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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파이퍼가 발견한 영광, 그리고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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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Elliot Clark /  작성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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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laume de Germain on Unsplash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라는 성경의 명령은 전혀 부담스러운 명령이 아니다. 이 명령은 사실상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큰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찾으라는 초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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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 존 파이퍼는 ‘하나님을 기뻐하라’(Desiring God)에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과 답변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파이퍼가 이 책을 통해 (그리고 그의 사역을 통해) 주장한 핵심 논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은 별개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찬양한다는 C. S. 루이스의 시편 묵상에서 처음 이루어진 면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축구팀, 또는 넷플릭스 시리즈 같은 것을 칭찬할 때 더듬거리거나 주저할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라는 성경의 명령은 전혀 부담스러운 명령이 아니다. 이 명령은 사실상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큰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찾으라는 초대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찬양 받길 원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와 제로섬 게임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시면 우리가 지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을 얻을 때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 안에서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기쁨


이 개념은 루이스의 또 다른 개념, 곧 기독교 신앙은 이기심 없는 노력이 아니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욕망을 통해 자기부인을 하도록 동기부여 하신다.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Weight of Glory)에서 이런 생각을 적용하여 우리에게 무엇인가 얻는 것을 약속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희생하도록 동기부여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주목한다. 


파이퍼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라’에서 이 주제를 택하지만, 루이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루이스는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놀라운 만족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에게 주어진 그것은 곧 영광이다. 루이스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심”(fame with God), 승인, 감사, 영예라고 부른다(36). 다른 말로 하면, 그가 꿈꾸는 최고의 행복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로 인해서 기쁨을 느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고 우리에게는 영광이 돌아오는 기쁨이다!


루이스에게, 그러한 영광은 “하나님께서 좋게 보심, 하나님께서 받아주심, 응답, 인정, 만물의 중심으로 환영을 받아 들어감”(41)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창조된 이유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영광의 약속은 믿기지 않은 정도로 놀라운,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한 약속입니다. 우리 중 일부, 곧 진심으로 그 약속을 선택하는 우리 중 누구라도 실제로 그 시험에서 살아남아서 인정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하나님의 행복에 실제로 기여한다는 것…하나님께 사랑 받는다는 것, 그저 동정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기뻐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보면서 기뻐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기뻐하시는 것, 이것은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실로 불가능해 보이는 영광의 무게 곧 부담입니다(38-39).

파이퍼도 루이스처럼 영광이 기쁨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기뻐하라’에서, 피조물의 기쁨이 창조주께 영광을 돌려 드린다. 그러나 ‘영광의 무게’에서 루이스는 겉보기에는 모순되는 진리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에게 영광을 가져다준다.


영광의 무게


루이스는 이 영광의 무거움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의 미래 희망에 대한 다섯 가지 주요 원천을 그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간략하게 나열한다. 


(1)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 (2)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될 것이라는 약속. (3) 엄청나게 풍부한 이미지가 보여 주듯이, 우리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 (4)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잘 대접 받고 잔칫상을 받고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 그리고 (5) 우리는 우주에서 일종의 공식적인 위치를 갖게 될 것이라는, 곧 도시를 다스리고, 천사를 심판하고,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라는 약속(34).

이러한 약속들을 숙고하면서, 루이스는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왜 처음 약속 말고 굳이 다른 약속이 더 있는 거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개념에 더해질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건가?” 결국, 하나님 자신이라는 그 선물 외에 다른 선물을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루이스의 놀라움을 생각하는 중에 나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가 요약한 각각의 약속은 영광이라는 구체적인 소망과 관련이 있으며 그 소망을 확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영광을 의미한다. 명예란 자고로 왕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들에게 속한다(욥 36:7; 삼상 2:8).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처럼 될 것이기에(요일 3:2),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정확하게 드러낼 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롬 8:18-19; cf. 고전 11:7). 그리고 하나님의 광채와 아름다움을 반영한다(시 34:5; 단 12:3). 우리가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존귀함을 소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루이스가 탐구하는 특정한 특권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롬 2:7, 고전 4:5). 우리는 잔치에 참여하는데, 그것은 왕의 잔치에 왕의 손님이 되는 특별한 영예를 포함한다(사 25:6-7; 마 8:5-13; 눅 14:7-11). 앞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높은 지위가 주어질 것을 말한다. 나라의 권세와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행사한다는 것, 심지어 천사까지 심판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영광이 얼마나 회복되는지 그 정도를 보여준다(시 8:5, 고전 6:3).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약속의 각각의 면이 독특한 광채로 빛났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명예를 타고나지 않은 경우라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우리는 왕의 가족으로 입양되었고, 그리스도 왕국의 공동 상속자가 되었으며, 왕의 식탁에 초대되었고, 그의 왕국의 대리 통치자(vice regents)로 승격되었다.


같이 받은 영광, 천국의 기쁨


‘영광의 무게’에서 루이스는 이것을 완전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우리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경이로움에 충격을 받는다. 이것만으로 그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전형적인 루이스의 방식으로 그는 그러한 영광이 “우리의 깊은 갈망과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41)를 조명한다. 


우리 각자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듯이 승인과 인정은 기쁨의 중요한 원천이다. 우리의 부담을 덜어 주는 상사의 세속적인 인정, 우리의 하루를 밝게 해주는 선생님의 칭찬, 자존심 강한 아버지의 인정과 기쁨에 찬 배우자의 칭찬, 이 모든 것이 한줄기 빛이 되어 우리 눈을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의 충만함을 향해 돌리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받을 그 순간을 향해서 말이다. 


그러한 특권은 실재하고, 공감할 수 있고, 바람직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야기하고 또 교회가 가르치는 영광의 개념은 비인격적이고, 가질 수 없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기쁨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보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 난해해 보인다. 그 결과 성경의 많은 약속들이 우리의 가장 큰 갈망들과는 단절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루이스의 논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의 내면에 인정을 향한 깊은 갈망이 있다는 사실은 그 갈망이 충족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있음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 받고 싶은 우리의 굶주림은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그런 굶주림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입증되어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리고 또 하나님께 받게 될 그날을 고대한다(롬 2:6-10, 살후 1:9-12). 그때까지 수많은 시험을 겪을지라도 우리는 또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다(벧전 1:7-8). 그러한 기쁨과 영광은 두 가지의 독립적인 경험이 아니라 서로 묶인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것은 우리가 창조된 위대한 목적이요 우리가 고대하는 위대한 목적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목격하고 공유하는, 그리하여 우리를 기쁨으로 채우고 궁극적으로 다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되는 그런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이다. 



원제: What Glory Awaits: Journeying with C. S. Lewis and John Piper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입증되어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리고 또 하나님께 받게 될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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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lliot Clark

엘리엇 클라크는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MDiv)를 졸업하고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다문화 교회 개척 사역을 했다. 현재 Training Leaders International에서 해외 교회 리더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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