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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미래학자 최윤식 목사의 미래 통찰 보고서

최윤식의 퓨처 리포트: 빅 이슈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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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 최윤식
작성자 한지만 목사(Imago Christi 교회) / 작성일 2019-04-08

본문

처음에 이 책의 표지를 접하며 ‘아니, 이건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미래학이라고 하면 앨빈 토플러라든지 제레미 리프킨 같은 학자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전문 미래학자라는 타이틀 뒤에 붙은 ‘목사’라는 호칭이 이채롭고도 생경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학이 아니라 미래학을 연구한다니 흥미로웠던 것이다.


내가 자란 시절은 유난히도 세상을 바꾸고 변혁하며 그 안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을 많이 강조하던, 이른바 고지론의 시대여서, 기독교인의 관점으로 미래를 그려본다는 것은 자못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깊이 있는 기독교적 접근을 해 보지 못했던 터라, 본서가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서두에 다음과 같은 범상치 않은 문구가 있어 그대로 옮겨 본다. 이 책을 쓴 이유와 목적 그리고 방향이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은 우리가 버려야 할 소돔과 고모라가 아니다. 우리가 경고를 외치고 구원을 선포해야 할 곳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기독교인의 신앙과 사명에 관련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래 기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단, 세상과 똑같은 생각과 이해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56).


책의 전반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대단히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리서치를 통해 신중하게 수집되고 제기된 물음을 다룬다. 실제로 이 책은 그러한 질문들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비록 던져진 질문들의 크기에 비해 그에 대한 답변들이 왜소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은 다가오는 기술 변화의 거대한 물결이 그저 안이한 사고를 가지고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태이며 크리스천 지성인들은 바로 그 물결을 위한 대안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대 문명의 흐름과 그 결과에 대응할 족집게 같은 팁이나 방법론을 알아갈 수는 없지만, 어떻게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인식하고 바른 질문을 던질 것인지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는 있다. 즉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자신의 물음으로 삼고 그 의미를 해석하여 실제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과제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세 가지 미래 변혁 기술에 주안점을 두고 서술된다. 곧 21세기에 궁극의 변화를 초래할 세 가지 혁명적인 메타도구에 초점을 맞추는데, 바로 나노기술, 인공지능, 3D프린터이다.


첫 벗째로 저자가 ‘나노기술’을 21세기 미래 변혁을 주도할 핵심적인 메타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그 기술의 파급력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의 구성 원리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인간은 단순히 물질을 다루는 수준에만 머물렀다. 1차 산업혁명이든 2차 산업혁명이든, 실제로 물질의 성질을 이용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수준이었지, 물질 그 자체의 속성을 건드려서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런데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1927년부터 태동하게 되었고, 이러한 학문의 발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해 주었다.


이때 인류사의 명암이 갈리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인간이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갑자기 원자 단위의 세상과 그로부터 추출된 에너지의 활용에 눈을 뜨면서 가공할 원자 무기의 상용화를 이끌어 내게 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에서는, 1959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리처드 파인먼 교수가 이른바 ‘분자기계’로 알려진 새로운 기술 변화를 예언함으로써 향후 일어날 바이오산업혁명의 출발을 예고하게 된다. 이는 오늘날 유전자 조작 기술이라고 불리는 나노기술의 태동과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다.


현재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유전자 가위(CRISPR)와 같은 첨단기술은 바로 이러한 나노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염색체를 조사하여 손상된 부위를 제거/수정/삽입하여 유전체를 편집함으로써 개체 발생 이전에 그 형질을 바꾸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가져온 도구이다. 이 나노도구는 하나님이 자연을 만드신 원리를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도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나노기술의 도움을 받아 인간은 탄생 이전부터 선제적 질병예방을 통해 우수형질을 답습하고, 후천적으로는 맞춤형 자가면역장기의 배양을 통해 수명 연장의 꿈을 이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되고 배양된 인간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마오쩌둥처럼 인류에게 위협적인 인물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또한 빈부격차에 따라 부자들은 더욱더 생체공학적으로 세련된 후손 개발을 통해 신인류로 이루어진 개체 탄생을 이어가는 반면, 빈곤층들은 사실상의 단종을 당하게 되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가능성 역시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보는 혁신 기술은 ‘인공지능’이다. 이미 알파고 사태를 통해 자기학습형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하여 세간의 평가가 내려졌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터미네이터>는 바로 이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한 핵전쟁을 그리고 있고, 또 <이글아이>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실수 가능성이 있는 인간 정부를 제거하고 세계를 직접 조종하려는 음모를 다루고 있다. 인류는 자신과 사고방식과 같으면서도 그로부터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제어하려는 시도를 줄곧 해 왔다. 컴퓨터의 발명과 개발은 그런 시도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에는 아직 큰 기술적 난제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빠르기는 하나 아직 빛의 속도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의 속도가 이처럼 빠른 이유는 인간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병렬 처리 방식 때문이다. 폰 노이만의 연산 프로그램 방식에 기반한, 현존하는 모든 직렬 처리 방식의 컴퓨터들은 궁극적으로 병렬 처리라는 산맥을 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처럼 생각하는 강한 인공지능의 개발이 가능해진다.


저자는 이 부문에서 몇 가지 위험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다. 가령 과거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전한 설교를 인공지능에 입력하고 그와 관련된 주변 자료를 집어넣을 경우, 인공지능이 이미 고인이 된 당사자들이 살아 있었다면 응당 해내었으리라고 기대되는 수준의 설교와 저술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설교도 재현 내지는 추가가 가능하다고 예측한다. 만약 이런 가정들이 현실이 된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수준의 인공지능이 발전한다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이단을 만들어 신도를 몰고 다니는 현상까지도 나타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해석학적으로 잘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임재가 인공지능에게 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거느리는 새로운 종교와 변덕 많고 실수 연발인 인간 목사의 대결이 그저 코미디일 수는 없다. 성령 충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는 일이 가능한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세태로 볼 때, 차라리 깔끔한 인공지능 종교지도자를 따르겠다고 의식적 결정을 내리는 성도들이 늘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미래의 방도는 없어 보인다. 이는 우리 시대의 목회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초래될 수도 있는, 한국 교회의 두렵고 우울한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로 설명하는 메타도구는 ‘3D프린터’이다.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나라에도 3D프린터 열풍이 몰아닥친 적이 있다. 3D프린팅의 가장 큰 장점은 무궁무진한 확장성이다. 현재는 아직도 재료의 배합/분사/결과물을 성형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찍어낼 수 있는 가짓수가 제한적이기는 하나 조만간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상용화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나도 언젠가 TED 강연에서 3D프린팅을 이용한 백신 공급 방법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필요한 백신을 만들어 내는 경우, 이전에는 현지에서 샘플을 채취해서 비행기로 지구 반대편 미국이나 유럽의 연구소로 보내면, 거기서 시료를 채취하고 조합을 하여 백신을 만들어 다시 비행기로 보내고, 그것을 현지에서 다시 주사하고 분석하는 등 엄청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강연에서 제시된 방법은 현장에서 분자 구조를 파악해서 실시간으로 그 구조를 공유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의 물질 구성과 분자 구조를 완성하면, 현지에 있는 백신조합용 3D프린터가 전송받은 배합설계 구조대로 그 자리에서 백신을 찍어내는 놀라운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이 책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3D프린팅이 앞서 말한 나노기술과 더불어 인류의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임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우리는 결국 세 가지 메타기술을 사용하여 신인류를 만들어낼 것인가?’ 또한 ‘그 신인류가 만들어 갈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인가?’


저자의 설명대로 나노기술의 확장성과 범용성을 감안하면, 2050년 이후에는 스스로 생존의 조건을 찾아가는 개체의 창조가 가능하리라고 예상되며, 그 개체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나노기술은 원자 수준의 편집을 통해 개별 물질의 근본을 제어하여 물질의 속성을 바꿔 버리는 수준까지 발전해 갈 것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DNA에 대한 편집은 더 이상 어려운 과제가 아니게 된다.


문제는 이런 나노기술을 통해 창조된 개체에 인공지능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아주 강한 인공지능”이 정말로 자유의지를 갖게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음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뇌가 복잡계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으므로 자유의지 또한 복잡계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차후 개발될 “아주 강한 인공지능”의 경우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창발적 행동양식은 뇌를 부분으로 나누어서 탐구해도 찾을 수 없다. 부분 속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부분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로 작동하면서 임계점을 넘는 순간 창발적으로 나타난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뇌에서 창발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양식일 가능성이 크다”(105).


저자의 판단을 따른다면, 21세기 말이나 22세기 초에는 나노기술을 통한 유전형질의 배합과 설계가 완료되고, 그와 동시에 인공지능, 즉 창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된 “아주 강한 인공지능”의 결합이 예상되며, 차후 이런 복합체를 3D프린팅을 통해 복제하게 되면 신인류의 탄생이 막연한 공상만이 아닌 현실화가 될 수 있다.


이는 실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미래 인류의 삶을 결정할 중대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들은 너무나 큰 질문이어서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침범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창조된 신인류는 현생 인류를 도울 지혜로운 조언자이자 동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러 가지 과오의 역사를 가진 현생 인류를 적으로 규정할 것인가?’ ‘자의식과 자유의지를 가진 신인류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될 것인가?’


이는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학습테스트에서 흑인 여성을 고릴라로 인식한 사례라든가, 인공지능이 대량의 문서 학습를 통해 인종차별을 자동적으로 학습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공지능은 그 자체의 사고 프로세스의 발전과 무관하게 가치 판단이 그 저변에 적용되어 버릴 경우 축적된 지식의 양과 상관없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적대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통한 자의적 가치 판단이 훨씬 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성경의 창세기를 통해 묘사되는 바, 현생 인류가 행한 최초의 도발적 사건인 ‘선악과와 타락 이야기’를 통해 이미 경고된 사건이기도 하다. 자유의지가 주어진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 어떤 이유로 선과 악을 판단할 것인지 그 선택이 전적으로 해당 개체에게 위임되어 버리는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 아래 창조된 인간마저 자유의지의 발현을 따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났는데, 하나님보다 훨씬 못한 인류가 개발해 내는 신인류(나노형질복합체 + 아주 강한 인공지능)가 과연 미래에 우리 자신보다 더 나은 가치 판단을 담보해 줄 동반자적 존재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이미 기술 발전의 흐름과 경향은 되돌릴 수가 없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기술의 발전을 이룬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기술의 발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태초에 에덴동산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고자 하신 이 세상의 포맷을 이해한다면, 향후 과학기술의 발달이 아무리 활발하게 일어나더라도 걱정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창세기에 처음 등장한 세상이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성을 통해 경작하고 다스리며 지배하는 대상이었다. 거기에는 지성과 이성의 무한한 발전이 하나님께서 선악의 판단을 주관하신다는 전제 하에 다 열려 있었다. 다시 말해, 선악에 대한 가치 판단의 주권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아래 있다면, 기술과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본래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영역이 아니라 기뻐하시는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크리스천 리더들은 기술의 발달을 쳐다보며 우려하기보다는, 이 시대가 내리는 여러 가지 의사 결정들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이 지시하는 방향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소임을 다하여 100년 후에도 분명한 가치 준거와 윤리가 확립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무서운 발전은 위에서 기술한 대로 현생 인류를 능가할 신인류를 분명히 창조해 낼지도 모른다. 그 일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100년 후에 위에서 설명한 신인류가 마침내 창조되더라도, 그들을 하나님의 법 안으로 이끌어서 현생 인류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크리스천들이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서 그 윤리와 가치 준거의 실체를 그들에게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지만, 100년 후나 그 이후 시대에도 삶으로 보여 주지 않는 진리에 승복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삶으로 증거되지 않는 가짜 진리의 권위 아래 들어갈 인류는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