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끝까지 애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는 이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이 겸허하고 신중한 성경 공부를 평생동안 해 나가기를 바라는 겁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이 시리즈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분들이 있을 텐데요. 여러분이 지역 교회에 소속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을 잘 가르치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중심에 십자가와 부활 신앙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이 성숙과 신실함으로 자라가는 지역 교회에 소속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도움이 되는 많은 유용한 자료들을 TGC 웹사…
약 2년 전에 한 기자가 당시 호주 성공회 교회의 수장인 퍼스시의 대주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발견한 시체가 예수라는 신빙성이 매우 높다면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대주교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속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믿으니까요” 바울은 다소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이해합니다. 훨씬 더 직설적이고 명확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난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셋째, 다른 종교와는 달리 기독교의 핵심 주장은 절대적으로 역사성에 의존합니다. 어떻게든 석가모니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불교의 신앙이 무너질까요? 물론 아닙니다. 불교의 타당성과 신뢰성은 일종의 철학적 종교 체계로서 불교 교리의 내적 일관성과 매력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도 상관없습니다. 어떻게든 위대한 힌두 신인 크리슈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다면 힌두교가 없어질까요? 물론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가 수천의 신들을 가지고 있다면 힌두교에는 수백만의 신들이 있습니다…
넷째, 오늘날의 논의에서는 ‘역사적’이라는 단어가 때때로 몇 가지 신뢰할 수 없는 가정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주의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역사적’이라는 단어가 원인과 결과가 전적으로 평범하고 자연적인 시간에 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정의는 기적을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성’이라는 단어는 시공의 연속성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적합합니…
둘째,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접근하는 방식은 거의 모든 역사적 사건을 접근하는 방식과 정확히 동일합니다. 증거들과 그곳에 있었던 이들이 남긴 기록의 자료들을 통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증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증인들을 열거하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서신을 썼던 시점에 그 증인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확인해 볼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더욱이 바울은 그 증인의 신뢰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성경은 정말로 기록되었고 최초의 증…
다섯 번째로 복음은 역사적입니다. 여기서 다음 네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의 묻히심과 부활을 모두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묻히심은 예수님의 죽음을 증언합니다. 보통 오직 죽은 사람만 장사 지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부활을 증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으로 뗄 수 없이 묶여 있는 일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이 부활하신 분입니다. 무덤에서 나온 예수님의 몸은, 도마가 보고자 했던 그 몸은 무덤에 누여졌던 바로 그 상처 난 몸이었습니다. 부활 사건은 사망 후 삼일 째 되…
네 번째로 복음은 사도적 가르침입니다. 물론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500명 이상의 목격자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지속적으로 사도들에게 주목합니다. 예수께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5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7절) “맨 나중에는…내게도 보이셨느니라”(8절)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9절) 그리고 11절의 대명사의 순서를 주의하여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바울 사도]나 그들[다른 사도들]이나 우리들[모든 사도들]이 이같이 …
세 번째로 복음은 성경적입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성경 본문이 어디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것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는 내용에 따라서요. 어쩌면 베드로가 오순절에 인용했던 시편 16편과 이사야 53장의 말씀이었거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이 인용했던 시편 2편의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의 신학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고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회개가 필요한 이유는 오시는 왕은 복뿐만 아니라 심판도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산상 수훈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라고 교훈하실 뿐 아니라 게헤나 지옥불에서 달아나라고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지 말라고 청중에게 경고하며 예수님께서 다음 말씀으로 마지막 심판을 선포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
두 번째로 복음은 신학적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5장은 계속해서 증거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5절 이하를 보면 그렇습니다. 더 넓게 신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아들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신 이유는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들의 사명과 아버지의 주권적 계획이 서로 맞부딪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복음이 기독론적이라면 그만큼 신학적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성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