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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화 있을진저

8월 6일 말씀 QT_누가복음 11장 37-54절

2022-08-06

누가복음 11장 37-5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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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바리새인들에 대한 화의 세 가지 선포


형식과 교만에 빠지면 화병에 걸려 죽는다. 예수님은 보다 직접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시며 정죄하셨다. 마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외식과 위선의 신앙에 대해서 일곱 가지 화를 선언하신 것으로 기록했다. 누가는 본문에서 바리새인에 대한 화와 율법사에 대한 화를 각각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그들이 신앙의 내면보다 형식에 치우쳐 율법의 정신인 공의와 사랑을 저버렸다.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렸다. 여기서 언급하는 박하, 운향, 그리고 모든 채소는 엄밀한 의미에서 십일조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규정된 요구 이상의 것을 바치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 생활은 지나친 형식주의와 외식하는 모습을 바로 보여준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준수했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과 공의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무관심한 태도는 ‘버리는도다’로 번역된 ‘파레르케스테’가 잘 보여준다. 이 뜻은 ‘지나치다’, ‘비켜가다’란 의미다. 바리새인들은 참된 진리의 핵심, 즉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에는 주의하지 않고 비켜 가면서 외적 형식만을 추구하였다. 


둘째, 교만하여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는 것을 기뻐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기뻐하였다’로 번역된 ‘아가파테’는 그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본래 ‘아가파테’는 성도를 향한 사랑이나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열망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바쳐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같은 시대의 사람들로부터 받기를 원했다. 많은 유대인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사랑을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겉과 속이 다른 가증한 위선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평토장한 무덤 같다’라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그 위를 밟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바리새인들은 겉은 온갖 거룩한 형식들로 치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적 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율법사에 대한 화의 선포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듯 인위적인 지식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첫째, 자기는 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율법의 짐을 지우는 행위이다. 율법사들은 자신이 지기 어려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자기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손을 대지 않았다. 여기서 지기 어려운 짐이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에 대한 장로들의 유전과 율법사들의 해석을 가리킨다. 


둘째, 진리를 전파하는 자를 핍박하는 포학성이다. 율법사들은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조상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여 묻힌 무덤을 다시 쌓았다. 하지만 그 행위는 자신들의 악함을 은폐하기 위한 위선이었다. 즉, 그들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행하는 데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선지자들의 무덤 쌓기에만 열을 올렸다. 


셋째,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이다. 율법사들은 그들 나름의 해석방법으로 구약을 해석했다.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열쇠’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열쇠’는 그들의 주권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사실상 율법사들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했다. 그들의 행위는 ‘천국의 문’을 잠그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어떤 율법주의적인 신앙이 있는가? 나의 자랑과 교만한 신앙으로 인해 어떤 낭패를 경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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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정영민(밴쿠버초대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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