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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와플 QT_내 뱃속에는 똥만 들어 있어요
2022-06-18

주말칼럼_내 뱃속에는 똥만 들어 있어요

  

“목사님, 목사님”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데 다섯 살 로희가 조르르 달려와 안깁니다. 번쩍 들었다 내려놓으며 물었지요. “로희야, 잘 지냈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합니다. “네, 잘 지냈어요.”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벌리며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입니다. “목사님, 내 

동생이 이만큼 자랐어요.” 동생이 생긴 지 8주가 된 우리 로희, 신기하고 하도 좋아 동생 자라는 걸 재보는 모양입니다.


벌린 손가락을 들고 서 있는 로희에게 물었습니다. “로희야, 그런데 로희 동생은 어디 있는데?” 이 녀석, 언제나처럼 대답에 막힘이 없습니다. “내 동생이요? 엄마 뱃속에 있지요?” 장난기가 발동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로희 동생, 로희 그대로 있는 거 아니었어?” 헛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내 뱃속에는 똥만 들어 있어요.” 그러며 한 손으로 제 배를 문지릅니다.


둘러선 어른들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너무 리얼하잖아요.^^ 장난기를 그치지 못한 목사가 다시 말을 걸었답니다. “로희야, 로희 뱃속에는 똥만 들어 있어?” “네, 똥만 들어 있어요. 아기는 없고요.” “그렇구나! 로희 뱃속에는 똥이 들어 있구나.” 아, 거기서 그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로희야, 목사님은 뱃속에 똥이 없어.” 대뜸 시크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뱃속에도 똥만 들어 있어요.”


다시 한번 크게 웃었지요. 놀려 주려다 제대로 한 방을 먹었습니다. ‘목사님은 똥이 없다’는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겁니다. “아니야, 목사님 뱃속에는 정말 똥이 없어”라거나 “목사님은 거룩한 사람이거든” 하는 말이 도통 소용이 없습니다. 다섯 살 먹은 아이도 알 건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제 뱃속에 똥이 들어 있다는 걸, 그게 제 뱃속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목사 뱃속에도 똥 들었다는 걸.


자기 뱃속에 똥 든 걸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루 한 번 우르르 쾅쾅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죽비처럼 깨우쳐 주는 데, 어떻게 그걸 모르고 살 수 있을까요. 모르는 게 아니라 애써 잊고 살거나, 더러는 ‘척’ 하며 살뿐입니다. ‘나는 뱃속에 똥 들지 않은 거룩한 사람이라’는 말에 누가 고개를 끄덕일까요. 헛소리에는 매가 약이라는 데, 다섯 살 로희 한마디 말이 몽둥이가 되어 두들기는 거지요. 


자기 뱃속에 똥 들었다는 걸 제대로 알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성전을 향해 다가갔다지요. 그러다 문득 가던 걸음을 멈추었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어서, 뱃속에 똥 든 내가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겠노라’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저만치 멀리 서서 다만 제 손으로 쿵쿵 가슴을 치더랍니다. 흐르는 탄식, 애타는 마음으로 아뢰었답니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누가복음 18장 13절).”


자기 뱃속에 똥 든 걸 감추고 사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성전을 행해 다가갔다지요. 성전을 향한 걸음에 거침이 없었답니다. ‘나는 뱃속에 똥 든 저 사람과 다르다’라고 ‘그래서 참 감사하다’라고 ‘나는 금식과 십일조를 어긴 적 없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자랑처럼 떠들어 댔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자기 뱃속에는 똥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날 아침에는 화장실 쿠린내를 맡지 않았던 걸까요. 


겉보기에도 쿠린내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뱃속에 똥이 들었다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람이지요. 겉보기에는 쿠린내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마 그 사람 뱃속에 똥이 들었을까, 상상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겉보기에 깜박 속아 넘어가는 법이 없으십니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뱃속에 똥 들기는 마찬가지라는 걸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로희처럼 말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로 알려진 누가복음 18장 말씀이 그 이야기입니다. 비유 끝에 예수님께서 이야기를 이렇게 맺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이 세무원이 저 바리새파 사람보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누가복음 18장 14절).” 내 뱃속에 똥 들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작성자 : 이창순 목사(서부침례교회)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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