을 세워 나가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여 이 책의 권면과 같이 내 삶에 필요한 수칙을 세워 도시 안에서 수도원적 삶을 시작한다면, 분주한 삶으로부터 나를 구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