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칼럼_다 같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
우리는 이웃이 어떤 슬픔을 당할 때, 나와 내가 족만큼은 그런 일이 없기를 원합니다. 게다가 이웃의 슬픔이 그들의 무능 때문에 또는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는 비방자가 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나만은 안 당했다는 위안을 얻기도 하며 사이코패스 같은 희열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했던 예수님은 구름 위에 서서 인간을 향해 사랑한다고 말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기꺼이 아담의 죄로 타락한 이 슬픈 유배의 땅으로 오셨습니다. 같이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전쟁이 잦던 식민지 유대 땅에, 조롱받던 노동자의 아들로, 그러면서 여러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소시민의 장남으로 오셨습니다. 가난, 따돌림, 배신, 외로움, 고문, 죽음 등 인간의 슬픔을 똑같이 당했습니다.
데미안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남태평양 피지섬 나병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피고름 속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그 자신도 나병이 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썩어가는 환부를 보면 오히려 환하게 기도합니다.
“오! 주님, 저는 지금껏 기도할 때 저 나병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저 멀리 있는 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저들과 같은 종류의 슬픔을 걸머진 진정한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전염병을 실은 죽음의 흑암이 몰려왔다는 성경 속 애굽의 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둠 속의 또 다른 어둠이 아니라 그것을 밝히는 촛불입니다. 이때에 사랑의 불을 더욱 찬연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서로서로 피해가며 생활하고 있는 오늘날, 암으로 침대 생활을 하고 계신 한 할머니가 이런 쪽지를 써서 대문 앞에 놓았더군요.
“모아놓은 몇 푼의 용돈과 몇 장의 마스크입니다. 꼭 필요한 분이 가져가세요.”
작성자 : 이창훈 목사(목양침례교회, 작가)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