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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잔위원회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인도의 소수 그리스도인

BJP가 이끄는 국가에서 기독교의 복음 증거에 대한 재고_신시아 스티븐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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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다양성, 다원적 문화 및 종교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종교적 폭력이 수차례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지난 20년 동안 시크교인(Sikhs)와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심각한 폭력이 자행되었다.[1] 인도의 다양성과 영토의 크기는 폭력의 광범위한 확산을 막는 보루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힌두교 다수당 BJP(Bharatiya Janata Party, 인도인민당)는 현재 중앙에서 집권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념적 원천인 RSS(Rasthtriya Swayamsevak Sangh, 전국자원봉사단)는 비힌두교인과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차별의 결과를 낳은 두 가지 원칙을 추진해 왔다.


BJP와 RSS(Rashtriya Swayamsevak Sangh, 힌두교 극우 민족 봉사단)에 의해 추진된 첫 번째 원칙은 그들이 상상하고 있는 힌두 국가(Hindu Rashtra)를 향한 획일성과 순응성이다. 힌두 국가는 소위 힌두교라고 잘못 불려지고 있는 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비힌두교인에게는 이등 시민권을 부여한다. 또한 RSS는 또한 마누법전(Manusmriti)에 기초한 전통신앙(힌두교로 알려진)을 이해하는 민족주의 이념인 힌두트바(Hindutva, 힌두교 우파 민족주의 이념 – 역자 주)[2] 를 장려한다. 이 고대의 규범은 브라만 계층 남성의 우월성과 그 아래에 있는 다른 인간의 고유한 불평등에 대한 믿음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이 불평등은 출생에 따라 특정 카스트, 직업, 그리고 당연히 성별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인도 카스트 제도의 기초를 형성한다.[3]


현대 인도의 형성


당시 인도를 세속 국가(secular nation state)로 세운 것은 놀라운 성과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막 치르고 난 세계는 갈등과 전쟁에 지쳐 있었다.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이 파키스탄과 인도라는 두 나라로 분할되면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지만 정치적 협상을 통해 영국에서 인도로 비교적 순조로운 권력 이양이 이루어졌다. 곧이어 새로 구성된 정부는 당대에 가장 저명한 법조인 중 한 명인 암베드카르 박사(Dr. BR Ambedkar)가 이끄는 제헌의회와 함께 헌법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제출된 초안은 의원들과 토론을 거쳐 조항별로 완성되었다.


제헌의회 토론은 세부적이고 체계적이었고, 논쟁이 될 만한 사항들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을 내렸다.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제헌의회 절차에 기록된 바와 같이 종교의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창립 멤버들은 종교의 자유와 질서있는 정부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종교의 자치와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의 필요성에 비추어 이에 대해 논의했다. 제헌의회는 종교 국가가 아닌 세속 국가를 확고히 지지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


인도 헌법 25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1. 공공 질서, 도덕 및 건강과 이 장(Part)의 다른 규정에 따라 모든 사람은 양심의 자유와 자유롭게 종교를 고백, 실천 및 전파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자격이 있다.

2. 이 조의 어떠한 내용도 기존 법률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거나 국가가 다음과 같은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1) 종교적 관행과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경제적, 재정적, 정치적 또는 기타 세속적 활동을 규제하거나 제한하기.[4]


인도의 헌법은 종교를 주정부와 연방 정부(union governments) 산하에 두고 있다. 주정부들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지만 상호간에 충돌이 있을 경우에는 중앙법이 우선한다. 따라서 종교를 다루는 모든 주정부의 법률은 법률로 통과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종교 개종에 관한 중앙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BJP의 이론적 지도자들은 세속적 헌법에 반대했고 그들의 당 기관인 오거나이저(The Organiser)에서 그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썼다. 그들은 인도의 진정한 헌법은 마누법전이라고 주장했다.[5]


집단 폭력의 부상


인도의 탄생은 분할로 야기된 종파적 폭력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 인도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이슬람교도 대다수 지역이 파키스탄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형성되었다가 나중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분리되었다. 폭력은 국가의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인도 공화국의 초기 수십 년 동안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 건설, 경제 및 농업 자급 자족에 중점을 두었으며 파키스탄과의 두 차례의 전쟁과 중국과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균형 감각과 미래 지향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치하의 인도는 분쟁으로 찢긴 20세기에 도덕적 지도자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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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세기 초에 뿌려진 파시스트(fascist) 힌두트바 프로젝트의 씨앗은 70년대와 80년대에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BJP는 1984년에 단 2석으로 의회에서 첫 번째 의석을 얻었다. 그러나 1989년에는 후에 집단 폭력을 촉발하게 된 그 당시 대통령 엘케이 아드바니(LK Advani)의 격렬한 전국적인 도로 캠페인 이후에 의석수가 85석으로 늘어났다. 이 캠페인은 1996년 네팔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주의 아요디아(Ayodhya)에 있는 람(Ram) 신의 탄생지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바브리(Babri) 회교성원을 1996년에 파괴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정당의 선거 운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현재 의원수 543명 중 303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04년과 2009년의 선거에서는 연립 정부가 인도 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를 주도했지만 2014년에는 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대대적인 소셜 미디어 광고 캠페인을 통해 집권하게 되었으며 2019년에 재선되었다. 전국적으로, 특히 BJP가 통치하는 지역에서는 소수집단을 적대시하는 소요가 수차례 발생했다. 2007년에 BJP는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에서 자나타 달(세속)(Janata Dal(secular)) 정당과 함께 연립 정부에 합류했다.


BJP의 지지 세력이 항상 힌디어 중심부, 즉 인도 북부와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 확장은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적으로 인도의 나머지 지역들로부터 구별되었던 남부에서는 북부의 힌두트바 물결에 저항했고 그 이유는 그곳의 다양성 때문이었다. 즉, 그곳에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되고 남부의 언어와 사람들은 드라비디안(인도의 원주민 종족 – 역자 주)이 더 많았다. 인도 반도의 양쪽 해안에서 이뤄진 역사적인 해상무역과 다른 나라들과의 정치적 연계는, 더 높은 사회-경제적 성취와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보다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는데, 이는 해안 도시들과 정치적 도시들을 제외한 인도의 나머지 지역들에 비해, 남부지역에는 식민지 시대에 지역 주민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많은 학교와 대학 덕분이다.


다원적인 인도의 소수 기독교인 


인도의 다양성은 국가의 종교, 언어, 문화, 음악, 예술, 건축, 문학, 무용, 조각, 야금(metallurgy), 직물 및 식품의 수에서 나타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생겨난 지 몇 년 후에 인도 해안에 이르렀다. 초기 세기에 파시교도(Parsis), 유대인, 시리아의 정교회 기독교인, 이슬람교도가 인도 남부 해안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영구적으로 평화롭게 정착하여 번성했다. 식민지 이전 시대에 브라만 학자들이 강력한 왕과 신하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고 정치, 종교, 사회, 문화, 언어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할 때까지는 불교와 자이나교가 가장 널리 따르는 전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전국적으로 지역 신앙 전통과 신념 체계가 퍼져있었다.


1498년 포르투갈인의 도착은 느리지만 격변적인 일련의 사건을 촉발했다. 무역을 하러 온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그 뒤를 이었다. 마침내, 영국인은 정치적인 우세를 얻었고 거의 2세기 동안 대륙의 대부분을 통치했으며 이는 1947년에 끝이 났다.


영국인은 100년 넘게 종교 활동에 반대했고, 말년에는 선교사들에게 약간의 지원만 제공했지만 포르투갈인들은 그들이 잘 자리 잡은 양쪽 해안에서 가톨릭 신앙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나중에 서해안의 고아(Goa)에 기반을 둔 그들의 영향력은 1961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인도 정부는 네루(Nehru) 총리의 수년간의 외교적 노력과 현지인들의 투쟁 끝에 마침내 무력을 사용하여 그들을 쫓아내고 영토를 차지했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고아에는 약 25%의 기독교인이 남아 있다.[6]


세계 기독교 데이터베이스(World Christian Database)에 따르면 2020년 인도에는 힌두교인 73%, 이슬람교인 14%, 그리고 기독교인 5%가 있으며 이는 2011년 2%에서 증가한 수치이다.[7] 인도 전역의 상당히 많은 수의 소외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 부족(Scheduled Tribes, SC)으로 알려진 약 8%의 원주민과 현재는 달리트(Dalits)로도 불리며 불특정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약 18%의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s, SC)가 거주하고 있다.[8] 친 힌두트바 정부는 많은 지정 카스트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8개 주는 개종 금지법이 있어서 많은 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러한 집단들은 힌두트바 정치 프로젝트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무슬림들을 쇠고기 거래 및 소비로 문제 삼아서, 또는 ‘테러리스트’로서 표적으로 삼는다. 기독교인들은 ‘사기 및 유혹’으로 사람들을 강제 개종시켰다는 구실로 거짓 비난과 공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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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복음 증거에 대한 재고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교육, 의료, 사회의 장애인, 노인, 취약계층에 대한 봉사로 유명하며 많은 선의를 베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에서, 카스트, 계급, 교단, 재산 문제, 교회 내에서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의 폭력이라는 부정적인 영향은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심지어 그들의 복음 증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텔레비전 전도자들과 그들의 거대한 ‘제국’의 부상, 일부 열성적인 설교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부적절한 언어 사용도 문제를 일으켰다.


선교사들은 전도에 대하여 재고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신약성경을 배포하기 위해 학교나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때 전도 활동에서 인기가 많았던 소책자 배포하거나 어린이를 위한 여름 캠프도 이제는 쉽지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정집에서의 기도모임에서 함께 소리내어 찬송을 부르는 것은 폭력적인 활동가에게 행동의 기회를 준다. 심지어는 작은 자립교회가 임대 공간에서 드리는 주일 아침 예배조차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대인 관계 기술, 디지털 방식, 음악 및 창의성을 사용하여 복음을 나누고 구도자를 제자로 삼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 일부 전도자들이 선호하는 대담한 접근 방식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있으니, 우리는 상황과 문화에 알맞게 통합된 방식의 전도를 고안해야 한다. 우리는 젊은이와 노인들이 자비량 선교사로서 음악, 영화, 창작 활동, 정부 및 미디어와 같은 분야에 진출하도록 격려해야 하는가?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와 정책 지지자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서로에게서 배우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가?[9]


미주


1. ‘ Chronology of communal violence in India,’ Hindustan Times, February 26, 2022,https://www.hindustantimes.com/india/chronology-of-communal-violence-in-india/story-jJtcgvxFYh5N3jhS w7H4KN.html.

2. 이 단어는 RSS 창시자 중 한 명인 Vinayak Damodar Savarkar가 작성한 소책자의 제목에 있다. 원래 1923년 ‘힌두트바의 필수품’으로 출판된 이 책은 ‘힌두트바:힌두교인은 누구인가?’ https://archive.org/details/hindutva-vinayak-damodar-savarkar-pdf 에서 확인 가능함.

3. PB Sawant, ‘The Manusmriti and a Divided Nation’, The Wire , November 16, 2020,https://thewire.in/caste/manusmriti-history-discrimination-constitution.

4. https://www.constitutionofindia.net/constitution_of_india/fundamental_rights/articles/Article%2025.

5. P.G. Ambedkar, ‘The “Neech” Debate: Here’s What Manu-Smriti, a Favourite of RSS, Has to Say About it,’ Newsclick, Dec 11, 2017, https://www.newsclick.in/neech-debate-heres-what-manu-smriti-favourite-rss-has-say-about-it.

6. https://www.indiacensus.net/states/goa . ‘All India Religion Census Data 2011’ is available here,https://www.indiacensus.net/. The population census 2021 was delayed due to the pandemic.

7. World Christian Database, https://worldchristiandatabase.org/.

8. ‘The Indian Dalits attacked for wearing the wrong shoes,’ BBC News, June 19, 2018,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44517922.

9. 편집자 주 : 로잔 글로벌 분석 2019년 5월호 ‘힌두교 근본주의의 부상’ 기사 참조 , https://lausanne.org/content/lga/2019-05/the-rise-of-hindu-fundamentalism.


사진 출처


Photo by Tofin Creations on Unsplash


“Oriental Orthodox church in India collects palm fronds for the Palm Sunday” from ‘English Wikipedia‘ by MasalaiMasalaiMasalai (CC BY-SA 3.0).


“Remains of a church property burnt down during communal violence in Orissa in August 2008” by All India Christian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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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스티븐(Cynthia Stephen)은 프리랜서 사회 정책 연구원이자 분석가이며 저널리스트이다. 그녀는 인도 방갈로르(Bangalore)에 위치한 테드 트러스트(TEDS Trust)의 회장이다. 그녀는 또한 젠더, 정책 및 개발 문제에 대해 잘 알려진 강연자이다. 그녀는 정의 및 여성 권한 부여 그룹을 위한 계획을 주도했다. 소수 종교인이자 달리트(Dalit)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신시아는 종종 소외된 공동체의 여성과 소녀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우려에 대해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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