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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기도를 배우다
by Megan & Jared Kennedy
2018-12-28
기도는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에 속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런 어려움을 알기에 나는 이 글에서 기도와 관련하여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과 수시로 기도할 수 있는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세심하신 하나님남편과 나는 주일 아침에 서로 다른 차를 운전해서 교회에 간다. 남편은 일찍 교회로 가서 다른 목사님들과 함께 기도로 예배를 준비한다. 그동안 나는 딸들을 힘겹게 끌고 아침 예배에 참석하러 간다.그런데 어느 주일은 지각을 했다. 우리가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아이들과 나는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건널목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제대로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주차 공간을 찾기 시작했는데, 마침 다른 차가 눈앞에서 출차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청 운이 좋았다고 외쳤고, 그 말을 하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이 그 하루의 아침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키고 계셨음을 말이다.우리 부부는 최근에 폴 밀러(Paul Miller)의 일상 기도(A Praying Life)를 읽었다. 거기서 저자는 예전에 읽었던 기도에 관한 한 책을 언급하는데, 그는 해당 책이 주차 자리를 허락해 달라는 식의 사소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내용만 빼면 매우 탁월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는 장로교 선교사였던 자신의 어머니 로즈 메리 밀러(Rose Marie Miller)가 그 내용에 관해 무슨 말을 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옮겼다.아침식사를 하려고 앉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주차 공간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주차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하나님이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에도 개입하신다는 로즈 메리 밀러의 확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 거짓말을 믿기 때문에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집안 청소, 아이들 등교시키기, 그리고 주차 공간 찾기 같은 일상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한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한다.하지만 성경은 거룩한 영역과 일상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나누는 일을 경계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실제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은 일상생활에 대하여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 시편 104편에서 시인은 이런 생각에 대해 확신을 준다. 그는 하나님이 이 땅의 작은 일까지 다 관여하신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딸들이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면 부모로서는 너무 힘들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밤 9시가 되면 딸들이 모두 잠에 들어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저녁만큼은 마땅히 나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잘 아신다.사실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잠들기 무서워하는 막내딸을 내게 주셨다. 아이를 재우고 방에 돌아와 TV를 시청하려고 할 때, 아이가 방문을 두드리며 무서우니 잠을 잘 자게 해 달라고 괴물이 안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기를 조를 때, 부모라면 그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나는 한때 육아를 하면서도 축구 시청 중에 광고가 나오면 화를 불끈 내고는 했다. 나는 그 정도로 방해받는 일을 싫어했던 사람이다.그러나 방해받는 상황은 나의 일상이자 현실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그 시간에 하던 일을 멈췄다. 그리고 딸을 위해 기도했고, 그 아이를 끌어안은 후 다시 잠자리에 눕혔다. 어떤 때는 여러 차례 다시 눕히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런 시간이 불만스럽기보다 기도에 대해 배우는 좋은 기회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예수님은 요한복음 14:13-14에서 무엇이든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말하자면, 어린아이와 같이 우리는 하늘 아버지한테 달려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마태복음 7:7-12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고 또한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어떻게 기도하는가?하나님은 모든 일에 신경을 쓰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일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매트 챈들러(Matt Chandler)는 부모가 자녀와 복음중심의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꾸준히 이야기한다.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을 지렛대 삼아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기도를 배우도록 이끌 수 있을까?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1. 기쁠 때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표현하라고 가르치라.우리 가정은 식사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 시간을 빌어 최근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아이들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강아지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한다.아이들은 하나님께 구체적이고 단순하게 감사를 드린다. 그들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하심, 그 자체를 찬양하는 일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밤 나누는 성경 이야기의 주제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라고 가르쳤다.2. 잘못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라.내가 어렸을 때 잘못을 하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퇴근한 후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분에게 말씀드리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이 간단한 습관을 통해 기도하는 일과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행동을 서로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아이들은 혼이 날 때 감정에 압도되어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아이들은 로마서 7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엄마는 쿠키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지만, 내 마음은 쿠키를 원해요!” 이때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일의 모범을 보이고, 성령님께 그 죄에 대한 욕구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을 할 수 있도록 내게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주세요.”우리가 아이들한테 잘못을 했을 때도 비슷하게 기도할 수 있다. 가령, 우리가 아이들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쏟아 냈을 때, 시간을 갖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백하고 그 아이들에게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3.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가르치라.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아이들이나 우리의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잠시 자리에 멈춰서 그 순간의 감정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 감정이 밤에 나오는 괴물에 대한 무서움일 수도 있고, 주차 공간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다.꼭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아니더라도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도움이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밤마다 우리 가정은 마르틴 루터가 밤에 드리던 기도문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 함께 기도한다.하나님, 우리 딸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오늘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커가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훗날에 경건한 남편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오늘밤에 사탄이 교활한 계획으로 방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세요. 아멘.경건한 배우자에 대한 부분은 루터의 기도에는 없었지만,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넣으신 내용이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또한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기도를 원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혹 아무 대답이 없더라도 매일 물어보는 것이다. 이 습관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은 하나님과 부모님 모두가 자신의 삶에 깊은 관심을 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주님은 우리 삶 전체에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에게 모든 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일은 이 단순한 확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원제: Lord, Teach Us-and Our Kids-to Pra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조현빈
가정
양육
세심하신하나님
폴밀러
일상생활
감사와찬양
회개
감정
기도
아이라고 예수님을 모를까
by Jaquelle Crowe
2018-12-26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노하시는 장면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예수님께 아이들이 다가오는 걸 막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장면도 그 하나다, 마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예수님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셨다. 아이들이 다가오도록 부르시고 두 팔을 벌려 맞아주셨다. 우리가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유아들과 미취학 연령의 아이들을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막 기본적인 현실을 알아 가고 있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성경 말씀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 아이들이 성경을 알고 좋아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면, 성경의 진리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방법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자레드 케네디(Jared Kennedy)의 ‘초급자를 위한 복음 이야기 성경’(The Beginner’s Gospel Story Bible)을 통해 어떻게 그런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아이들이 이해하는 표현이 책에서 저자는 유아와 취학 전의 아이들을 독자층으로 삼아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313쪽에 이르는 아름다운 장면들로 묘사해 놓았다. 그는 이 작업을 ‘약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진행해 나간다.여기서 그는 “아이들은 약속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지요”라고 설명한다. 가령, 엄마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고 약속했는데 마트가 문을 닫아 버렸을 때 아이들은 약속이 좌절되는 실망감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육신의 부모와는 달리,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약속을 지키십니다(민 23:19). 그리고 그분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방법은 그 누가 상상할 수 있는 방법보다 더욱 놀랍지요.”그렇게 시작되는 이 성경은 창조부터 재림까지 구속의 역사를 추적한다. 그리고 구약성경 이야기에 대해서는 ‘세워진 약속’(Promises Made), 신약성경 이야기에 대해서는 ‘지켜진 약속’(Promises Kept)이라고 각각 이름을 붙인다. 각 이야기는 4-6쪽 분량이며, 기억해야 할 핵심 진리와 토론할 수 있는 적용 질문을 하나 씩 담고 있다. 이렇듯 가정 예배나 주일학교 예배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되었다.트리시 마호니(Trish Mahoney)가 그린 삽화는 선이 굵고 색이 다양하지만, 톤이 단순하여 아이들에게 자극적이지 않다. 셈하기, 반의어, 패턴과 모양 및 대상물 인식하기 등 교육적인 요소도 많이 들어 있다.아이들이 이해하는 신학이 성경은 어린 독자층의 수준을 배려하면서 동시에 신학적 측면까지 놓치지 않는 부분이 큰 장점이다.요셉의 이야기를 예로 살펴보자. 요셉의 생애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저자는 “이것이 좋은 일인가요? 아니지요”라는 후렴구를 넣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말이다.“요셉의 형들은 화를 내며 그를 질투했습니다. 이것이 좋은 일인가요? 아니지요.”“형들은 그의 외투를 벗기고 그를 구덩이 던졌습니다. 이것이 좋은 일인가요? 아니지요.”“그는 상인에게 팔려 이집트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좋은 일인가요? 아니지요.”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셉에게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이 늘 요셉과 함께하셨어요.” 그러면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좋았나요? 그렇습니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도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좋았습니다”라는 새로운 후렴구를 사용한다.이와 같이 저자는 짧은 문장과 그림을 사용하여 3세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통과 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한다. 그는 어려운 교리를 피하지 않고 눈높이에 맞는 방식으로 그 내용을 다룬다.그는 또한 성벽을 재건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느헤미야나 구덩이 속에 던져진 예레미야 같이 흔히 어린이 성경에는 들어가기 쉽지 않은 내용까지 세심하게 포함시켰다.그러면서 그는 모든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궁극적으로 성취된다는 점을 가리킨다. 가령, 예수님의 완벽한 순종, 희생적 죽음, 부활, 중보, 용서, 사랑, 신실하심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그 제목과 같이 참으로 복음적이다.아이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지금까지 예를 들어 언급한 어린이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곧 아이들도 예수님에 관하여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저자가 “예수님은 가장 어리고 작은 아이들도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원하신다”라고 쓴 것처럼, 우리는 아이들이 예수님께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들이 이해하고 주목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이 성경이 보여 준 방법처럼, 우리도 단순한 문장과 어휘를 사용하고, 반복을 통해 개념을 강화하며, 수시로 질문을 하고, 모든 이야기에서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이해해야 하는 복음의 기초를 세워 줄 수 있다. 이 신앙의 기초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원제: Toddlers Are Not Too Young for Jesu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정은심
가정
양육
신앙의기초
자레드케네디
세워진약속
지켜진약속
트리시마호니
예수님
하나님, 아이를 갖기 원해요
by Michael McAfee
2018-12-21
5년 전, 우리 부부는 나의 25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평소에는 방문이 어려웠던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풍성한 음식과 함께 지난 25년 동안 내 삶에 있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두 사람 앞에 앞으로 어떤 기쁜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하며 희망에 찬 대화를 이어갔다.아내는 아이를 갖기 원한다고 말했고, 해외 입양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나이가 문제였다. 입양을 위한 최소 연령이 25세였는데 그 당시 아내는 25살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그녀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동안 우리 교회가 우간다의 고아원과 자매결연을 맺도록 이끄신 일,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우리의 열정을 성장시켜 오신 과정에 대하여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입양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우선 40일 동안 기도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조바심을 참지 못했고, 심지어 그 이야기를 마친 바로 다음날 나는 입양 신청 서류를 준비했다.우리 부부가 그렇게 입양 절차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다. 그런데 우간다의 입양 정책은 수시로 변했고, 여러 번의 지연을 경험해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입양이 무산되는 결과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생각으로 절망하지 않았고, 다른 많은 부부들처럼 임신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기에 대한 기대감은 곧 임신이 되지 않는 혼란으로 변하였다. 일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임신에 실패했고, 어느 날 로렌(Lauren)은 어두운 목소리로 검사 결과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생물학적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임의 고통불임이라는 현실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끝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혹시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해결할 방법은 정말 없을까?실체가 없는 상실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작년에 할머니가 주님 곁으로 가셨을 때, 나와 가족들은 그 상실감에 대해 서로 애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대한 상실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앞날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가족에 대한 꿈과 자녀에 대한 바람은 그렇게 잡을 수 없는 소원이 되어 갔다.가깝게 지내던 이웃 부부들은 거의 다 임신에 성공했고, 우리는 더욱 외로움을 느꼈다. 아니, 고립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불임의 확률이 무려 다섯 쌍 중 한 쌍이라는 것은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아마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우리는 불임의 시기가 있었음에도 지금은 예쁜 아이를 갖게 된 여러 부부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적인 소식에 무척이나 고무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을 때에, 아무도 불임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게다가 종종 모임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사람들이 마치 불임이 극소수의 별난 사람에게만 벌어지는 일인 듯 우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드러내기 힘든 수치심을 느꼈고, 불임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에 두려움마저 갖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부부를 위하여 어떠한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불임의 아픔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른 부부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희망의 방향우리의 삶을 공개한 이후, 나와 아내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의 다독임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비단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통해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그분이 베푸시는 능력에 희망을 둔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의 필요를 알고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기를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채워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때에 우리도 아이를 갖거나 입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기쁨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되어야 한다. 자녀보다 나은 하나님 말이다. 창조의 목적대로 주님을 찬양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자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녀보다 나은 하나님 말이다. 로렌과 나는 “예수님이 없는 삶 보다 아이가 없는 삶이 훨씬 나을 거야”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비록 우리가 꿈꾸는 풍성한 가정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는 늘 최고의 선이다. 우리는 여전히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반면, 우리에게 자녀보다 더 나은 소망이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 소망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기다림이며, 어떠한 상황을 겪게 되더라도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는 반석과 같은 확신이다. 하나님은 그 행하시는 일로 인해 선한 것이 아니라 본래 선하시다. 시편 107편 1절 말씀대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채워지지 않는 갈망이나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 혹은 가족을 볼 때, 나는 이전보다 세심한 말로 기도한다. 그들의 고통이 덜어지고 그 갈망이 차고 넘치기를 바라지만, 이는 그들을 향한 내 기도의 목적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바람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겠지만,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을 잊지 않을 것이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로렌과 내게 있어 아이를 안아볼 수 없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 우리는 가족들과 출산의 기쁨을 나누거나, 분만을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일을 겪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십대 자녀로 인해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거나, 그들의 방황 앞에 고뇌하는 일을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탄절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노년을 보낼지도 모르고, 딸을 결혼시키거나 아들에게 결혼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자녀를 향한 우리의 바람은 마지막까지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선하다. 왜냐하면 매일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선한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그분은 선하시다. 그리고 선을 행하신다. 비록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선이 아닐지라도 말이다.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원제: God, Why Won’t You Fulfill Our Desire for Children?번역: 주영식
가정
결혼
아이
불임의고통
희망의방향
소망
갈망
고통
하나님의계획
선하심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세 가지 방법
by Tim Keller
2018-12-19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지 못한 이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자녀에게 신앙이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 세대가 신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자녀 세대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일까? 보통은 둘 다 맞는 말이다. 앞선 세대가 바른 신앙을 전달하는 일에 실패하면 종종 다음 세대에서 그 문제가 증폭되기 마련인데, 가장 큰 폐해는 우리 자녀들이 명목상의 크리스천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부모 세대의 신앙적 헌신이 세대를 거치면서 안주로 바뀌고, 안주는 다시 시간을 거쳐 세상과의 타협으로 변질된다.초기 뉴잉글랜드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땅의 역사 중 1620년대부터 1640년대를 대표하는 초창기 정착민들은 대부분 영적 생명력이 살아 있는 성경 중심의 크리스천이었다. 하지만 1662년 즈음,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와 손주 중 많은 수가 이름뿐인 기독교인, 즉 명목상의 크리스천이 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결국 유아기 때 부모에 의해서 세례를 받았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입교하지 않는 많은 젊은 세대를 위해 ‘반쪽짜리 언약’(Halfway Covenant)을 제정했고,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그들의 투표권을 인정해 주었다.우리는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 그리고 6장 20절부터 25절의 말씀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이 본문은 우리가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 준다.1. 하나님을 가슴 깊이 사랑하라우리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신 6:6). 그리고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라는 뜻은 위선자나 모순을 일삼는 사람처럼 마음과 행동을 따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아무런 감동 없이 기계적으로 섬기거나 부분적으로만 사랑해서도 안 됨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청년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에 민감하다. 이는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의 신앙으로부터 돌아서게 된 첫 번째 이유다.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던 청년들은 교회가 인종차별 정책에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모순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그로 인해 그들은 기독교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말았다. 또한 그들은 시민권 투쟁에 반대하는 위선적인 기성 교회를 바라보며 결국 하나님을 떠나갔다.2.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라우리는 복음이 삶 속에서 행위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복음은 결코 학문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6장 7절은 자녀들에게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말씀 강론을 진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앉았을 때에든지 [중략]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그들을 이끌라는 의미이다.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일련의 강연이나 수업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그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자녀들이 삶 속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할 때, 복음에 가치를 두며 나아가도록 그들에게 영적 지혜를 보여 주어야 한다.3. 삶을 통해 증언하라 신명기 6장 20-25절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나의 믿음의 행위가 세밀히 연결되어야 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변화, 즉 그분이 우리로 하여금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신 사실이 나의 신앙 생활을 어떻게 선하게 바꾸어 가고 있는지 증거해야 한다. “우리가 …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 우리를 … 인도하여 내셨나니.”스스로의 신앙과 나의 율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알려 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우리는 자녀들에게 본이 될 수 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 겪는 성장통에 대해 그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회개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아름답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을 증언할 때 반드시 격식이나 공식적인 표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요약하자면, 우리는 앞선 세대로서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현실적인 선택 앞에서 영적으로 지혜로워야 하며, 그 믿음 생활이 주님과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지난 역사를 살펴볼 때, 세대를 이어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제도와 공식적인 가르침에 의지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교리를 충실히 가르친다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그들이 교회에 참석하도록 이끌기만 하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하지만 젊은 세대는 단지 앞선 이들의 본이 되지 않는 믿음 생활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문제 앞에서 보여 주는 모순, 또 영적 변화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권위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경험하면서 믿음의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원제: 3 Ways to Pass on Faith to the Next Generation번역: 이주일
가정
양육
신앙전수
사랑하라
실천하라
증언하라
진리
반쪽짜리언약
Covenant
마음의 평안을 확신하지 말라
by Matt Rogers
2018-12-17
사라(Sarah)는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이다. 대학 선택을 앞두고 네 개의 대학 캠퍼스를 돌아본 후에, 그녀는 한 학교로 마음을 정했다. 부모님이 그 선택의 이유를 물었을 때, 그녀는 “그냥 마음이 편안해서요”라고 대답했다. 또 벤처 사업을 구상 중인 한 사업가는 “그 사업이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업을 진행하는 건 옳은 선택입니다”라고 말했다.우리가 ‘평안’이라는 내적 감각을 의사 결정의 궁극적인 이유로 내세울 때, 그 결정에 대해 아무도 당신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당신은 어쩌면 이 심리적 평화를 마치 하나님이 주시는 일종의 긍정적 사인(sign)처럼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이 틀렸거나, 혹은 당신이 느끼는 그 평안이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결정해야 하는 일이 대학 선택이나 사업 추진처럼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사안인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에는 심리적 안정을 따라가는 일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그러한 접근을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예를 들어, 교회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목회자의 설교에서 복음의 선포를 들을 수 없고, 교회 행사의 많은 부분에서 거룩함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만약 다른 이유로 당신이 그 교회에 편안을 느낀다면?또는 배우자와 자주 논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평화롭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속단한다면?혹은 동성애가 당신에게 심적 안정을 주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관계라고 판단한다면?이러한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바라시지 않을까?’, ‘심리적 평안이 확실하게 주어진다면 이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신호가 아닐까?’ 설마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을 느끼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일까? 그것은 분명 아니다. 고장난 나침반불행하게도 우리의 마음속 나침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망가졌다.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항상 거짓되고 부패한 상태로 있게 된다(렘 17:9). 이러한 타락한 본성은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에 평안을 안겨 준다. 죄를 짓는 것은 곧 부패한 본성과 일치하는 행위이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 때 내적 평화의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참된 복음을 알게 하신다면,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놀랍도록 거듭난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그분을 찬양하고자 하는 새로운 심령이 내면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죄를 짓게 되었을 때, 우리의 심령은 그 행위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게 된다. 결국 죄는 점점 더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내적인 평화는 사라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당신이 크리스천이라고 확신한다면, 과연 스스로의 내적 평화가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과연 그 평안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 때문이다.1. 어쩌면 우리는 아직 거듭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거룩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아직 참된 회심이나 거듭남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특히 거듭남은 신앙생활의 연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신이 여전히 죄에 빠져 영적 죽음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마음은 의를 바라볼 수가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느끼는 평안은 그저 당신이 거듭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표시일 뿐이다. 2. 우리는 언제든지 죄의 유혹에 넘어질 수 있다거듭난 크리스천이라면, 과거에는 기쁨과 평안을 안겨 주던 죄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과거에는 죄를 지으면서 쾌락을 느꼈겠지만 회심한 크리스천이라면 이제 쓰라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그저 순간적인 불안을 느끼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깊은 뉘우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죄에 대하여 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거듭남을 경험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합리화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자. 처음에는 그 마음으로 죄를 명백하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심의 감동이 사라지면서 점차 내적 불안감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심지어 자신의 죄를 정당한 것처럼 생각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특히나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들 정도로 영혼이 메말라 버렸다면, 크리스천이라 해도 이전보다 쉽게 죄를 정당화할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우리는 무언가 선택하기에 앞서 자신의 감정보다 더 신뢰할 만한 다른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은 '내 마음이 평화로운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1.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만약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성경이 그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면, 당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성경은 늘 옳으며 변치 않는 진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만약 죄악을 즐기려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윤리적인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당신은 성경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속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이 보고, 느끼고, 소유하는 그 모든 감각보다 언제나 앞서야만 한다. 예를 들어, 성경은 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설령 이와 관련된 죄가 당신에게 내적 평화를 안겨 준다고 할지라도, 그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개인적 욕망을 잠재우며, 죄를 회개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크리스천의 이웃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원수 같은 이웃일지라도 그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또 사랑해야 한다. 그러한 행위가 비록 내게 심리적 피로와 고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인내해야 한다. 2.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조언하는가크리스천 공동체는 성경 다음으로 우리의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인간이 그 연약함 때문에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자 쉽게 성경을 왜곡하려 하듯이, 크리스천 공동체에도 당신의 감정적 선택을 옹호하고 부추기는 몇몇의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감정적 평안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써 기쁨, 평안, 만족을 찾도록 배워가는 곳이다. 교회는 크리스천들이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죄에서 벗어나도록 함께 힘써 나가는 곳이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나의 연약함과 죄까지도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다독여 줄 믿음의 지체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자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라.또한 신앙적으로 보다 성숙한 지체가 나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조언할 때에, 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당신의 마음가짐도 역시 중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마음에 평안을 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올바른 질서, 올바른 평안성경과 교회 공동체는 내면의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당신을 이끌 것이다. 성경이 우리의 선택을 격려하고 (또는 적어도 금지하지 않고), 동시에 믿음의 동역자들이 찬성하는 말을 보내온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다. '나는 이 결정에 평안을 느끼는가?' 혹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도 좋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이 결정이 옳다고 말씀해 주시는가?'중요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질서다. 만약 당신이 내적 평안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면, 분명 당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성경을 왜곡할 것이고 또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찾아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서 성숙한 지체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라. 선택의 질서를 그렇게 바로잡는다면, 분명 당신은 내적 평안과 옳은 결정이 한 곳에서 일치하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형성할 여러 결정 사항들을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원제: Don't Trust the Peace in Your Heart번역: 이주일
생활
감정
평안
선택
내적
거듭남
거룩
질서
나침반
성령님
기독교적 양육
by Elyse Fitzpatrick
2018-12-13
앨리(Allie)는 괴로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녀는 목사 아들의 뺨을 때려서 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아이의 형을 때렸기 때문이다. 앨리의 엄마 역시 창피하고 실망스러웠다. 앨리는 자신에게 화나고 수치스럽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대화를 하고자 방으로 들어섰을 때, 앨리는 울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친구들과 놀 자격이 없어!”이것이 당신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들에게 다른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때에는 조금 다른 차원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무슨 수로 이 아이의 행동을 고칠 수 있을까?”에서 “내가 자녀를 바로잡는 방식이 과연 복음적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신약성경에는 양육에 관한 두 가지 명령이 나온다. 그중 하나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이 구절을 주제로 삼은 책들도 더러 있는데, 아버지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방법 또는 적절히 징계하거나 교육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표현인 ‘주님의’라는 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울의 초기 독자들은 아마 이 가르침에 무척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베소의 부모들은 헬라 철학자들의 징계와 교훈으로 자녀를 훈육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 앞에서 크리스천 부모들은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먼저, ‘주님의’ 양육법은 은혜에 의존한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했기 때문에(욘 2:9), 우리가 자녀의 마음을 돌려 주님께 순종하도록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크리스천 부모들은 안달하거나, 조종하려 하거나, 심히 염려하거나, 압박을 가하기 보다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기뻐하고 기다려야 한다.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내 힘으로 하려고 기를 쓰지 말라. 또한 기독교적인 양육은 솔직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논한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그 누구보다 더 의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자녀보다 의롭다고 말할 수 없음도 물론이다. 혹시 '왜 우리 아이는 저럴까'라고 생각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 아이가 죄인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가 자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죄와 싸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즉, 부모 대 자녀들의 대결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들 그리고 죄와 불신의 대결이다. 크리스천 부모는 자녀의 삶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게 하고, 받은 은혜에 반응하는 법을 가르치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율법이 그들을 선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율법을 내세워 자녀들에게 선을 기대한다면, 그 마음을 접어야 할 것이다. 선한 것은 ‘그리스도의 의’뿐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양육에 있어서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 당신의 교육법이 진정으로 기독교적이며 주님의 말씀에 입각한 방법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도에 의지해야 한다. 기독교적인 교육 방법은 복음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삶이 복음과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크리스천 부모는 자녀를 율법적으로 조종하려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보혈과 의에 의존하여 양육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적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은혜롭게, 그러나 단호하게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을 선한 길로 이끌고 계심을 알도록 도울 수 있다.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꾸짖기도 하며, 더불어 예수님에 대해 반드시 들려주어라. 이제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앨리는 “나는 밖에서 친구들과 같이 놀 자격이 없어”라고 소리치며 낙담했다. 이 외침에 대해 복음은 앨리의 엄마가 어떻게 반응하도록 가르칠까? 비록 앨리의 엄마가 먼저 복음을 떠올리지 않았지만, 주님은 앨리의 말을 통해 그 엄마의 마음을 녹이셨다. “네 말이 맞아, 앨리야. 너는 친구를 때렸기 때문에 함께 어울릴 자격이 없어. 하지만 엄마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에게 화를 많이 냈잖아. 엄마 역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어. 그렇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친절하고,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자비를 베푸셔. 앨리야, 자비가 뭔지 아니?”앨리는 고개를 저었다. “자비란 벌을 받아야 마땅한 네게 하나님이 사랑을 주시는 거야. 네가 아무리 착하게 행동해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것들을 하나님이 네게 가득 주시는 거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바로 그분의 아들이 우리 대신에 뺨을 맞으셨기 때문이란다. 예수님은 너와 내가 하나님의 심판 대신 자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셨어. 정말 좋으신 분이지?”“눈물이 나요.” 앨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그래,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엄마도 눈물이 나. 오늘밤에 엄마랑 손잡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기도를 마친 후에 앨리가 엄마를 안으며 말했다. “엄마, 나도 알겠어. 하나님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셔.”기독교적인 양육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을 자녀와 함께 나누는 것이 크리스천의 교육법이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Christian Parenting번역: 김태곤 (매일배움)
가정
양육
주님의교훈
주님의훈계
주님의양육법
은혜
성령님
죄인
그리스도의의
보혈과의
알츠하이머는 환자를 가두지만, 그리스도는 그 문을 여신다
by Louis Markos
2018-12-12
2010년 9월 15일, 나의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로 10여 년간의 긴 투병 끝에 병원에서 평화롭게 돌아가셨다. 그날은 할머니의 95세 생일을 한 주 앞둔 때였다. 슬픈 소식을 접하고 난 다음날, 나는 매주 그랬듯이 대학부 성경 공부를 인도했다. 그 학기에는 C. S. 루이스의 저서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를 다루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루이스가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해 묵상한 내용을 나누었다.그때 성령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타락한 인간의 독특한 상태에 관해 내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고자 했다. 그래서 루이스의 묵상과 할머니의 죽음 사이에 공통적으로 자리한 한 가지 교훈을 깨닫게 하셨다. 그 교훈은 우리의 정신이 혹 흐려지더라도, 살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겉모습은 그대로 지속된다는 것이었다.이 교훈은 서서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지독한 병인 알츠하이머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알츠하이머의 제한된 도적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알츠하이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무서운 질병이 우리의 영혼을 훔쳐갈 수 있으며 더불어 인격을 말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을 창조하신 분이 우리가 괴로운 잠에서 깨어나도록 다시 부르실 때까지, 알츠하이머는 우리를 한동안 가두어 둘 능력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때 우리의 정신은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좀 먹거나 녹슬지 않는 심층으로 내려가 있을 뿐이다. 거기는 도적이 침입하여 내 영혼을 도둑질할 수 없는 곳이다.차 사고로 인해 몸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마라톤 선수를 생각해 보라. 그의 상한 몸은 이전에 달리기를 하면서 누리던 기쁨을 표현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말살시킬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다리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마라톤 선수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혹은 다운증후군이나 심한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생각해 보라. 혹 세상은 그러한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교사들은 인내와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다르게 보는 안목을 갖고 있다. 이 아이들은 우리와 동등하게 온전한 인격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고유한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나타나기에,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만 겨우 보인다.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바로 전 주에 말도 거의 하실 수 없고, 음식도 먹여 드려야 하는 상태였지만, 그 인성의 흔적은 여전히 드러났다.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길 때마다, 그녀는 아주 작게 목소리로 따뜻한 말을 건네곤 했다. 할머니는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으셨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시다.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나를 포함한 많은 크리스천들은 알츠하이머 뿐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훔치고 인격을 변화시키는 정신 질환을 두려워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때, 그 영접하는 활동은 정신이 담당하겠지. 그렇다면 혹시 질병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기억을 상실하게 되면, 나의 구원도 취소되는 게 아닐까? 그때 과연 나는 안전할까?’이러한 추론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두 가지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다. 우선, 우리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업적)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혜)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수용해야 하지만, 구원은 우리를 구원하는 일방적인 은혜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행동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 영접은 어떤 은혜의 교리에 동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주인 되심에 마음을 열 때 이루어진다. 우리는 마치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마음을 열듯 하나님께 마음을 연다. 그리고 그 깊은 마음은 조현병이나 간질 또는 알츠하이머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보다 더 깊은 데에 자리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알츠하이머에 대해 분노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다. 그 질병이 할머니의 기억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도 슬프고 두려운 일인 동시에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하더라도, 절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미 할머니에게는 그때가 왔지만) 몸과 마음의 모든 흠과 상함이 사라지는 때가 되면, 주님의 백성들은 온전한 사람이 되어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질병으로 쇠약해진 자녀의 인생을 영원한 그분의 나라에서 다시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원제: Alzheimer’s Locks Up Its Victims, but Christ Holds the Key번역: 정은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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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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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 이렇게 하라
by Joel R. Beeke
2018-12-10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는 자녀 양육: 은혜 언약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법’(Parenting By God's Promises: How to Raise Children in the Covenant of Grace)의 저자, 조엘 비키(Joel Beeke) 목사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질문: 자녀 양육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강의하신지 얼마나 되었나요? 대답: 저는 목회 현장에서 30년 동안 부모들을 상담해왔습니다. 자녀 양육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관련 글을 읽고 설교를 시작한지는 20년이 넘었어요. 또 우리 교회의 자녀 양육반에서 4년째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죠. 질문: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 다른 양육 관련 도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답: 우선 이 책은 은혜 언약 안에서 크리스천 부모와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학적으로 강조합니다. 동시에 개혁주의적인 기독교 양육 방식을 제공하지요.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루는 신앙 서적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크리스천 부모들이 그리스도의 3중직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주는 양육서는 아직 없는 형편이죠. 그리스도의 3중직이란 ‘가르치는 선지자’와 ‘중재하는 제사장’, 그리고 ‘인도하는 왕’의 역할을 말하는데, 자녀에 대한 중보자인 부모에게 이러한 역할들은 무척 중요합니다. 또한 이 책은 일상적인 양육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이 역시 다른 기독교 지침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입니다. 예를 들면, 경청하는 태도, 언어의 순화 또는 형제자매간의 화목한 관계 등 대부분의 부모들이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공통으로 고민하는 문제들 말이죠. 특히 10대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친구 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대응하며, 분노와 같은 감정을 조절하도록 돕는 실질적인 기독교 양육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이 차별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질문: 왜 대부분의 양육 서적들이 부모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기 보다는 죄책감을 가져다 주는가요?대답: 그 서적들이 부모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제공하는 양육의 기본 원리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의무나 요구 사항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양육의 기본 원리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그리스도 안에서의 용서, 성령의 권능과 인도하심에 대한 약속, 은혜 언약의 축복 등이 있습니다.질문: 그렇다면 복음의 메시지는 부모의 삶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가요? 대답: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세 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부모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따라 자녀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둘째, 자녀들이 죄를 범할 때 부모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범죄한 자녀에게 등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와의 관계를 끊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셋째, 부모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은혜 안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복음 안에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성장을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들 중 하나는 우리 자녀를 주님의 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주님의 말씀대로 가르치는 것, 그것이 곧 부모 자신에게는 영적 훈련의 과정인 것이죠.질문: 목사님은 자녀 양육의 세 측면을 가정과 교회 및 학교의 삼각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자녀 양육에서 이 세 측면은 어떻게 서로를 뒷받침하는가요?대답: 자녀 양육의 주요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교회와 학교는 성경적인 믿음을 기초로 양육을 지원하는 기관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배운 성경의 진리들을 교회와 학교에서도 반복적으로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될 수 있습니다. 누적의 힘이죠. 그리고 그 결과로 잠언 22장 6절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질문: 목사님의 복음 지식이 세 자녀를 양육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대답: 첫째, 자녀들이 불순종하여 화를 내고 싶을 때, 제 자신이 그리스도를 실망시켜드린 데 비하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시듯이 저 역시 제 자녀들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복음이 다양한 약속과 부르심과 격려로 하나님의 자녀인 저를 붙들어 주듯이, 저도 자녀들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위로하고 격려해주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늘 “사랑해”라고 제게 말씀하시듯이, 저도 자녀들에게 늘 “사랑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가 저를 그분의 뜻에 더 부합하도록 제 삶에서 계속해서 일하시듯이, 저도 기도하면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꾸짖고, 때로는 야단도 치고, 도와주고, 격려하는 일을 끈기 있게 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임을 기억하며 자녀들 앞에서 믿음의 본이 되고자 힘썼습니다. 질문: 곁길로 빠져 경건한 가르침을 거부하는 자녀들을 둔 부모가 있다면, 어떻게 격려해 주시겠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신뢰하고, 그분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믿으며, 또한 그 자녀를 위해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또한 당황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이들은, 특히 10대 중반까지는 반항하는 단계를 거칠 수도 있습니다. 한두 해 동안 깊이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길을 더 깊이 확신한 후에 돌아오는 자녀들도 있어요.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내할 수 있는 지혜와 은혜를 위해, 그리고 자녀의 회심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출처: www.ligonier.org원제: In Awe of God’s Glory: An Interview with Joel Beeke번역: 김태곤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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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전이 필요한 이유
by Jaquelle Crowe
2018-12-07
나의 아버지는 오랜 역사와 근사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신학교에 다니셨다. 내가 아홉 살 때인가,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 신학교 캠퍼스를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유독 한 건물이 다른 건물들보다 더 눈에 띄었는데, 바로 총장실이 있는 건물이었다.그 건물이 가장 크거나 화려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 건물 안의 가장 눈에 띄는 어떤 방 때문이었는데 바로 총장의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큰 개인용 도서관이었다.나는 조용히 그곳을 둘러보았다. 책이 정말 많았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고전들도 많았다. 수천 권의 낡은 책들과 빛 바랜 표지들이 보였다.그 신학교 총장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반드시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된 책, 즉 고전이었다.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로운 것만이 필요할까?때때로 교회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젊은이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새로운 앱(app), 새로운 성경 번역, 새로운 스타일, 또는 현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가르침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래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신실한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우리에게는 더 새롭고, 쿨하고, 빠르고, 예리한 것을 대신하여 역사적이고, 아름답고, 단순한 것이 필요하다.성장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통솔하며,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성숙한 선배 신앙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로 인해 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이 수 백명의 영적 부모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틴 루터, 조나단 에드워즈, 존 뉴턴, 패니 크로스비), 존 라일, 에이미 카마이클, 그리고 코리 텐 붐 같은 저자들이 여전히 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권면하고, 죄악을 깨우치고, 격려하고 있다.우리가 과거의 지혜로부터 배움을 얻지 않는다면, 그 손실은 막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된 문헌들은 어떤 적시성을 가지고 현대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과거의 다른 경험과 어휘를 가진 신앙 선배들이 오늘날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오래된 고전들이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주는 세 가지 유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1. 문화 속에서 진리를 지키는 법우리는 독특한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과거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로 똑같은 죄와 고통을 겪어 왔다. 또한 이 근본적인 문제는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우리의 오늘은 과거에 살던 신앙 선배들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이러한 이유로 존 라일의 책, ‘청년에게 전하는 글’(Thoughts for Young Men)은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진리를 위해 살고 싶어하는 젊은 남녀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예나 지금이나 삶을 대하는 유쾌하고도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2. 로맨스를 다루는 법우리의 고정 관념과 달리,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은 숭고하고 영적인 주제들만 다루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성적 순결, 로맨스, 결혼과 사랑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썼다.너무나 당연하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와 찰스 스펄전도 한때는 모두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들도 당신이 겪는 고민, 충동, 정서와 씨름하는 시기를 지나 왔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의 글은 당신의 경험에서 동떨어진 게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인생을 통해 경험한 지혜, 특별히 로맨스와 성적 순결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그가 어떻게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로부터 (가혹한 이별을 견뎌내는 과정을 포함하여) 거룩한 순결을 지향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고찰로 가득하다.3. 유혹과 싸우는 법우리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유혹을 다루는 방법에 관해 수많은 글들을 남겼다.죄와 싸우는 일에서부터 거룩을 추구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그런 문제들을 놓고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나이든 신앙의 멘토만이 줄 수 있는 지혜를 오늘날의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예를 들어, 에이미 카마이클의 ‘만약에’(If)라는 책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함으로써 유혹과 싸우도록 돕는 강력하고 실제적인 묵상집이다.가장 오래된 책그런데 인간이 저술한 경건 서적을 다 읽고 배울지라도, 최고의 고전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바로 성경이다.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책들이 잠시 방문하는 멋진 장소라면, 성경은 당신이 살아가야 하는 집이다"(Visit many good books, but live in the Bible).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모든 책들보다 귀중히 여겨야 하는 단 하나의 완벽한 문헌이다.이는 다른 고전들을 가볍게 여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위대한 책인 성경을 한결같이 사랑했던 신앙 선배들의 생각을 읽음으로써 우리도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경을 위해 고전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젊은 그리스도인들이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전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이 기회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낭비하지 말라.원제: Why Young Christians Need Old Books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고갑균
영성
영적성장
고전
통찰력
바울에게 필요했던 친구,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by Tony Merida
2018-12-06
우리는 바울의 삶에서 그가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모습,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친구 관계에서 드러나는 바울의 모습이다. 로마 제국 전역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할 때, 바울은 그 사역을 혼자 하지 않았다.바울은 풍성한 관계를 누린 사람이다. 그는 친구와 함께 여행하고 머물렀으며, 또 친구를 찾아가기도 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설교하며, 함께 매를 맞았다. 투옥되었을 때에는 심지어 그들과 함께 감옥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바울은 친구를 격려했고, 또 친구에게 격려를 받았다. 때로는 그들과 서로 다른 의견으로 논쟁하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기도 했다.사도행전을 조금만 읽어 봐도, 바울이 친구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나바, 디도, 실라, 누가, 브리스길라, 아길라, 루디아, 오네시보로, 에바브로디도, 마가, 요한, 에베소 장로들에게 그런 섬김을 보였다.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서른 개가 넘는 이름을 나열하는데 목록 전체에서 애정이 흘러나온다. 이 목록은 복음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나타낼 뿐 아니라, (인종, 계급, 성과 관련하여) 아름다운 어울림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오늘날 복음중심적 사역을 할 때,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에 집중했던 바로 그 설교 패턴을 우리도 동일하게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친구에게 헌신했는지도 강조해야 한다.바울은 무엇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숙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교제했다. 이처럼 위대한 사도조차도 친구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데에 힘썼다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에 친구 관계로부터 얻는,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세 가지 유익이 있다.1. 교제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관계를 지향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에덴 동산에서 모든 것이 영광스럽고 ‘심히 좋았지만’, 한 가지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혼자’라는 것이었다.이 시점에서 죄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낙원에 있는 사람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왜 그의 마음은 허전했을까? 팀 켈러는 다음과 같이 적절한 설명으로 우리를 안내한다.“하나님은 친구 없이는 낙원조차 즐길 수 없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아담은 하루 종일 완전하게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우리는 나무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마음 아파한다. 우리는 그들과의 교제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앞두게 되면, 살면서 성취했던 것들(저술, 학위, 상패, 집, 열쇠 등)을 놓지 않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을 붙잡고 싶어 할 것이다.사역, 특히 교회 개척이 당신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라. 당신은 콘텐츠 제작자 이상의 존재다. 당신은 기계적으로 설교를 쏟아 내는 설교 로봇이 아니다. 또한 교회 개척은 론 레인저(Lone Ranger)처럼 황량한 전방에서 복음 사역을 홀로 이뤄가야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친구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2. 위로하나님은 종종 다른 사람의 존재와 사역을 통해 우리를 격려하신다. 디도에 대하여 바울이 한 말을 기억해보라.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 7:5-6). 하나님은 바울에게 힘을 주고 그를 격려하기 위해 디도를 보내셨다.“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라고 고백하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친구이다.우리 마음은 변덕스럽고, 죄성은 절대로 쉬지 않으며, 사탄은 맹렬하게 활동하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진전이 시급하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믿음의 싸움 속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3. 기쁨바울은 로마에 가려는 계획을 알리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전했다. 바울은 로마의 교회로 보낼 긴 편지를 마치면서, 마음에 남아있는 여전한 바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희와 사귐으로 기쁨을 [누리고 싶고]”(롬 15:24), “너희와 함께 편히 쉬[고 싶다]”(롬 15:32). 비록 바울은 편지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더 깊은 기쁨과 안식은 직접 만날 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사도 요한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우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이 1:12).그러니 페이스북 친구로 만족하지 말라. 우리는 전인적인 존재다. 온라인에서도 우리 자신의 일면을 나타낼 수는 있겠지만, 그 세계에서는 충분한 교제를 기대할 수 없다. 인터넷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함께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느끼고, 상상하고, 반응하며, 만지거나 움직이는 등의 비언어 행위를 통해서도 소통하는 사람들이다.최근에 나는 교회 리더들과 함께 처음으로 복음 잔치(Gospel Party)를 열었다. 우리 안에서 교회 개척자와 목사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 이틀간 교제했다. 매우 격려가 되는 시간이었다. 뒤쪽 베란다에서 친구들은 웃고, 즐기고, 먹고, 기도하고, 울고, 생각하고, 꿈꾸고, 계획하고, 예배했다. 이 모든 일들을 함께 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죄인인 우리에게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이다.교제를 연습하라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귄 친구와 복음의 동역자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라. 교회 안의 친구와 깊이 교제하기 위해 힘쓰라. 다양한 네트워크나 교단 모임에 참여하라. (동역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디도 사역’을 추진하라. 그리고 우정에 관한 잠언 구절들을 적용하라.• 일관성: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 정직: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6).• 긍휼: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주인공 중 한 명은 ‘툼스톤’(Tombstone)의 닥 할러데이(Doc Holiday)다. 비록 그가 기독교 경건의 본보기는 아니지만, 그 영화에는 언제나 내게 감동을 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거기서 그는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와 함께 ‘카우보이들’의 행패로부터 어느 지역을 구출해 내려고 할 때, 결핵에 걸리고 만다.하지만 그는 와이어트와 함께 싸우기 위해 사랑과 충성의 마음으로 병상에서 일어난다. 이에 터키 크릭 잭 존(Turkey Creek Jack Johnson)이 엄숙하게 묻는다. “닥, 왜 이러는 거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와이어트 어프가 제 친구이기 때문이죠.”복음 안에서 사귄 충성된 친구는 하나님이 주신 값진 선물이다. 그리고 이런 친구는 궁극적인 벗으로서 우리의 많은 죄를 가려 주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요 15:15).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크리스천 우정을 실천하는 개개인을 통해 타인에게로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우리가 교회를 개척함으로써 죄인의 친구 되시는 그분을 높이기를 소원한다.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원제: If Paul Needed Friends, So Do We번역: 하늘샘
생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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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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