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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기도하라!
by John Piper
2018-11-11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골로새서 4:2-4.본문은 지금 우리도 들어야 할 기도에 대한 다섯 가지 지침을 준다. 첫째, 꾸준히 기도에 힘을 써야 한다. 흔히 우리가 특별 기도 주간에만 보여주었던 부지런한 모습을 평소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꾸준한 기도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예수님이 이야기하신 ‘간청하는 벗’(눅 11:5-8)이라든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눅 18:1-8)로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꾸준함은 참된 성도의 삶을 검증하는 최고의 테스트이다. 나는 성도 가운데 60년, 70년, 혹은 80년을 꾸준히 기도해 온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들이 많은 교회는 얼마나 복된가! 둘째,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아마도 바울은 이 지침을 겟세마네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배웠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도록 요청했지만 그들은 잠들고 말았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네가 한 시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7)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기도할 때 깨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산만하게 흐트러져 이런저런 생각으로 방황하지 않아야 하며, 헛되이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중언부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진부하고 의미 없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편협하고 이기적인 욕망으로 기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무엇이 선한지에 대해서도 깨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분명히 우리 안에 기도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우리가 스스로 기도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경험하게 된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나는 내가 기도하는 성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써 그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더욱 감사함으로 기도에 매진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넷째, 말씀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도할 수 있다. 먼저는 주일마다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주중에 우리가 복음을 나눌 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 여자[루디아]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행 16:14). 이와 같은 일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주일에도 주중에도 일어나기를 바란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비밀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 경건의 비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딤전 3:16). 이 비밀을 전하도록 부름 받았다!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맡았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일은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얼마나 내게 과분한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꼭 필요한 성경 말씀을 택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말씀의 진리를 사랑으로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다. 그리고 꼭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원제: Persevere in Prayer출처: www.desiringgod.org번역: 매일배움
인내
꾸준한기도
꾸준히기도하라
감사하는기도
깨어기도하라
결혼할 수 있을 때 데이트를 하라
by Marshall Segal
2018-11-01
젊은이들은 언제 데이트를 시작해야 하는가? 아마 이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일단 당신이 (혹은 다른 사람이) 왜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데이트로 인해 매우 큰 대가를 치를 때가 많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참담한 이별, 성적인 죄, 충격적인 배신, 갑작스러운 실연, 가슴이 찢어지는 비통함 등 결코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고통 말이다. 그러면 왜 우리들 가운데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렇게 허겁지겁 데이트에 뛰어드는가? 이는 어느 정도 사탄이 데이트의 위험들을 매우 잘 감춘다는 사실 때문이다(계 12:9). 사탄은 로맨스가 멋진 인생의 필요조건이라고 제시하고, 그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공허하고 외롭고 무익하다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사탄은 우리의 욕망을 이용해 우리가 참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며, 최고의 기쁨과 가장 충만한 경험은 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혹은 남편이나 아내)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우리를 납득시킨다. 사탄은 실연의 상황을 준비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독성을 가진 성적인 죄로 우리를 유혹한다. 사탄은 세상 속에서, 세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여 우리 가운데 수백만은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너무 일찍 데이트를 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런 데이트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결과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6학년 때 첫 번째 ‘여자친구’를 사귀었고, 그 해 여름에 (또 다른 여자아이와) 첫키스를 했으며,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거의 해마다 새 여자친구를 만났다. 너무 어릴 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아닌 여자친구들에게서 애정과 안전, 친밀감을 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나는 일찍, 많이 데이트를 했다. 나의 10대는 나이에 비해 너무 진지하고, 너무 오래 지속되고, 그 결과 너무 고통스럽게 끝나는 관계들이 길게 잇따르는 시절이었다.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너무 성급하게, 너무 자주 말했다. 사탄은 제일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내 이른 데이트사의 모든 순간을 즐겁게 관람했다. 왜 데이트를 해야 하는가? 우리 마음을 놓고 벌어지는 영적 싸움은 실재하며, 여기에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자리한다. 따라서 먼저 우리가 왜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왜 나는 열두 살 때 (그리고 열세 살, 열네 살, 심지어 열여덟 살에도) 여자친구를 사귀었을까? 많은 이들은 단순히 행복해지고 싶고, 소속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필요가 어떤 특별한 남자나 여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충족된다고 상상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어떤 사람이나 어떤 대상을 향해 치솟기를 원한다. 로맨스와 결혼의 신비는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우정의 절정처럼 보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사랑 받고, 소속되며, 그의 삶에 들어가기를 갈망한다. 또한 누군가가 우리 삶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이 가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의미 있는 명분을 위해 중요하게 기여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필요들을 사랑으로 채우기 위해 데이트를 한다. 누가 묻는다면 우리는 ‘결혼하고 싶어서’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나이, 재정상태, 개인의 성숙, 교육, 삶의 단계 등의 면에서 결혼과 거리가 멀다. 사실 우리는 로맨스에서 행복과 소속감과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어떤 식으로 다르게 행동할까?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데이트를 하지 않을 것이다(심지어 대학교 1, 2학년 때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이 해답은 내가 데이트와 결혼의 중요한 차이점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다. 데이트 중인 커플은 때때로 결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들은 절대로 결혼한 커플이 아니다. 우리가 이 두 관계의 차이점을 이해할 때에만 데이트에 따르는 모든 고통과 실패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다. 우리의 현재 관계 상태가 어떻든 간에, 누구의 인생에서나 가장 큰 상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에게 알려지는 것,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에게 사랑 받는 것이다. 결혼에서의 큰 상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배우자와 맺는 친밀함이다. 남편 또는 아내와 서로 알고 알려지며 사랑하고 사랑 받는 관계 말이다. 데이트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맺는 결혼에 대한 명확한 이해이다. 로맨틱한 친밀함은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가장 안전하며, 결혼은 명확한 대상이라는 조건이 허락될 때 가장 안전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중심의 그런 친밀한 관계를 갖고 누리고 싶다면 우리는 결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하고 싶다면 누구와 결혼하느냐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 적어도 미국의 경우에는 법적으로 만 18세가 되기 전에는 결혼할 수 없다(네브라스카 주와 미시시피 주는 예외인데, 이 두 주는 더 늦어서 각각 만 19세, 21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단 나이만이 아니라 성숙함과 견실함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내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는 장차 50년 간 남편 또는 아내인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할 만큼 충분히 성숙한가? 우리는 정말 충분히 성숙한가? 우리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다 한 가정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가? 내 이성친구가 가진 믿음은 고난을 통해 그 진정성이 드러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검증되었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어떤 이들은 이 조언을 싫어할 테고,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결혼이 가능해지기 훨씬 전부터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데이트할 수 있다고 해서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해 올바로 생각하지도 못하면서 결혼을 지향하는 데이트를 할 수 없다. 당신은 일찍부터 결혼에 대해 꿈꿔왔을 수도 있다(나는 그랬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당신은 언제라도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이 결혼할 수 있을 때 데이트를 하라. 내 조언은 (받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18개월 안에 무리 없이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고려사항은 그 기간 안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결혼이 그분의 뜻이며 타이밍이라는 확신을 주신다면 언제라도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18개월이라는 단서는 없으므로 내 조언을 하나님의 법인 양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조언이 당신의 마음에 현명하고 안전하게 보이는지는 (하나님, 당신의 부모님, 그리고 신앙의 동료들과 함께) 시험해 볼 수는 있다. 기다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데이트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라는 말은 아니다. 삶은 결코 사랑과 결혼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심지어 주요 요소도 아니다). 우리 삶은 우리가 미혼이든 기혼이든, 16세이든 60세이든 간에 예수님으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계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관계가 당신에게 공급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청년기에 광대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재능을 사용해 다른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원하신다.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결혼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강건하고 따스한 미래의 아내 또는 남편으로 만들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즐거움을 통해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세상에 나타내고 싶어 하신다. 당신의 청년기를 위한 하나님의 꿈을 경험하기 위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럼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 다른 이들에게 담대하고 신실한 모범을 보이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당신은 아직 투표권이 없을 수도 있고 운전면허조차 없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살 수는 있다. 오늘 당신의 말(당신이 가족과 친구에게 사용하는 말)은 예수님에 대해 알려준다. 당신의 행동(당신이 무엇을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날마다 결심하는 태도나 당신이 세상과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습관적인 모습)은 당신의 하나님에 대해 말해준다. 당신의 사랑(당신이 삶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당신이 하나님께 어떻게 사랑 받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당신의 정결함(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모든 시기상조의 즐거움과 경험보다 하나님을 보물로 삼겠다는 당신의 헌신)은 자기 욕망에 얽매여 있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2. 섬김을 받으려는 삶이 아닌 섬기려 하는 삶을 살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벧전 4:10-11).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소진된 나머지 가까운 이웃들의 궁핍함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만다. 그러나 당신은 소셜미디어, 쇼핑, 비디오 게임보다 훨씬 대단한 일을 할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15-16세에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겨루어 금메달을 따는 10대 선수들을 보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재능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겠다고 결단하면 어떨까? 교회 부서에서 섬기거나, 후배의 멘토가 되어 주거나,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 당신에게는 세상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일을 할 능력이 있다. 당신을 통해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삶을 살라. 3. 하나님이 당신에게 명하시는 미래의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25).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결혼하고 싶어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구도 날 때부터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다. 배우자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세상 모든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야기, 즉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오셔서 그분의 죄 많은 신부인 교회를 위해 죽으신 이야기를 삶으로 살아내라는 명령이다. 선천적인 본능대로라면 우리는 자신이 아무리 많이 좋아하는 상대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데이트할 준비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당신을 한 단계씩 변화시키시며, 또한 당신이 바람직하게 사랑하면서 데이트할 수 있도록 여러 면에서 준비시키실 것이다. 4. 기다리는 시간에 즐거워함으로 주변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라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9-11).우리 주변에서 "다들 데이트한다"며 자신의 외로움을 한탄하는 젊은 남녀들을 보게 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 행복, 안전을 다른 곳에서 찾는 젊은이들을 보기란 훨씬 어렵다.당신이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데이트를 하지 않고도 만족을 누림으로써 당신의 친구들을 (그리고 모두를) 놀라게 하라.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가졌기 때문이다.출처: www.desiringgod.org원제: Wait to Date Until You Can Marry번역: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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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
전전긍긍하는 부모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
by Cameron Cole
2018-11-01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때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갓난아이를 돌봄이(baby sitter)에게 처음 맡긴 날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비상 연락처를 여러 개 준비한 것은 물론이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아이가 잘 있는지 돌봄이와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가끔 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날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성인이 될 때까지 이토록 잘 키워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심 오늘날의 육아 상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것이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봐 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 거의 전문적 수준의 돌봄 매뉴얼을 만들지도 모른다. 또한 교회 주일학교나 놀이방에 아이를 맡길 때에도 두려움이 앞선다. 아이와 다른 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시간 내내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혹시 모를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느라 초조하게 진땀을 흘릴 수도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처음 보낼 때는 더 큰 고민에 빠진다. 담임선생님이 내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아이를 맡기고 뒤돌아서 나올 때면 대성통곡하는 소리에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하원 시간에는 선생님으로부터 오늘 하루 우리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이 자녀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때에 느끼는 불안감은 아이가 크는 내내 반복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도 이 불안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모든 부모는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나처럼 제대로 우리 자녀를 돌볼 수는 없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뛰어난 부모인가? 나는 첫째 아이 카메론을 내가 아닌, 완전한 자격을 갖춘 다른 분께 영원히 맡겨 드려야 했던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양육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을 완전하게 하나님 기준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이 지나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겪었던 일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 보내게 되었다. 아들이 더 이상 우리의 손에 있지 않음을 온전히 인지하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 부부는 아들에 대한 불안감을 여전히 마음속에 안고 살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로 그러했다. 아내는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한테 아이를 맡긴 것처럼 안심이 안 돼”라고 말했다. 부모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하여 진심으로 노심초사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가 잠들기 전에 노래를 많이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하나님은 우리 아이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하나님이 우리처럼 매일 아이를 충분히 안아 주실까? 잠들기 전까지 등을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는데… 우유와 신선한 채소를 매일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때는 슬픔의 수렁에서 조금도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였다. 나는 하나님의 필요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지만 내 아들의 부모로서 주님이 완벽한 대리자가 되어 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에 관해서는 나 아닌 그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카메론의 두 형제를 이 땅에서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양육의 순간순간마다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불안이 하나님을 내 아이의 부모로서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자만과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자만과 불신 첫째, 선생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돌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리 양육자를 내 손으로 촘촘히 관리하려 드는가? 이는 부모로서의 본인 역량에 대한 자만이다. 우리는 자녀의 삶 속에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자신의 손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신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 자만의 방증이다. 이러한 자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전능하고 끝없는 사랑을 지녔으며 완벽하게 지혜로워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한다. 또한 아이의 행복을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양육을 우려와 통제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절망과 독단 사이에서 비틀거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있는가? 이는 아이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상황일 때에 더욱 명확히 알게 된다.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도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돌보시고 지키신다. 하지만 우리의 불안은 이러한 사실을 생각의 저 너머로 미루어 놓곤 한다. 자신의 손으로만 아이들을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를 날마다 쉬지 않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가장 잘 증명된다. 독생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벽한 돌보심을 영원토록 보고 또 누리셨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빛나는 통찰과 지키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인간의 몸으로서 신실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할 수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만 양육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평안의 시작은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모두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부모이다. 반면에 우리의 자녀는 완벽한 아버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부모로서 짓게 되는 죄와 실패는 훗날 우리의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그 후손들을 훈육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또한 너무 절망하지도 말자. 당신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이웃의 ‘완벽한’ 부모들도 똑같이 실수한다). 모든 부모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절대 하나님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부모로서의 소명을 따라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들을 향한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불어, 내 양육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아이들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로 채워진 복음만이 우리에게 희망과 평안을 안겨 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어떤 부모보다 훌륭한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우리 자녀를 사랑하신다. 주님은 우리 아이의 성격, 남과 다른 부분,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알고 계신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부모로서 더없이 완전하다. 또한,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부모인 우리들의 무능함을 덮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아이에게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돌봄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큰 은혜로 아이들을 채우실 것이다. 자녀가 이 땅에 있든 하늘나라에 있든,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인하여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할 수 있다. 그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 근원적 아버지요 최고의 부모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저 더 나은 부모인 그분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만과 불신을 버리고 아이를 하나님께 맡길 때에 진정한 평안과 안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Grace for the Micromanaging Parent 번역: 고갑균
가정
양육
자만과불신
부모
하나님의은혜
진리
복음
사랑과은혜
희망과평안
불안함
매일의 은혜를 주옵소서
by Jeff Robinson
2018-11-01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녀의 페이스북 화면을 클릭했다. 그녀의 남편(내 오랜 친구)과 이젠 각자 가정을 꾸렸을 것 같은 그들의 두 자녀를 보게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그 가정과 우리 가정은 한 교회에서 촉망받는 리더십 그룹에 속해 있었다. 당시 내 눈에 그 부부는 마치 영적 거인과 같았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한없이 겸손해졌다. 그들은 성경을 깊이 알고 있었고,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신학교에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 즈음 그들도 다른 도시로 떠나며, 그곳에서 더 큰 리더십을 맡게 되었다. 20년 전에 우리는 그랬다.그런데 그녀의 페이스북 사진들이 나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남자가 내 친구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 자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안타까움을 몰려왔다. 페이스북 한 페이지에는 그녀의 인생철학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리스도나 어떤 신앙의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인생이 당신을 붙잡기 전에 당신이 그 인생의 주도권을 움켜쥐어야 한다.”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 흔적은 어느 유명한 ‘번영’ 복음 설교자의 기사뿐이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더 멋진 당신 발견하기”였다.‘아, 이러면 안 되는데.’두 번 더 클릭하자 그녀의 전 남편, 내 친구의 페이스북도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였다. 새 여자와 새로운 세계관이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도 없었고, 하나님도 없었으며, 내가 전에 알던 가족이라고 인식할 만한 어떠한 내용도 없었다.도대체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들의 자녀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무엇이 그들의 결혼생활을 이토록 바꿔놓은 것일까? 무엇이 그들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멀어지게 했을까? 나는 진정 그들의 신앙과 가정이 그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그런데 한 가지 깨달음이 내 머리를 치는 듯했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어. 우리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었어.’물론 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다. 언젠가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예수님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과 그들의 인생에는 단 한 가지 차이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나와 내 아내에게 ‘끝까지 견뎌내는 은혜’(persevering grace)를 베푸셨다는 사실이었다.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일을 잊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나를 구원의 은혜에 머물게 하는 매일의 은혜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거의 감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로 옛 친구인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 인생 기슭에 매일 같이 은혜의 파도가 밀려오게 하시는 은혜에 대해 주님께 감사하게 되었다.견뎌낼 수 있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당신의 믿음을 지켜주시는 은혜에 당신이 가장 최근에 기뻐한 것은 언제인가? 나는 최근에 야고보서 4장을 설교하다가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라는 6절 말씀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매일의 죄를 회개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을 설교하며 가르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관한 글을 쓰고, 또한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서 당신이 사역을 지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명제나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교리에 대한 논쟁은 흔히 그 미묘한 의미나 강조를 간과한 채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나는 다른 글(“Perseverance of the Saints: Tertiary or Foundational?”)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들의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주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어 마침내 거짓 신자들이 밝혀질 때가 온다는 사실을 가르친다(가령, 요한일서 2:19이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예수, 믿음의 용사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머무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서 나를 위해, 당신의 백성 모두를 위해 기도하신다. 주님의 대제사장 기도는 어떻게 예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예시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장).예수님은 또한 사탄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시험하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그를 위해 간구하셨다. 요한복음의 결론은 베드로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이 낙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길 바란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같지 않다. 주님의 기도는 뒤죽박죽 무질서하지도 않다. 주님의 기도는 그 동기가 복잡하지도 않고, 오류도 없다. 주님은 완벽하게 기도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 매 순간 말이다. 다시 말하건대 우리가 은혜 안에 머물며 견뎌내고 있는 이유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아버지의 우편에서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넘치는 은혜 안에서 누리는 기쁨물론 이는 성도의 견인에서 우리가 그저 수동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위험과 수고와 유혹을 거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된다. 우리가 견뎌내고 있다는 말과 하나님이 우리를 견뎌내게 하신다는 말, 둘 다 온전히 성경적이다.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힘들었던 전환점들을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 함께하셨음을 깨닫는다. 대학 시절에는 나를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교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여전히 더 위대하신 분으로 내 마음속 그 자리에 계셨다. 아버지는 대학 졸업을 6주 앞둔 갓 스물두 살이었던 나를 두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일련의 사건들로 내 마음은 한없이 무너졌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더 위대하신 분으로 항상 같은 자리에 계셨다.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유산했다. 말할 수 없이 슬펐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더 위대하신 분으로 그 자리에 계셨다. 나의 첫 목회 현장은 시험으로 가득했고, 내 계획보다 훨씬 일찍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더 위대하신 분으로 그 자리에 계셨다.난관과 고난을 겪으면서 여전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눈앞에 있는 것을 거머쥐라는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꼭 붙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참고 견뎌낼 수 있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셨고,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할 때까지 그렇게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원제: Give Us This Day Our Daily Grac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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