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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의로운 말을 내는 입
2019-03-12
잠언 12장 13-14절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비방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인격을 모독하고 악한 소문을 퍼뜨리거나, 혹은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명예를 깎아내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심지어는 사납고 부당한 비난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거짓 험담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비난과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해치기 위해 함정을 파지만, 결국에는 그 함정에 스스로가 걸려든다. 잠언 12장 13절은 입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이 한 말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되고, 비난을 당한 의로운 사람들은 피할 길을 얻는다고 언급한다. 즉, 말로 하나님의 종을 괴롭히는 악인들은 결국 그들 자신을 궁극적인 희생물로 삼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니엘 선지자의 일화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시기심에 사로 잡힌 왕궁의 관리들은 다니엘이 악한 일을 했다고 비난하며 그가 사자굴로 보내지도록 만들지만, 다니엘은 보호를 받았고 거짓 비방자들은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다(단 6장).말로 축복을 가져다주는 의인들은 비방자의 함정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많은 복을 누리게 된다(잠 12:14). 이 말씀에는 물질적인 형통함과 함께, 육체적인 만족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축복이 암시되어 있다. 즉 "열매"는 좋은 평판과 영적 축복을 포함한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은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신다.우리의 말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공로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또 그들에 관해 하는 말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가 드러난다. 주님은 비방을 일삼는 자들을 이 세상에서는 당장 심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을 위해 차곡차곡 그분의 진노를 쌓고 있는 중이다. 정직하게 말하고 또 말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자 애쓴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이자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코람 데오부주의하게 내뱉은 말도 책임을 져야 한다면(마 12:36), 악의적인 비난의 말에 대해서는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말이 곧 마음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다른 사람에 관한 말과 일상의 언행에 더욱 조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옭아맬 함정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말하고자 노력하기를 기도한다.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Good Fruit of Righteous Speech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하나님의 확고한 뜻
2019-03-11
잠언 19장 21절“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죄는 비이성적인 행위이다. 특히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할 때는 그런 사실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이 만사를 작정하셨다는 개념(곧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에 따른다는 개념)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워하며(민 23:19), 그런 이유로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간은 스스로 만사를 결정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는 비이성적인 태도이다. 인간의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 모든 일이 우리의 뜻대로 결정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인간은 모든 일을 알지 못한다. 또한 원하는 목표가 달성되었음에도 상황이 기대하지 않았던 나쁜 결과로 이어질 때가 적지 않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한다.하나님의 주권을 옳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는 지극히 합리적일 뿐 아니라 마음에 많은 위로를 준다.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의식할 때,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쉽지 않은 삶 속에서 오늘의 본문과 같은 말씀을 읽으며 위로를 찾아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많은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 계획이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해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매튜 헨리는 오늘의 본문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은 종종 인간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방책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 과정을 방해하거나 그분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 창조주께서는 의도하신 일을 항상 이루신다. 때로는 그런 사실이 우리에게 즉시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또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를 종종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지혜나 선하심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다(사 55:8-9).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그분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고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하시더라도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다.코람 데오매튜 헨리는 “때가 되면 옳고 선한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분의 백성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가?”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이루시며, 그 뜻은 항상 우리를 유익하게 한다(롬 8:28). 혹시 광야와 같은 상황에 있는가? 창조주께서는 당신을 궁극적으로 유익하게 하기 위해 역사하고 계신다. 그렇기에 그분의 백성인 우리는 어떠한 삶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다.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Lord’s Established Purpos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이렇게 기도하라
2019-03-08
시편 106장 4-5절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기도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고, 또 기도할 것을 알고 있더라도 자신 없이 말을 더듬을 때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도움 없이 방치하지 않으신다. 우선 하나님은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롬 8:26-27). 우리는 나름대로 깊은 이해력과 정돈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완전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상달되도록 도와주신다.하나님은 성령의 도우심 외에도 주기도와 시편과 같은 기도의 본보기를 제공해 우리가 보좌 앞에 나갈 때 도움을 베푸신다. 오늘의 본문도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이상적인 본보기 가운데 하나이다.오늘의 본문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고한다. 로마서 1장 21절에 따르면, 감사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는 것은 거듭난 신자가 드리는 기도의 중요한 특징에 해당한다.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좋지만, 믿음이 성장할수록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축복에 감사하는 고백을 늘려나가야 한다(살전 5:18).아울러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그분의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 언약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분이 요구하시는 언약의 책임을 비롯해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 사역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통해 그분의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들과 언약의 관계를 맺으셨다(시 106:2). 이 시편의 저자와 같은 충실한 옛 언약의 신자는 출애굽을 기억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새 언약의 신자들은 출애굽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 사역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행위와 계시를 발견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이루어진 결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 곧 하나님의 길로 나아오는 책임을 기억해야 한다(시 106:3). 우리에게 주어진 언약의 책임은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요 14:15).시편 저자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언약을 충실히 지킨 그분의 행위를 기억하고 난 뒤에 자신이 원하는 도움을 간구했다(시 106:4-5).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 원하는 것을 구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으시기 때문에, 그분이 주시는 축복은 순전한 은혜다.코람 데오스펄전은 “훌륭한 간구”라는 설교에서 “죄인이 누리는 것은 모두 은혜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오직 은혜로만 주어진다. 만일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만 받는다면, 사랑이나 긍휼 혹은 은혜를 전혀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정죄를 받아야 마땅할 뿐이나, 정죄 대신 축복이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진리를 기억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더불어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신다. 감사와 구원 사역에 대한 기억으로 우리의 기도를 채워가자.출처: www.ligonier.org 원제: A Call for God to Remember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말하는 지혜와 듣는 지혜
2019-03-07
잠언 17장 9-10절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더욱 깊이 박히느니라"누구나 한번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잘못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 우리도 종종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얼마든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말을 실수한 탓에 곤경에 처할 때도 적지 않다. 그만큼 말의 힘은 강력하다. 말은 평판을 무너뜨리거나 친구 관계를 파괴하기도 하고, 적절한 때에 옳게만 전달하면 상대방에게 지혜를 전달하는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그렇기 때문에 창조주께서 성경을 통해 말의 능력과 중요성에 관해 가르침을 많이 베푸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오늘의 본문인 잠언 17장 9절은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과거의 일을 들춰내려는 우리의 성향과 험담을 일삼기 좋아하는 태도를 꼬집는다. "거듭 말하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어떤 말을 단 한 번만 되풀이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문에서 언급하는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드물게 언급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언급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친구와의 사랑을 돈독하게 하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의 허물을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는 것과 그 허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입사 지원자의 경력 조사나 교회 지도자의 선택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과거 범죄 여부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일 그런 사실이 드러난다면, 고용이나 교회의 직임을 맡기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잠언에서 다루는 문제는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잘못이다. 만약 당신이 친구의 그런 잘못을 거론하지 않고 덮어 준다면, 이는 그 마음에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 있다는 증거이다(벧전 4:8).또한 두 번째 구절인 잠언 17장 10절은 지혜로운 사람이 받아들일 충고에 관해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충고가 적절한지를 판단해 주의를 기울여 듣는다. 고집이 센 미련한 사람은 매 백 대에 해당할만큼 아무리 꾸중하고 경고해도 깨우침이 없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시기적절한 충고를 열린 마음으로 잘 받아들인다.코람 데오말을 할 때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우리에게는 항상 지혜가 필요하다. 먼저 크리스천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써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굳게 세워가는 지혜로운 섬김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들을 때에도 지혜의 분별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건네는 부적절한 충고를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하는 지혜와 듣는 지혜를 기억하자.출처: www.ligonier.org원제: Discerning Rebuk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거룩함의 정확한 의미
2019-03-06
마태복음 6장 9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거룩’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거룩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우리는 거룩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거룩’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흔히 의로움과 윤리적인 순수성을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성경 본문에서 거룩함을 의로운 삶이나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것과 연관시키곤 한다(고후 7:1; 벧전 1:14-16). 그러나 ‘거룩’이 도덕적 불타협과 연관성이 있기는 해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의 주요 내용은 아니다. 그보다도 거룩하다는 것은 첫째로 평범한 것과 구분된다는 뜻이다. 거룩한 것은 이 세상과 비교할 때 다르거나 독특한 것이다. 그래서 거룩함은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특징이 아니며 시간과 사물도 거룩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조주 하나님이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를 만나셨을 때, 그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는 거룩한 땅이 되었다(출 3:1-6). 성막 안에 언약궤를 놓은 공간은‘지성소’였으며(레 16:1-2), 구약의 절기와 축제는 시간 자체를 하나님께 거룩한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뜻에 따라 특별한 용도나 목적으로 구별하시는 사물이나 사람은 거룩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물이나 사람보다도 피조물과 ‘구별되는’ 분이기에 거룩하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초월성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높고 존귀한 분이기에 어떤 피조물도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순결함에 필적할 수 없다(출 15:11; 사 33:5).십계명과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대하는 태도를 다루면서 그분의 거룩하심에 대해 말한다. 타락한 피조물은 살인이 금지된 행위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지만, 하나님의 거룩하고 구별된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 죄임을 깨달으려면 그분의 ‘특별 계시’의 말씀이 필요하다(출 20:7).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구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마 6:9).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은 너무나 크게 구별되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게 여겨져야 한다. 코람 데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지만(요 15:12-15; 약 2:23), 이 관계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우정을 맺을 때처럼 격의 없는 사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친구인 우리에게 존귀하게 섬김을 받으셔야 하며,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참된 친구가 아니다. 하나님은 친구이시지만 그분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분명 겸손과 감사와 경배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구별되시는 분, 즉 거룩한 분이므로 모든 찬양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Meaning of Holiness번역: 차수정 (개혁된실천사)
QT 인정받는 종
2019-03-05
이사야 53장 10-11절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도록 부름 받은 아담은 실패했고,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던 동산에서 쫓겨났다(창 2:15-16; 3장; 롬 5:12-21). 애굽에서 구출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특히 이스라엘의 왕)은 언약을 깨뜨렸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던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왕하 17:7-23; 호 6:7).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추방은 인류가 완전히 타락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2). 하나님께 구원받은 이들조차 실패하는데, 그렇다면 누구에게 소망이 있는가?소망은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메시아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의 실패를 만회하는 데 필요한 완전한 순종과 씻음을 베푸신다. 이로써 하나님은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메시아(이스라엘의 왕)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를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부르시며,그들을 다가올 진노에서 구원하신다(사 11:10; 슥 2:10-12; 롬 11장; 살전 1:10).우리는 메시아가 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아는데, 이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인정하시기 때문이다(사 53:10-12). 하나님의 종을 상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만약 거기서 모든 일이 끝난다면, 십자가가 하나님의 계획일 리 없다는 현대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들의 주장은 옳은 말이 될 것이다. 십자가 사역은 기껏해야 역사에서 일어난 한 부분적인 사건이거나, 최악의 경우 자기 자신은커녕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드리고 나서, 종의 날은 길어지고 종은 만족한다. 종은 자신의 몫이자 전리품으로 그의 씨들을 보상으로 받게 된다. 그 씨들은 메시아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사 10:12). 종이 인정받은 것은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켜 주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받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가 씨들을 볼 수 없게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그 씨들을 보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을 살림으로써 메시아는 자신을 위한 백성을 얻으실 것이며 그 후에 그들의 수가 점점 더 증가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궁극적으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부활을 가리킨다. 메시아가 그의 백성을 위해 죽으셨다면, 메시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야만 자신의 수고의 결실을 보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활은 이사야가 52장 13절부터 53장 12절까지 계속 설명해 왔던 내용, 즉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화목 제물로서 메시아의 죽음을 계획하셨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칭하기 위해 이 대속제물을 받으셨다는 내용을 입증한다(롬 1:1-4; 4:22-25).코람 데오우리는 이사야 53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메시아는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셨다. 메시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완전하게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사야는 이 대속이 결코 단순히 잠재적인 구원의 가능성만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메시아의 대속이 선택된 자들의 영원한 구원을 실제로 이루었다고 말한다. 이는 영광스러운 진리이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의로움에 대해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Vindicated Sufferer번역: 차수정 (개혁된실천사)
QT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삶
2019-03-04
잠언 19장 1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성경의 윤리는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행위를 높이 평가한다. 예를 들어, 모세는 농부들에게 밭의 농작물을 남김없이 추수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두어 그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라고 명령했다(레 19:10). 선지자들도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거듭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전했다(사 3:13-15).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이 가난한 이들을 관대하게 대하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곤란에 처한 자들은 누군가의 관대한 행위를 되갚을 여력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 더욱이 그런 행위를 되갚아 줄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다시 말해,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과 같다. 오늘의 본문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한 주석학자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의 생계 유지는 그분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창 1:26-27).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시 140:12). 그분은 어려운 자들에게 베푸는 것이 곧 자기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궁핍한 자들에게 각별한 애착을 기울이었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행위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베푼 것을 되갚아 주실 것이고, 장차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보상을 허락하실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자선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다. 구원은 오직 구원자이신 주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선을 행하는 자에게 보상을 내려 주신다.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뿐, 그릇된 자만이나 다른 세상적 이익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올바른 동기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코람 데오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행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가난한 자들이 기본적인 생필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 땅의 빈곤 해결에 손을 내민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적절하게 보살피는 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가난을 겪는 이유가 다양한 것처럼,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물질적인 부족과 영적인 빈곤에서 모두 벗어나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출처: www.ligonier.org원제: Lending to the Lord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세상의 구속
2019-02-28
스바냐 3장 9절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하나님의 날이 성취할 최종 목표는 그분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들의 멸망이 아니다. 죽음과 재앙의 다른 편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에서 흔히 드러나는 주제이다(레 26장; 사 11장; 53장; 요 10:1-18). 스바냐는 이 생명이 세상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약속한다. 게다가 이 생명은 유대인과 이방인,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구분을 뒤집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 본문은 세상 사람들이 합심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드신 바벨의 이야기를 반영한다(창 11:1-9). 언어는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경계 중의 하나로서, 이 경계는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이 바벨에서 내리신 언어의 변화 때문에 발생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에 그분은 세상 모든 인간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 문제는 없어지고, 모든 족속과 방언의 온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습 3:9). 또한 성경은 그 날에는 바벨의 저주와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언급한다. 오랜 옛날 인류가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자 하나님이 그들을 온 지구상에 흩으셨지만, 그분은 자신을 경배하는 모든 이들을 한 곳(하나님 나라)으로 이끄셔서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실 것이다(습 3:10).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이 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살전 1:10).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날에 받을 영원한 생명을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고 약속 받았기 때문에 또한 기뻐할 수 있다. 우리가 행위대로 판단받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롬 2:6-11),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치를 주려 하심이 아니다. 이는 순종을 더럽히는 우리 마음속의 아주 작은 교만과 그밖의 악까지 제거하기 위함이다(습 3:11).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을 영화롭게 하실 때, 우리는 정결과 겸손을 얻게 된다.코람데오그리스도를 신뢰하면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나라로 이끄시고 영화롭게 하실 때, 비로소 죄는 완전히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죄에 넘어가지 않도록 역사하신다. 이것이 복음의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언젠가 죄의 존재 자체를 제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날마다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Redemption of the World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지혜의 본질
2019-02-27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지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문화는 세상에 없다. 물론 지혜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실제로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사회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금언과 잠언을 사랑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더욱이 지혜를 원하는 인간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철학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철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philosophy'는 '사랑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필레오'와 '지혜'를 뜻하는 헬라어 명사 '소피아'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단순히 지식을 늘리거나 논쟁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고대 헬라인을 비롯해 후대의 서양 철학자들이 철학을 연구한 목적은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실재와 세상에서 올바르게 사는 데 필요한 행위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해서였다.성경도 지혜를 중요하게 여긴다(잠 23:23). 그러나 성경은 고대 헬라 사상가들과는 사뭇 다른 각도에서 지혜에 접근한다. 고대 헬라 사상가들은 지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매우 뒤늦게 유일한 신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했던 신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이 단지 지혜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오늘의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 9:10)라고 말씀한다.여기서 말하는 '경외'는 원수에 대한 두려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경외'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런 경외심은 공경심과 숭앙심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분이 계시하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지혜로우면서 동시에 무지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떻게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지혜와 지식이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지식이 없으면 지혜도 존재할 수 없다.코람 데오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에 지혜롭게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 더 많이 알수록 지혜의 토대가 우리의 삶 속에서 더욱 공고해지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에 따라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이 배가된다. 우리는 성경 읽기, 설교, 말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지혜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성경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What Is Wisdom?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QT 지혜 문학의 목적
2019-02-26
시편 1장 6절"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구약성경 속 지혜 문학은 특별한 주제들을 강조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이다(잠 1:7). 이 경외심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창조주의 속성과 사역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구약성경의 지혜 문학이 가르치는 경외심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과 행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된다. 시편 1편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오늘의 본문은 축복에 대한 선언과 관련이 있다. 한 주석학자는 성경이 가르치는 축복은 우리가 힘써 얻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그렇게 될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상들을 섬겼던 그에게 주권적으로 주어졌다(수 24:1-2). 물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큰 축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시편 1편이 가르치는 순종은 행위로 공로를 세움으로써 축복을 얻으려는 노력이 아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써 우러나는 순종을 가리킨다.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한다(시 1:1-2).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죄를 피하려고 분투하는 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시간을 내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경건의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유익할지라도 시편이 말하는 묵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본문 말씀에서 말하는 묵상이란 온종일 하나님의 율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수 1:8). 하나님의 복된 종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묵상하며 그것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생각한다. 그런 식의 묵상이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순종의 열매가 맺히기 마련이다.하나님은 의인들의 길을 유심히 지켜보신다(시 1:6). 의인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은 지극한 관심을 기울여 그들을 지켜보신다. 또한 하나님은 무심코 지켜보기만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종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신다.코람 데오존 칼빈은 오늘의 본문을 이렇게 주석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할 때만 그분을 옳게 섬길 수 있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경건의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판단하지 말고 그분의 계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도덕법을 통해 알 수 있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The Purpose of Wisdom Literature번역: 조계광 (개혁된실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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