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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원'에 대한 총 8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죽음의 청소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4-05-06

이사를 앞두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슈트케이스 두 개를 들고 떠났는데, 일본 생활까지 포함해서 6년 반 만에 귀국할 때는 배로 부쳐야 할 만큼 짐이 늘었다. 그로부터 4년 반이 흐르고 나니 포장 이사를 맡겨야 할 만큼 짐과 가구가 늘어버렸다.아무래도 이사를 위한 짐 정리는 평소의 정리와는 다르게 좀 더 강도가 높다. 내가 기껏 포장비까지 내고 챙겨간 짐이 결국 안 쓰는 물건이나 쓰레기는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어떻게든 짐을 줄여 이사 견적도 좀 싸게 받을 요량으로, 서랍 하나하나까지 다 뒤지면서 정…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4-03-11

항암치료 중이신 어머니가 입맛이 뚝 떨어지시고 그나마 찾으시는 게 햄버거이다. 남들은 몸에 안 좋다고 뭐라 하지만, 아무것도 못 드시는 거보다는 낫지 싶어서 그날 저녁도 퇴근길에 버거 사냥을 나섰다. 어머니가 잘 드시는 브랜드의 가게는 너무 멀리 있어서 어디서 사가나 고민하는데 예전에 버스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들렀던 버거 가게가 생각났다. 큰 기대 없이 시켜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 버거집으로 갔다.하지만 때는 이미 저녁 7시를 넘었고, 학교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이라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그래도 주방 안…

‘쀼’의 세계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4-01-30

커플 걱정하는 거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헤어진다느니, 더는 같이 못 살겠다느니, 남친이나 남편에 대한 불평과 하소연을 잔뜩 늘어놓던 친구의 말을 기껏 들어주고 위로해 줬더니, 불과 며칠 후 헤헤거리며 다시 짝꿍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본 싱글들이 만들어 낸 말이지 싶다. 자식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버지 흉을 잔뜩 보는 어머니에게 맞장구를 칠라 하면 이내 아버지 두둔을 하고 나서는 어머니를 보며, 그들의 세계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보다 하는 어느 작가의 감상을 읽은 적이 있다.문득, 지난 12월, 선배 언니…

손편지의 온기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3-12-11

예쁜 카드나 엽서를 보면 사는 것도 좋아하지만, 거기에 몇 자를 적어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간단한 안부든, 감사의 표현이든, 생일 축하든, 크리스마스나 신년 축하든, 비록 글씨는 잘 못 쓰지만, 그래도 직접 손으로 써서 봉투에 담아 어울리는 스티커 하나 장식으로 붙이고, 주소를 적어 우체국의 손을 거쳐 상대에게 보내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나면 제법 마음이 훈훈해진다. 지난가을에는 처음으로 일본어로 그런 감사 엽서를 교토 어느 카페의 여사장에게 적어 보냈다.교토의 가을을 노래하는 친구의 꼬임에 짬을 내어 조금 긴…

두피에서 콜라겐이 빠져나갈 때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3-10-13

학교 앞에 짧게는 넉 달 길게는 여섯 달에 한 번 가는 미용실이 있다. 오래전부터 내 머리는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고 그냥 단발 정도의 길이로 자르기만 하는데, 어떻게 손질해도 추레해 보인다 싶으면 한 번씩 가는 주기가 넉 달에서 여섯 달이다. 주문하는 스타일은 늘 같다. 이전에 머리를 자르고 찍은 셀카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주세요, 하는 한마디가 끝이다.그런데 이번에는 석 달 만에 미용실을 찾게 되었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머리 형태가 망가져 손질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금 기르면 손질이 쉬울까 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지…

가족은 힘이 될까, 굴레가 될까?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3-09-01

여전히 높은 온도와 습도로 연신 땀을 닦으며 걸어야 했던 8월 중순 막바지 주말, 마지막으로 내려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충무로역에 내려서 문학의 집 서울로 향했다. 서울시에서 하는 문학기행 강연 시리즈에 강사로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작품을 소개하는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작품을 골랐고, 강의 제목은 “가족은 힘이 될까, 굴레가 될까?”로 정했다.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30명 인원 제한이 있는 강의였는데, 좌석은 거의 다 찼고,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 노부부 커플 등 다…

‘빈스’와 흙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3-07-19

서울에 있는 큰이모네 집은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많은 집이 그랬듯 마당에는 개가 있었다. 울산에 살던 우리는 방학을 이모네 집에서 보낼 때가 많았는데, 어느 여름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꼬물거리는 강아지가 여러 마리 있었다. 그해 여름, 또래의 사촌들과 나와 여동생은 각자 강아지를 한 마리씩 안아 들고는 신나게 데리고 놀았다. 원래 집 안에는 들이지 않는 강아지를 집 안에까지 안고 와서 놀다가 강아지가 마룻바닥에 쉬를 하는 바람에 이모에게 혼을 나기도 했다. 자아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던 그 어린 시절, …

돌아보니 여호와 이레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by 양혜원 작성일 2023-06-08

얼마 전 아주아주 오랜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 졸업하고 30여 년 동안 한 해에 한두 번은 모인다는 동기 모임에 내가 나간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이번에는 코로나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던 재일교포 동기가 오랜만에 온다 해서 마련된 자리였는데, 일본에서 연구원 생활할 때 자주 교류했던 친구라 이참에 나도 한번 나가볼까 해서 참석했다.퇴근하고 조금 늦게 도착해보니 이미 식사들을 하고 있었고, 나는 살짝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동기들을 둘러보았다. 금방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달라진 동기도 있었고, 이십 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