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를 낭만적 결혼관의 공허함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결혼, 그 아름다운 예배

저자명 Christopher 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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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봉현 목사(나무의숨교회) /  작성일 2019-08-26

본문

“일부 결혼 서적은 ‘어떻게’의 물음에 집중한다. 어떻게 소통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중략] 이런 질문도 의미가 있으나 대체로 나의 초점은 그런 게 아니다. [중략] 그보다는 ‘왜’의 물음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일단 목표가 분명해지면 결혼의 정체에 대한 당연한 이유가 보이고, 건강한 결혼을 가꾸는 방법도 더 잘 연결되어 나온다.”


저자는 우리가 결혼에 대해서 던지고 있는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어떻게’에 대한 질문보다 ‘왜’에 대한 질문이 먼저 던져져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이 잘못된 상태에서 좋은 방법은 의미가 없다. 방향이 틀렸는데 방법이 좋다고 바른 결과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잘못된 방향은 ‘나를 위한 결혼’이나 ‘결혼을 위한 결혼’이다. 어떤 사람은 나를 위해 결혼한다. 내가 외로움에서 벗어나 가정의 안정감을 누리고, 적막함에서 벗어나 성적 친밀함을 누릴 것을 기대하며 결혼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위해 결혼한다. 그 결혼이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기를 기대하며 결혼한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시작한 결혼은 결국 왜곡되거나 좌초된다고 경고한다. 나를 위한 결혼을 하는 사람은 상대가 나를 만족시켜주길 기대하다가 어느 지점에 실망하게 되고, 파트너를 교체하고 싶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결혼을 위해 결혼하는 사람은 하나님마저도 나의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어 가는데 돕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혼 자체를 우상화시킨다. 저자는 이 잘못된 방향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제시하는 바른 방향은 ‘하나님을 위한 결혼’, ‘세상을 위한 결혼’이다. 저자는 창세기를 근거로 이 부분을 설명한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땅을 다스릴 사명을 주셨다. 남녀로 창조된 장면은 하나님의 형상의 창조된 장면과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주시는 장면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성적인 결합인 결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과정으로써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의 세상을 섬기는 목적성 속에 있다. 창세기 2장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는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서 여자를 만드신 것이기 보다 남자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함께 돕는 배필로써 여자를 지으셨다. 그러니 우리의 결혼이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섬기는 결혼이 되게 해야 한다.


저자는 결혼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예로 두 가지를 설명한다.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세상을 세워가는 사명에 동참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누리는데 방해되는 존재로 자녀를 생각하고 자녀를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를 비판하며, 자녀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자녀가 축복인 이유는 그들이 나의 정서적 만족을 채우거나 나의 이루지 못한 사회적 야망을 대신 충족시켜주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위하는 결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 친밀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상을 위하는 목적에 동참한다고 말한다. 성적 친밀함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는 문제이다. 현대 문화는 이것이 마치 영혼을 구원하고 존재를 완성시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다. 성적 친밀함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경계심으로 성적 친밀함을 터부시하고 부부사이에서 배제되는 것도 문제이다. 결혼을 통해서 나눠지는 성적 친밀함을 통해 우리는 정서적 풍성을 얻는다. 이것은 우리가 자녀와 주변에 친밀함을 흘려보내는데 근원이 된다. 우리는 성적 친밀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상을 더 따뜻하게 섬길 수 있다.


이후로 저자는 결혼에 관련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성경을 기준으로 대답한다.


저자는 남편이 다스리고, 아내가 복종하는 가정의 틀이 갖춰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아내는 복종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긍정적인 이해의 의미를 이해하며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포악하거나 무책임한 태도를 버리고 바르고 따뜻하고 유능한 지도력을 갖춰 지도해야 한다.


또 저자는 동거의 문제를 지적하며 결혼제도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결혼제도를 지지한다. 결혼제도 안에서 성적 친밀함은 선한 것이고, 이 제도 밖에서 성적 친밀함은 모두 악한 것이다. 이것은 간음이고 성경은 이것을 배격한다. 특히 혼전 동거는 이 결혼 제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배격되어야 한다. 동거는 재앙과 파멸을 부르는 것이다.
 
저자는 부부간의 충절을 강조하면서 이혼에 반대하고 혼외정사를 비판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결혼했다고 후회되는 순간, 사랑이 남아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날에도, 결혼이 포기되어서는 안된다. 고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하고 충절을 지켰던 것을 생각하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이혼을 선택할 수 없다. 모든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갈라놓을 수 없다. 또한 간음이 중죄라는 것을 강조하여 설명한다. 간음은 선약을 외면한 것이고, 혼란을 야기하고, 거짓된 것이고,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고,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중죄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혼전 성관계로 더럽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믿고 회개하여 다시 거룩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론에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결혼에 대해 ‘왜’를 묻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를 묻는 것이 문제라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결혼에 대해서 방법적 대답만을 찾으려는 이 시대를 향한 중요한 문제 제기이다.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잘못된 것일 수 있기에 우리의 목적을 점검하고 바른 목적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결혼에 대한 방법론에 빠져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저자는 그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목적을 복음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의 목적을 독자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찾는 큰 흐름 속에서 결혼의 목적을 찾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내 인생의 목적을 찾았다면, 당연히 하나님 안에서 결혼의 목적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을 독자적인 무엇으로 보는 편린화된 관점에서 벗어나, 인생이라는 통합적인 관점 속에서 결혼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저자의 관점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저자는 결혼을 바라보는 관점의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혼을 소비하거나 우상화하는 우리의 세속화된 중심을 회개해야한다고 말한다. 나의 생각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욕망을 배우는, 세속적 사고와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와 성령의 소욕을 얻으려는 복음적 태도가 결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복음 안에서 결혼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 결혼 안에 들어온 욕심과 우상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개와 은혜가 필요하다는 복음적 관점은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가 결혼에 바라는 바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와 같아야 한다. 그것이 옳고, 그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옳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옳다. 내가 원하는 것이 좋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에게 회개가 필요하다. 내 의와 원함에 묶여 있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옳다고 하시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제시하는 복음과 회개의 관점에서 결혼을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본론을 평범한 문제의식으로 채우고 있다.


저자의 관점은 탁월하지만, 막상 그래서 무엇이 하나님이 뜻하시는 결혼인가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예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저자는 자녀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과 부부 사이의 친밀함으로 세상에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긍정적인 설명을 멈춘다. 그리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저자는 아내가 왜 복종해야 하는지, 동거가 왜 나쁜지, 왜 이혼이 금지되어야 하는지, 간음이 얼마나 중죄인지 설명하는 것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마치 후반부는 “성경이 강조하는 결혼의 책임”으로 책 제목이 바뀐 것처럼 결혼의 아름다움이나 목적에 대한 설명은 사라지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비판으로 내용이 채워진다. 내용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혼, 그 아름다운 예배’라는 제목을 보고 책을 선택할 때, 동거가 왜 잘못되었고, 간음이 왜 중죄인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또 지엽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도 등장한다. 이혼 불가에 대한 예로 고대의 결혼을 예로 드는 것이나, 부부는 상대의 성욕을 채워줄 의무가 있어서 자기 몸에 대한 권리가 상대에게 양도되었다는 것이나, 사랑이 사라진 결혼을 충절로 견뎌야 한다는 것 등 부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이나 대안도 등장한다.


긍정의 설명을 기대하며


개인적으로 결혼과 성에 대한 기독교의 대답이 오답 설명에 치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설명보다 무엇이 틀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다. 그러니 틀린 것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맞는 것을 하고 있지도 않은 그리스도인이 많다. 혼전순결을 지키고, 동거하지 않고, 이혼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배우자와 지속적인 성생활을 이어가며, 남편에게 순종하며, 여러 명의 자녀를 낳아 교회에 다니게 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결혼 안에 있지 못한 성도들이 많이 있다.


오답 설명만큼이나 정답 설명이 필요하다. 복음을 설명할 때,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만 설명하면 복음이 제대로 설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 복음으로 얻게 되는 그 풍성함을 설명할 때 복음이 제대로 설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적 풍성, 공동체의 행복, 사명의 보람, 믿음, 소망, 사랑, 죄사함과 성령충만의 기쁨 등, 이것들이 설명되고 경험되어서 이것을 방해하는 오답은 자연스럽게 배격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에 대해서도 정답 설명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결혼의 아름다움과 풍성이 충분히 설명되고 경험되어져서 이것을 방해하는 오답은 자연스럽게 배격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이 책의 정답 설명이 너무 빨리 끝나고, 오답 설명이 너무 일찍 시작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아쉬움일 뿐이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더 듣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끝난 아쉬움일 뿐, 어떻게 생각하면 두 가지 측면을 균형있게 설명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결혼을 바라보는 복음적인 관점을 통해 그것을 기쁨으로 누리며, 세속에서부터 지켜야겠다는 결의를 얻을 수 있다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에 관한 질문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