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상세검색
'아담'에 대한 총 12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교회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회]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2-05-12

신앙의 성숙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은 주제이다. 지난 30여년을 선교사와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복음을 위한 헌신이나 신앙생활을 해 온 세월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누이 보아 왔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율법은 사람의 외적 태도와 행동양식은 변화시킬 수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성숙은 안에서 밖으로의(inside out) 변화이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을 안에서 밖으로 온전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은혜가 말씀과 기도와…

[공동체, 그 회복을 위하여]•있게 하신 자리_정갑신가정 공동체의 회복_정갑신•나는 ‘피차 복종’의 자리에 있는가?•나는 ‘변명을 덮는 순종’의 자리에 있는가?포용 공동체의 회복_박삼영• “그리스도를 본받아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교회는 어떻게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가?공감 공동체의 회복_권성찬•교회는 세상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교회는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생명 공동체의 회복_정민영•세상은 교회로부터 생명을 기대할 수 있는가?•어떤 교회라야 세상이 생명을 기대할수 있는가?5월 한 달 동안 매주 이어질 위의 글들은 20…

왜 우리는 죄를 짓는가?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Ryan M. McGraw 작성일 2022-02-08

죄의 범위와 전적 부패 교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울은 구약의 여러 본문을 결합해서 우리 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

오래된 속삭임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이인호 작성일 2021-11-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복음은 타락의 선언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이 선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복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 나의 흉악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아래 있다는 이 선언에서부터 복음은 시작된다.이를 잘 아는 사탄은 복음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것은 긍정의 속삭임이다. “네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사탄은 절망적인 인간에게 긍정의 불을 지핀다.이것은 오래된 속삭임이다. 사탄은 …

아담은 인류 전체의 아버지이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ichael Reeves 작성일 2021-12-07

​어제 게재한“‘첫 사람’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아담, 인류의 머리됨인류와 아담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항상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사이의 오래된 논쟁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펠라기우스는 아담과 인류 사이의 물리적 연결에만 의문을 제기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아담과 인류의 물리적 연결은 구원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구원과 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개별 인간 각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 것은 그가 아담과 근본적인 연결되어 있…

‘첫 사람 아담’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ichael Reeves 작성일 2021-12-06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보통 복음서를 탈신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의 부활을 새로운 생명의 원리를 드러내는 일종의 신화적 묘사로 보는 식의 해석을 반대한다. 반대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역사성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라는 성경의 두 인물과 관련해서는, 복음주의 안에 이들을 신화적이거나 상징적인 인물로 매우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이 글의 목적은 단순하다. 까다로운 문자주의자의 주변 문제까지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담을 인류 전체의 …

세상은 놀라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 이유
[이슈] 작성자 by 김형익 작성일 2021-04-08

세상에는 놀랄 일이 가득하다. 매일 전해지는 크고 작은 뉴스들은 정말 우리를 많이 놀라게 한다. 어쩌면 너무 많이 놀라서 놀람둔감증이라는 자기보호적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30세 이상이 된 사람들 대부분은 20년 전인 2001년 9월 11일의 911 테러 뉴스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벌써 두 달 동안 미얀마의 쿠데타 세력에 의해 벌어지는 민간인 학살 뉴스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한다. 이 중에는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비슷한 사건의 뉴스들도 있다. 유아 학대 사건이 그중 하나인데, 그 부모…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Phil Anderas 작성일 2021-03-19

친애하는 형제에게이번에 특별히 네가 중요한 생일을 맞이한다고 하면서 너의 아버지가 내게 한 가지 요청을 하셨어. 누구나 어렸을 때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때는 알 수 없는, 인생에 관한 교훈을 담은 편지를 네게 써주면 좋겠다고 말야. 아주 좋은 생각이라 여겨지기에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솔직하게, 성화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힘든 삶의 여정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인생 학교라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구나.십자가의 길에는 지름길이 없단다. 오로지 고통만이 있을 뿐이지. 네가 부름받은 이유도 힘든 일…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라는 말처럼 자주 거론되면서도 동시에 가장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을 것이다. 낙태를 반대하기 위해서, 사회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 노인과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인간이 가진 모든 차이를 초월한 인간 보편의 가치를 강조하는 의미로 기독교인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라는 구호를 외친다. 그건 맞는 말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 말을 제대로 설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행여 그런 …

삼색 은총의 길 따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목회] 작성자 by 정현구 작성일 2020-07-08

사회적 거리두기가 수개월 째 계속되면서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고,영상 예배를 계속하면서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마저도 멀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될수록 정작 더 필요한 것은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고, 특히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를 좁히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는 주일 예배를 이전처럼 드리지 못하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를 점점 멀게 만드는 것 같지만,오히려 그 거리를 좁힐 수도 있다. 알다시피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