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사회를 사는 그리도인을 위한 교양

기독교는 타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저자명 Gerald R. McDerm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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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봉현 목사(나무의숨교회) /  작성일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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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타 종교를 근본주의적 태도와 자유주의적 태도인 양 극단으로 접근하는 관점들 사이에서 기독교인들 모두에게 적절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타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길이 옳다고 믿고 이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세우려고 한다. 책의 전반부는 계시에 대한 논증을 통해 타 종교 안에 계시가 있다는 점을 설득하고, 후반부는 타 종교 안에 담겨 있는 계시의 예를 설명한다.

 

저자는 일반 계시가 종교적 진리를 알고자 사유하는 타 종교 안에 잘 담겨 있기에 타 종교를 배움으로 일반 계시를 더 풍성히 알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경만을 유일하고 충분한 계시라고 생각하는 견해는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폭넓은 계시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부분을 논의하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는 단편적이고 취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언어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에 성경은 계시를 불완전하게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 성경이 담고 있는 계시가 충분하다는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저자는 계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계시가 다차원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경이 계시인가 계시에 대한 증언인가, 계시는 사건인가 사건에 대한 해석인가에 대한 논쟁을 소개하고, 델레스의 다섯 가지 계시 모형을 제시하면서 다섯 가지 모형에 모순이 담겨 있음을 설명한다. 이것을 통해 계시가 다차원적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저자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경만을 계시로 보는 관점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한 관점에서만 고려할 때 계시가 언제나 왜곡된다.”라고 결론 내리면서 “타 종교들 가운데 있는 계시에 대해 물을 때 계시가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만 계시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고, 타 종교 안에도 계시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자신이 복음주의자이며 타 종교에 구원이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구원의 계시가 아니라 진리의 계시의 측면에서 타 종교도 진리의 계시를 많이 담고 있으므로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이런 견해는 위험한 요소가 있으며 논쟁의 소지가 다소 존재한다.
 

저자가 “언어의 한계로 인해 성경은 불완전한 계시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이 불완전성을 타 종교 안에 내포된 계시가 보완해줄 수 있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성경의 언어가 불완전하다면 타 종교의 언어도 불완전하다. 언어의 한계로 도달할 수 없는 계시의 광대함은 타 종교의 언어로도 보완될 수 없다.


저자는 일반 계시를 말하면서 계시의 복합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관점이 특별계시에도 적용이 가능해 지고 타 종교의 계시를 수용해야 한다면 더 중요한 특별계시에 대해서는 복합성을 보지 않고 한 관점만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저자는 두 번째 근거로 성경과 역사가 증명하는 타 종교에 담겨진 계시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신구약성경에서 타 종교 안에 계시를 인정한 예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설명한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당시 고대종교의 개념인 개인신, 할례의식, 횃불의식을 사용해 하나님과 교제한 것은 고대종교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신약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은 이교도의 종교적 모범을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할례를 받지 않은 고넬료를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타 종교 안에 있는 계시를 인정한 것이다.” 


저자는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포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아 신학을 집대성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신학을 완성했다. 장 칼뱅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학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붓다로부터는 배우지 못할 이유가 이디 있겠는가?”라고 주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독교 계시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기여했던 것처럼, 타 종교가 기독교 계시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타 종교 안에서 하나님을 알았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또한 각 시대 별로 사용된 철학과 타 종교의 언어가 기독교의 계시를 이해하는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는 차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진단과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타 종교가 기독교 안에 있는 어떤 진리를 더 풍성하게 해석해 주는 부분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무아의 개념, 도교의 도, 유교의 인, 의, 예, 지가 성경 안에 이미 담겨 있는 계시를 얼마나 더 풍성하게 해석해주고 있는지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근본주의적 시각으로 타 종교를 비난해 온 사람들에게, 타 종교도 오히려 진리에 가까운 그 무엇이라고 설득하는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알지 못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타 종교인들이 어떤 의미에서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우리와 훨씬 더 가까운 사람이며 어떤 면에서는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저자가 계시의 개념이나 역사 안에서 타 종교의 영향이라고 하는 논쟁이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보다, 타 종교 안에 얼마나 기독교적인 가치가 내재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이 부분은 훌륭하고 유용하다.

 

타 종교를 존중하고 그 안에 내재된 기독교적인 가치를 찾는 접근은 타 종교의 전통을 무가치하고 유해하다고 보는 접근보다는 기독교를 전도하는 면에서도 훨씬 도움이 되기에 선교적인 관점에서도 저자는 이 점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고민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다. 저자의 도전처럼 우리는 그들이 가진 종교와 전통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무시하며 복음을 전함으로 전도의 첫 단계에 실패할 때가 많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가진 종교와 전통을 이해하고, 그 속에 존중할만한 가치에 존경심을 표하며, 우리가 가진 진리를 전하는 순서를 배워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저자의 도전과 타 종교 안에 담겨 있는 계시적 측면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편견에서 벗어나 그들을 이해하고 호의를 갖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논쟁적일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근거로 신학적 바탕을 마련하려고 한 시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타 종교 안에 일반계시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면에 기반을 두고, 타 종교 안에 담겨진 기독교적 가치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데에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