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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현대인의 정체성과 윤리의 기원

저자명 Carl R. Tru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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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이춘성(고신대원 기독교윤리학 겸임교수) /  출판사 부흥과개혁사 / 작성일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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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여름 사역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 정신 차리고 어떤 책의 서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책이 바로 지난 7월에 나온 교회사학자 칼 트루먼(Carl R. Trueman)이 쓴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이질감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약 2년 전에 읽은 이 책의 영문 제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Rise and Triumph of the Modern Self” 번역하면 “현대 자아의 발흥과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글 제목이 무조건 틀렸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책의 내용에는 소위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er Schule), 혹은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신좌파에 대한 내용이 1/3을 차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좌파는 과거 무력 혁명을 통해 타락한 자본주의를 척결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낙원을 건설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좌파와는 달리, 무력이 아닌 사회 비평과 문화적 변혁을 통해서 자본주의에 대항하고자 했던 정치, 사상 그룹을 가리킨다. 둘 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 방향은 달랐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부의 전복이 아니라 시민의 정신세계와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근본적인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은 일면 역사 속에서 더 효과적이었다고 판명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 이질감이 든 두 번째 이유는 제목이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남북의 분단,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라는 이념과 정치 진영 속에서, 휴전과 대치라는 긴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선거철이 오면 우리나라는 두 진영으로 나눠서 원수라도 된 것처럼 치열한 전쟁을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초월적인 영역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부끄러운 상황이다. 비교적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나이 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향해 그 탓을 돌리지만,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정치 냄새가 풀풀 나는 책 제목은 딱 오해받기 쉽다. 나같이 이 책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이런 제목의 책을 선 듯 집어 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글 제목만큼 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한 제목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판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트루먼은 이 책의 한글 제목에서 내가 느낀 이질감에 대해서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논증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 문화와 정치를 지배하는 LGBTQ+ 문제가 단순히 자아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발생한 더 심원한 혁명의 징후일 뿐이라는 관념이었다.”(478) 또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관련해, 우리는 오늘날 모두 표현적 개인주의자인데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표현적 개인주의는 우리가 살아야 하고 우리가 그 구성원이 되는 세계의 본질이다.”(479) 이 두 인용은 이 책의 내용이 단순히 신좌파 정치운동, 성 혁명, 퀴어 운동에 관해서 설명하고, 이것들을 기독교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트루먼의 접근은 이보다 더 심오하고 근본적이다.


책의 전체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자. 트루먼은 세 명의 중요한 학자의 사상을 연구하고 인용하는 것을 통해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 운동(LGBTQ+)의 사회, 문화, 사상적 기반을 분석한다. 이 세 사람은 헤겔 사상과 세속화 이론을 연구하여 템플턴 상을 받은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와 20세기 후반에 덕 윤리를 다시금 윤리학의 중심에 위치 하게한 윤리학자 알리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프로이트 심리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회학자 필립 리프(Philip Rieff)이다. 트루먼은 이들에게서 현대인들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찾아낸다. 트루먼은 테일러에게서는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 매킨타이어에게서는 ‘주정주의(emotivism)’, 리프에서는 ‘치유적 사회(therapeutic society)’라는 이들의 주된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들의 공통된 특징이 개인의 심리와 주관을 행복과 판단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 후에 테일러의 ‘표현적 개인주의’를 통해 이 세 사람의 사상을 통합한다. 표현적 개인주의란 집단과 전통의 표현이 공적 사회를 지배하면서 개인의 표현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과거 세계관을 부정하고 개인의 표현이 공적 사회를 지배하며, 집단과 전통에 앞선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테일러의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테일러는 이 책에서 중세의 종교개혁을 일종의 획일적인 전체주의적 세계에서 다양성이 가능한 다원론적 세계를 연 역사적 사건으로 분석하였다. 비록 종교개혁자들이 현대적 다원주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의 권력에 대항하여 새로운 교회를 시작한 것은 이후에 있을 교파의 분열과 사상의 가능성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에 이 가능성의 씨앗은 여러 사람의 사회적 상상을 통해 확장되었고, 이는 무신론과 세속화라는 물결과 만나 개혁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별히 트루먼은 현대의 표현적 개인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신을 제거한 인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루소의 낭만주의와 프로이트의 성(sex)을 인간의 본질적 행복과 정체성으로 분석한 정신분석학, 이후 헤겔, 니체, 마르크스, 신좌파로 이어지는 사상적 흐름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주관과 개인이 진리와 윤리 판단의 중심이 되는 과정이며, 또한 사실과 윤리가 개인의 주관적 행복에 지배당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어서 트루먼은 프로이트에서 시작한 성이 개인의 행복과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서구 사회 속에 정착되었는지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신좌파 사상가들의 전략적 선택이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신마르크스 주의)의 기여가 지대하다. 대표적으로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에 대해서 언급하며, 특히 마르쿠제가 현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사상가이자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의 저자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루먼은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성 혁명(68혁명)이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사건과 2015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오버거펠 대 호지스( Obergefell v. Hodges)’ 사건으로 이어진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것들은 현상일 뿐 그 뿌리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 뿌리는 ‘표현적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표현적 개인주의는 이미 철학과 문화를 통해 시작되었고, 성 혁명과 동성애 운동은 표현적 개인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이거나 그 결과적 현상인 것이다.


결론으로 트루먼은 표현적 개인주의는 성 윤리의 영역만이 아닌 교회와 사회 안에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간증이 공적인 설교보다 더 큰 효과를 나타내는 현상이나, 개인이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권리 등이 그 예이다. 전체가 개인을 지나치게 규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와 반대로 개인의 표현을 극단적으로 우상화하는 경우, 진리와 윤리는 ‘n’개가 되고, 이것들의 개념은 개인의 주관적 표현으로 대치된다. 그 극단의 예가 동성애 운동을 ‘LGBTQ+’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성을 셀 수 없는 ‘+’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 가운데,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은 사실상 없으며, 행복 또한 모두 주관화 되어 공유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공유할 수 없는 정체성, 타자와 나눌 수 없는 행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정체성을 찾고, 참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전통과 전체를 해체한 결과, 누구와도 공유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정체성과 행복이 순수한 정체성이며 행복이라면, 그건 극단의 고독과 외로움, 소외를 참된 정체성, 행복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가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에서 그리는 지옥의 모습과 같다. 동성애 운동은 소수자의 소외와 차별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이스의 예측이 맞다면 그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것이다. 미래에, 아니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을 이상한 신세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동성애 운동의 이면 흐르는 문화, 사상의 흐름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기록한 트루먼의 이 책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려하는 신자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한글 제목이 주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차고 넘친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부탁한다. 이 책을 읽고 성도와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